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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HI Oct 27. 2024

[단편소설]굴렁쇠를 굴리는 소년

미히스토리

1. 대체(大體)


내 앞자리에는 끊임없이 피젯스피너를 돌려대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그의 자리로 가서 피젯스피너를 낚아챘다.

“정신 사나워요, 그만 좀 돌리세요.”

그는 잠시 당황했다.

나는 그 피젯스피너를 들고 내 자리로 왔다.

앞자리의 그는 이제 얌전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듯했다.

‘부스럭 부스럭’

신경 쓰이는 소리가 내 신경을 긁기 시작했다.

자세히 보니 그는 책상 밑으로 두 다리를 서로 엇갈려 동그란 원형을 그리며 다리를 굴리고 있었다.

“어디 문제 있어요? 대체 왜 그렇게 굴려대는거에요?”

내가 그에게 소리쳤다.

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작은 산골에 살았습니다.

할아버지는 늘 아침부터 굴렁쇠를 굴렸어요.

저와 할머니가 점심을 먹을 때까지요,

다 먹고 날 때쯤, 할아버지는 동네를 다 돌고 집에 돌아왔죠.

할아버지가 점심을 드시는 동안은, 제가 굴렁쇠를 굴렸어요.

할아버지는 말했죠.

‘세상은 항상 돌아야만 한단다.

우리가 열심히 무언가를 돌려야만, 저 해가 우리의 마음을 보고 스스로의 몸을 굴려 이 세상을 고루 비추어주지.

해가 떠 있는 단 한순간도 멈추면 안돼. 

해가 한 곳만을 비추게 된다면 심각한 가뭄이, 해가 비추지 않는 곳은 심각한 추위가 닥치게 된단다.’

할아버지는 진지했어요.”

그가 자신의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점심을 드실 시간이에요, 

그래서 제가 무엇인가를 돌려야만 하는거죠.”

그는 진지했다.

‘이게 무슨,’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럼 오전에는요? 그 때도 돌리고 있잖아요.”

내가 물었다.

“할아버지는 이제 노쇠하셨거든요,

어쩌면 동네를 도시다가 쓰러지실 지도 몰라요.

혹시 모르니 저라도 계속 돌려야..”

나는 그 말을 끝까지 듣고 있지 않았다.

그대신 나는 그의 손을 붙잡고 회사 밖으로 나왔다.

그는 내 손에 붙잡혀, 계단을 내려오는 중에도 끊임없이 손가락을 돌렸다.

내가 회사 현관 앞에 이르러 그를 붙잡고 말했다.

“그러니까, 당신이 지금 무언가를 굴리지 않는다면, 해가 멈춰버린다는 거죠?”

내가 말했다.

그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그게 당신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내가 재차 물었다.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대신할 수도 있는거죠?”

그는 내 질문에, 조금 생각하는 듯하더니,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거 보세요.”

내가 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리는 차들로 가득했다.

“저 바퀴들을 보세요.

세상은 당신이 끊임없이 무언가를 굴리지 않아도,

무언가를 굴려대고 있어요.

굴렁쇠와 같은 모양이죠?”

내 말에 그는 멍하니 지나는 차들을 보았다.

“서울 시내에는 단 한 시도 차가 멈추는 순간이 없을거에요,

해가 떠 있는 동안 말이죠.”

내가 말했다.

나는 그의 끊임없이 돌아가는 손가락을 붙잡았다.

그가 잠시 당황했다.

1, 2, 3초가 지나면서 그는 알아차린 듯했다.

자신이 무언가를 돌리지 않아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사무실에서 계속 피젯스피너를 돌려댄다면,

회사가 당신을 할아버지 뒤를 잇게 그 산골로 보내버릴 거에요,

자, 이제 남은 업무하러 올라가요.”


2. 대체(代替)


한 PD가 있었다.

그는 ‘중독’에 대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이야기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에게 제보가 하나 들어왔다.

어느 산 속의 한 마을에 굴렁쇠를 굴리는 남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당장 차를 타고, 그 마을로 달려갔다.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한 남자가 굴렁쇠를 굴리며 그의 앞을 지나갔다.

PD는 카메라를 들고 남자를 따라 걸으며 말을 걸었다.

“듣자하니, 굴렁쇠를 계속 굴리신다고 하던데, 왜 그러시는거죠?”

그가 물었다.

남자가 대답했다.

“아득한 오래전, 굴렁쇠를 굴리는 소년이 있었답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끊임없이 그걸 굴리고 있었어요.

어느 날, 목이 말랐던 소년은 개울가에 멈추어서서, 

물을 들이켰어요.

그 순간, 지구가 멈추고, 해가 멈추고, 이 우주가 멈추었죠.

세차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어요.

세상의 모든 것이 얼어붙기 시작했죠.

그 또한 얼어붙었습니다.

엉겁의 세월이 지난 어느날,

히말라야보다, 에베레스트보다 높던 빙하의 꼭대기에서 얼어붙다못해 금이 가기 시작한 한 얼음덩어리가 있었어요.

그게 굴러 떨어지기 시작하자, 해가 잠깐동안 원래의 궤도를 찾아 운행하기 시작했죠.

소년도 그 때 다시 눈을 깜빡였어요.

그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단박에 알아차렸죠.

그의 옆에는 서서히 녹고있는 굴렁쇠가 있었어요.

소년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었죠.

지구 상의 모든 것들은 얼어붙어서 매우 미끄러운 상태였고,

얼음덩어리는 점차 속도가 빨라져, 곧 땅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날테니까요.

소년은 얼어붙은 관절을 일으켜, 굴렁쇠로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얼음덩어리가 지면에 도착하기 직전에, 굴렁쇠를 굴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세상은 다시 돌기 시작했죠.

그 소년이 바로 제 조상입니다.”

PD는 어이가 없었다.

‘어지간히 할 게 없는 사람이구나.’

그가 생각했다.

“사실 그 소년에게는 형이 있었다는 걸 알고 계셨습니까?”

PD가 말했다.

“그건 몰랐습니다.”

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 아이는 유럽 지방으로 입양이 되었었죠,

시간이 많이 흘러, 그의 외모는 유럽인과 비슷하게 되었고,

자신의 뿌리가 이 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도 전해내려오는 조상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어요.

그는 ‘과학’을 이용해 끊임없이 돌아가는 무언가를 발견해내고자 했고,

그 결과, 우리의 몸을 이루는 원자를 끊임없이 돌아가게 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어요.

그건 바로 밥을 먹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 지구상에 살아있는 생물이 존재하는 한, 무언가는 끊임없이 돌고 있다는 거에요.”

PD는 이야기를 꾸며 말했다.

“그렇습니까? 그럼 굴렁쇠를 굴리지 않아도 해가 계속 돈다는 말씀이시네요?”

남자는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PD가 말했다.

“무슨 문제죠?”

남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PD에게 물었다.

“지구가 멈춰가고 있어요.

지구의 쓰레기들 때문이지요.

늘어나는 쓰레기들이 지구의 자전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PD가 말했다.

‘쓰레기라.. 큰 문제이긴 하지만, 어차피 지구에서 생산된 쓰레기들일텐데요. 전체 무게가 증가하지는 않았을텐데 그게 지구의 자전을 방해하는 이유가 뭘까요?’

남자가 물었다.

‘생각처럼 만만하지는 않은 사람이군.’

PD가 생각하며 다시 말했다.

“쓰레기 속에서 벌어지는 불협화음이 문제입니다.

당신의 이야기처럼, 그 것들이 각자 원래 있던 위치에서, 땅 속이든, 공기 중에든, 물 속에 녹아있으면 다행이지요.

하지만 어떻게든 화학 작용을 거쳐 한데로 뭉친 것들이,

서로 분해되지 않고 이 땅에 그대로 남아있단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은 본인이 원래 속한 곳으로 돌아가려고 하죠.

땅에서 온 것은 땅으로, 공기에서 온 것은 공기로, 물에서 온 것은 물로 돌아가려고 버둥거리고 있습니다.

그 움직임이 거대한 지구의 자전을 방해할 정도로 커진지는 꽤 오래 되었습니다.”

PD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가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는 굴렁쇠를 굴리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가 물었다.

PD는 이제 길가에 보조의자를 펴고 그 위에 걸터앉았다.

남자도 그를 따라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늘부터는 쓰레기를 줍는 겁니다. 굴렁쇠를 굴리는 것 대신에요. 

그 것이 당신의 조상이 당신에게 준 진정한 임무일 겁니다.”

PD가 대답했다.

남자의 표정이 환해졌다.

그 날부터 남자는 굴렁쇠를 굴리는 것 대신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남자가 조금은 더 쓸모있는 일을 한다며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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