미히스토리
수학 시간, 나는 몰래 교실을 빠져나왔다.
매점에 신상 과자가 들어올 시간인 것이다.
살금살금 매점으로 향하는 길에 나는 담임 선생님을 마주쳤다.
담임 선생님은 자세를 낮추고 살금살금 걸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아이, 깜짝이야. 무진이였구나.”
“선생님, 어디 가세요?”
“아, 나는.. 오늘 수업자료를 집에 두고 왔지 뭐야. 점심시간에 얼른 집에 가서 가지고오려구.”
“그런데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가세요.“
”놀러가는 것은 아니다만, 그래도 창문에 내가 비치면 수업에 방해가 되잖니.“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은 오전 조례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빨간 립글로즈를 바르고 한껏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그나저나 이무진, 너 왜 이 시간에 나와있는거야?“
”있으면 안되나요?“
나는 뻔뻔하게 말했다.
“수업 시간에 학생이 나오면 공유가 되기로 했거든. 아무런 공유가 없었어.”
선생님이 한숨을 쉬었다.
선생님은 뭔가 곤란해보였다.
“그런데 선생님은 지금 우리 교실에서 수업 중이셨는데, 어떻게 여기 계세요?”
“헙.” 선생님이 서둘러 내 입을 막았다.
“그렇네. 지금 수학 시간이겠구나.”
“이상한데요? 어떻게 된거죠?”
나는 집요하게 물었다.
선생님은 결국 비밀을 풀어놓았다.
“사실 나는 수학에 자신이 없어. 나는 사회과학 전공이지. 학생일 때도 수학시간은 정말 괴로웠단 말이야. 그런데 미술 선생님이 이 걸 만들어주셨어.”
그녀는 가방을 열어 한 가면을 보여주었다.
“엇, 이건 옆 반 선생님 얼굴이잖아요.”
”그래, 나는 이 가면으로 모든 사회 수업에 들어갔어. 그리고 수학은 옆 반 선생님이 모든 수업을 들어가시고.‘
어쩐지 수학 시간은 왠지 이상했다.
담임 선생님은 수학 시간마다 뭔가 날카롭고, 괴팍한 면을 드러냈던 것이다.
‘참 순하고 착한 선생님인데 말야. 수학 시간만 되면 아주 괴팍한게 꼭 2반 담임 선생님 같았다니까.’
선생님이 말을 이었다.
”국어는 1반 선생님이, 과학은 4반 선생님이, 영어는 5반 선생님이 맡아주고 계셔.“
나는 어쩐지 영어 시간이 될 때마다, 담임 선생님이 아주 느끼해졌던 걸 떠올렸다.
”알다시피 오늘은 모든 사회 수업이 오전에 끝났잖니. 그래서 오후에는 잠깐 남자친구를 만나려고 했어.“
선생님은 이제 나에게 말을 쏟아냈다.
”비밀로 해주겠지, 무진아?“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비밀을 유지해드려야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저도 얻는게 있어야겠어요.“
선생님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게 뭔데?“
나는 우쭐거리며 말했다.
”저도 가면이 있어야 겠어요. 선생님 미술 선생님과 나가는거죠? 오늘 미술 수업도 없는 날이잖아요. 제 가면도 만들어주세요. 그럼 가면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을게요.“
”알았다. 너 참 눈치가 빠르구나. 내가 미술쌤한테 말해볼게. 하지만 꼭 비밀로 해야 한다.“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이 나에게 한 가면을 내밀었다. 나는 그걸 받아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중간고사에 내 자리에는 내 얼굴 가면을 쓴 엄마가 앉아있었다.
집에 있던 나는 놀이터를 가려다가 괜히 아는 사람을 만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거실에 앉아있으니 옆 집에서는 최신 유행하는 애니메이션 소리가 났다. 나도 애니메이션을 틀었다.
다음 날, 나는 옆 자리 친구의 손가락에 다이아몬드로 된 결혼반지가 끼워져있는 것을 보았다.
그 친구의 불룩한 주머니에는 차키가 삐져나와 있었다.
축구를 하던 중 공이 주차되어 있던 차 보닛으로 날아갔다.
”삐삐삐“
주차되어 있던 차에서 경고음이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친구가 주머니에 손을 넣어 차 키를 누르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않았다.
“엇, 소리가 꺼졌다.”
다른 친구가 말했다.
우리는 다시 축구를 계속했다.
교실로 돌아와서 나는
주식 이야기를 하는 한 무리의 친구들을 발견했다.
최신형 차와, 패션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전과 달리 교실에 향수 냄새가 가득찬 것을 눈치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