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어젯밤의 과음 때문인지,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다. 머리는 빙글빙글 돌았고, 심장은 이따금 쿡쿡 쑤시며 나를 괴롭혔다. 창밖으로 스며드는 햇빛은 따갑게 느껴졌고, 가게 안의 공기는 퀴퀴하게 눅진했다. 평소라면 손님들에게 따뜻한 미소를 지었을 테지만, 오늘은 그저 얼른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눅눅한 이불 속에 파묻히고 싶을 뿐이었다.
오전 내내 몇몇 손님이 다녀갔다. 먼저 젊은 부부가 갓난아기를 데리고 왔다. 아기는 포동포동한 볼을 붉히며 칭얼거렸고, 부부는 다정한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사진을 준비했다. 그 다음은 엄마 손에 이끌려 온 꼬마였다. 아이는 카메라 앞에서 몸을 배배 꼬며 울상을 지었고, 어머니는 부드럽게 달래며 말했다.
“얘야, 남는 건 사진뿐이란다.”
그 말이 내 가슴에 묘한 울림을 남겼다. 남는 건 사진뿐이라… 평소라면 그 말에 공감하며 손님과 이야기를 나눴을 테지만, 오늘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기계적으로 렌즈를 조정했다.
“조금 더 왼쪽으로, 웃어 봐. 아저씨 봐야지. 자, 찍는다.”
목소리는 건조했고, 손짓은 무미건조했다. 아이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지만, 사진 속 그 미소는 어색하게 굳어 있었다.
그 뒤로는 축구 유니폼을 입은 소년이 찾아왔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들러붙은 채로 그는 씩씩하게 포즈를 취했다. 이어 증명사진을 찍으러 온 청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첫 입사지원서를 준비한다던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내 앞에 섰다.
“형 봐요, 자, 찍습니다.”
내 심드렁한 지시에 그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런 사진으론 좋은 인상을 주기 힘들 텐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그는 날을 잘못 골랐다. 나에게 오늘은 그저 견뎌야 할 하루일 뿐이었다.
청년이 조심스레 물었다.
“포토샵 되나요?”
나는 그의 얼굴을 보지도 않고 대충 대답했다.
“아, 그럼요.”
하지만 사실 포토샵을 해줄 기력조차 없었다. 흐릿한 정신으로 가게를 지키는 것만도 벅찼다. 30분 뒤 그가 다시 찾아와 사진을 받아 들고 떠날 때, 나는 형식적인 인사만 건넸다.
“감사합니다,” 그가 말했다.
“네네.”
사진을 확인하며 나가는 그의 뒷모습에는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설렘이 묻어났지만, 나는 왠지 그 발걸음이 고단한 여정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점심 무렵, 가게 문이 다시 열렸다. 중년의 남자가 들어섰다. 그가 모자를 벗는 순간, 나는 숨을 삼켰다. 그의 얼굴은 거울 속 내 모습과 똑같았다.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 역시 나를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얼굴이 저랑 똑같으신데요?” 내가 먼저 입을 뗐다.
“사진사 10년 만에 이런 일은 처음이군요.”
그는 쿡쿡 웃으며 대꾸했다.
“이거 참 놀랍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내가 물었다.
“이서진입니다.”
나는 멍하니 그를 쳐다봤다.
“이런 우연이… 저도 이서진인데요.”
“여기 사세요?” 그가 물었다.
“네, 토박이죠.”
“이상하네요. 저도 토박인데, 동네에서 한 번도 못 봤으니 신기한 일이군요.”
그는 자켓을 벗어 테이블에 걸치고 검은 양복 차림으로 의자에 앉았다. 단정한 옷차림과 단호한 눈빛이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격식 있게 입으셨네요. 어떤 사진으로 쓰실 건가요?” 내가 물었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문득 생각이 들더군요. 자연스럽고 편안한 모습이 담긴 사진을 갖고 싶다고. 오늘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이 그날인 것 같아서 이렇게 왔습니다.”
나는 카메라 렌즈 너머로 그를 바라보며 제안했다.
“자연스러운 사진이라면 옆모습은 어떠신가요?”
“아니요, 무조건 정면이어야 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나는 그 단호함에 살짝 놀랐지만 더 캐묻지 않았다.
“증명사진 규격으로 찍으실 건가요?”
“11사이즈로 부탁합니다.”
“일반적인 선택은 아닌데요.”
“무조건 11사이즈로 해야 합니다.”
“집에 걸어두시려고요?”
“그렇게 되겠죠.”
그는 대답을 마치자마자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마치 집에서 연습을 거듭한 듯한, 지나치게 완벽한 웃음이었다. 나는 셔터를 눌렀다.
찰칵.
“몇 장 필요하세요?”
“한 장이면 됩니다.”
한 장이라… 이상한 손님이었지만, 손님의 뜻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럼 30분 후에 찾으러 오세요.”
그는 가슴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사진 찾을 때 지불하셔도 됩니다.”
“지금 내겠습니다.”
그가 내 손에 5만 원권 지폐를 쥐여주며 말했다.
“수고하세요.”
“네, 같은 동네 사는 인연이니 다음에 술 한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문을 나섰다.
“참 이상한 손님이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그의 사진을 인화해 봉투에 담아 책상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무심코 그가 앉았던 의자를 보니, 작은 지갑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지갑을 주워 열어본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주민번호까지 똑같잖아?
신분증 속 그의 이름, 생년월일, 모든 것이 나와 일치했다.
의자 옆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검은 정장을 입고 있는 나 자신. 아침에 집을 나서며 옷장에서 무심코 꺼내 입은 옷이 떠올랐다. 불현듯 불안이 밀려왔다. 나는 앞서 찍은 손님들의 사진을 꺼내 펼쳤다. 갓난아기, 꼬마, 축구 유니폼을 입은 소년, 증명사진을 찍은 청년… 모두 과거의 나였다. 아기와 함께 온 젊은 부부를 떠올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은 어렴풋이 기억 속 부모님의 젊은 얼굴과 닮아 있었다.
“못 알아봤어… 그렇게 젊은 모습은 상상도 못 했지.”
혼잣말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오늘은 내 일대기를 보는 날인가?”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30분 전 찾아온 남자는 지금의 내 나이대로 보였다. 그렇다면 곧 노인이 된 나도 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을까? 나는 시계를 보았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이 20분 남아 있었다.
“벌써 20분밖에 안 남았어?”
불안이 점점 커졌다.
“30분 후에 오라고 한 남자는 왜 아직 안 오는 거지?”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문을 바라봤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 지나도 손님은 오지 않았다. 옆 가게 주인들이 하나둘 문을 잠갔다. 창밖은 어둑어둑해졌고, 거리는 고요 속으로 빠져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말고 멈칫했다.
갑작스레 가슴 한가운데를 쥐어짜는 통증이 밀려왔다. 숨이 막히며 목을 타고 왼쪽 어깨와 팔, 등, 턱까지 날카로운 고통이 퍼졌다. 식은땀이 이마를 적셨고, 오전부터 이어지던 현기증이 메스꺼움으로 바뀌었다. 죽을 것 같아.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입에서 헐떡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바닥에 구토를 쏟아내며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손끝이 파랗게 변했고, 의식이 흐릿해졌다. 근육에서 힘이 빠져나가며 몸이 점점 무거워졌다. 더는 생각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다음 날, 상가 앞에서 한 주민이 말했다. "들었어? 어제 서진사진관 주인이 죽었대잖아."
"혼자 사는 그 총각 말하는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더라고, 퇴근길마다 술을 사가던데."
"그런데 이상하지.
죽을 걸 알았던 것처럼 그 날 검은 정장을 입고
영정 사진까지 찍었다고 하더라고.
한 손에는 노잣돈까지 쥐고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