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인당수 10화

10. 잔상

by 미히

심청은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에 다시 왕의 방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방 안은 불이 꺼져 있었고, 내부가 어두웠지만, 그녀는 안쪽에 무언가 인기척을 느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자, 방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용왕님. 저를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심청은 그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그것은 분명 자신이 아까 했던 말이었다. 호기심과 불안이 뒤섞인 심청은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어두운 방 한가운데, 한 소녀가 서 있었다. 그 소녀는 심청과 같은 옷을 입고, 그녀와 똑같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용왕에게 절을 하고 있었다.

“저기 혹시 제 어머니이신가요?” 소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심청이 했던 대사를 그대로 따라했다. 모든 행동과 말투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심청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는 소녀가 자신을 따라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며 물었다. “너... 누구야?”

소녀는 심청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말투로 되물었다. “너... 누구야?”

심청은 소녀를 따라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방 안의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그림자를 만들어냈고, 소녀는 그 어둠 속에 가려져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의 움직임은 심청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 심청이 몸을 살짝 옆으로 돌리자, 소녀도 그와 반대로 몸을 돌렸다.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있는 듯했다.

심청은 순간 기이한 충동에 사로잡혀,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의 팔이 부드럽게 공중을 가르자, 소녀 역시 똑같이 춤을 추었다. 두 사람은 마치 물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동작으로 일치했다. 심청은 이 상황이 기묘하고도 아름답게 느껴졌다. 춤을 추는 내내 소녀는 심청의 모든 동작을 정확히 따라왔다.

그러나 춤이 계속될수록 심청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녀는 마침내 춤을 멈추고 헐떡거리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소녀도 마찬가지로 춤을 멈추고, 심청을 바라보았다. 소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어둠 속에 숨어 있었지만, 그 시선은 분명 심청을 향하고 있었다.

심청은 천천히 소녀에게 다가갔다. 그 소녀가 누구인지, 그리고 왜 자신을 따라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알지 못하는 힘에 이끌리듯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끝이 소녀의 얼굴에 닿았다. 차갑고, 미끌미끌했다.

소녀도 심청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더듬으며, 서로를 확인하고 있었다. 심청은 마치 처음 보는 자신의 얼굴에 매료된 듯, 그 차가운 감촉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분명 심청의 얼굴이었지만, 동시에 무언가 낯설고도 기묘했다.

그 순간, 뒤에서 쨍그랑 하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심청은 즉시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방 안에 시녀가 서 있었다. 시녀는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손에 든 등불을 켜 방을 밝히기 시작했다. 빛이 퍼지면서 어둠 속에 감춰져 있던 모든 것이 드러났다.

심청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는 원기둥 모양의 물거울에 비치는 소녀가 있었다. 심청은 놀라서 그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자신의 얼굴을 만지던 소녀는 어디로 간 것일까?

시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심청에게 다가왔다. 심청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여기... 저를 흉내내는 것이 있었어요.”

시녀는 잠시 심청을 바라보다가, 왕의 탁자에 놓인 조개껍데기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 조개껍데기를 열었다. 그 순간, 심청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여기... 저를 흉내내는 것이 있었어요.”

심청은 깜짝 놀라 시녀를 바라보았다. 시녀는 무심하게 설명했다. “용왕님의 재생기예요. 말이 조개껍데기 안에 녹음되어 있다가, 조개가 입을 벌릴 때마다 재생되는 것이죠.”

심청의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떨쳐지지 않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제 목소리가 재생되었군요,” 심청은 물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방 안에서 제 목소리가 들려서… 하지만,”

시녀는 심청에게 말했다. "밤이 늦었으니 방으로 돌아가시지요."

심청은 물거울에 비친 시녀의 모습을 힐끔 보았다. 시녀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그 목소리에는 마치 무언가 감추고 있는 듯한 기묘한 차분함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녀는 고개를 숙여 예의를 표한 뒤, 물거울 앞에서 천천히 돌아섰다. 심청은 시녀의 멀어지는 모습을 물거울을 통해 바라보다가, 문득 물거울 속 잔상의 치마자락의 색깔이 숨소리에 맞추어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것을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착각이라고 생각했지만, 물거울 속 치맛자락이 갈색에서 검은색으로, 다시 연한 회색으로 천천히 변하는 것이 확실해졌다.

심청은 놀란 눈으로 그 변화를 응시했다. 물거울 속의 자신은 여전히 변함없는 자세로 서 있었지만, 그 잔상은 마치 물거울 속에서 따로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심청은 손끝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끼며,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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