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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포 점수 : ★★☆☆☆)

INTERVIEW

by 미히

"안녕하세요. 이번에 한국인이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인물 1위에 선정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 앞에 앉은 남자는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세계 10위 안에 드는 부를 이룩한 인물이었다. 검은 정장에 감싸인 단단한 체구와 깊고 맑은 눈동자는 그의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말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다. 겸손함이 묻어나는 한마디였지만, 그 안에는 자신감이 은연중에 배어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최연소 억만장자로도 유명하시죠. 워커홀릭이라는 별명답게, 이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신제품 발표 컨퍼런스가 예정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이번 신제품은 사람들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겁니다.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의 눈빛에서 열정이 불꽃처럼 튀었다. 무엇인가 거대한 꿈을 품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빛이었다.


나는 인터뷰 대본을 손끝으로 훑으며 다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오늘이 40세 생일이시라고요?"

나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검은 눈동자는 마치 깊은 우주를 담고 있는 듯했다. 그 안에는 이상과 열정, 그리고 어쩌면 세상 모든 비밀을 품은 듯한 깊이가 있었다.


그는 손목시계를 흘끗 보며 미소를 지었다.

"네, 그렇죠. 제가 정확히 7시 29분 1초에 태어났으니, 이제 10분하고 18초쯤 지나면 완벽히 40세가 되는 셈이네요."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참으로 정밀한 사람이었다. 저런 치밀함이 그를 억만장자의 자리에 올려놓은 걸까?

"정말 정밀하시네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그는 부드럽게 대꾸했다.

"40세 생일은 제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20년 전, 정확히 이 시간에 제 회사가 시작되었거든요."


나는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네, 20세라는 어린 나이에 합격한 최고의 대학을 과감히 그만두고, 회사에 뛰어들어 수많은 고난을 이겨내신 끝에 이 자리에 오셨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성공의 비결이 있으신가요?"


그는 잠시 나를 응시했다. 깊은 눈빛 속에서 과거의 기억이 스쳐가는 듯했다. 그러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비결이라기보다는… 제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는 묘한 신비로움이 담겨 있었다.


"20년 전, 저는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에 입학해 무척 들떠 있었습니다. 그날은 과외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죠. 그러다 우연히 풀숲 사이에서 이걸 발견했습니다."


그는 주머니에서 직사각형 모양의 물건을 꺼내 나에게 내밀었다. 언뜻 보면 평범한 손거울처럼 생겼지만, 그 표면은 이상하리만치 매끄럽고 투명했다.


나는 호기심에 물었다.

"이게 뭔가요? 평범한 거울처럼 보이는데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하지만 이 거울을 주목하게 된 건, 그 표면에 무언가가 쓰여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글자였어요. 더 정확히 말하면… 편지였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을 이어갔다.

"거울을 들어 올렸을 때, 장문의 글이 제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그 글은 자신을 60세의 저라고 소개하며, 20세인 제 안부를 묻더군요. 그는 사람의 인생은 20세까지 쌓아온 것으로 결정된다고 믿는다고 했습니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이야기는 점점 더 기묘해지고 있었다.

"조금 놀랐죠. 최고의 대학에 입학한 그 순간,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는 이 거울을 통해 자신에게 조언을 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모든 결정을 이 거울에 의지하기 시작했어요. 대학을 중퇴하고, 회사를 설립하고, 결혼을 하고, 이렇게 부자가 되었죠."


그는 양팔을 벌리며 웃었다. 그의 손목에 찬 명품 시계와 손가락에 낀 금반지가 조명 아래 반짝였다. 성공의 상징처럼 빛나는 그 모습은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았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제 시간대에서 한 해가 지날수록, 편지를 보내는 본인은 점점 젊어질 거라고. 그러니까 제가 나이를 먹을수록, 편지를 쓰는 저는 한 해 전의 저로 바뀌는 거죠."


나는 그의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었다. 머릿속에서 그의 설명을 정리하며 물었다.

"잠깐만요. 그러니까 60세의 당신이 20세의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고, 한 해가 지날수록 그 간격이 좁혀져서… 결국 40세인 오늘, 두 존재가 만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는 다시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이제 5분하고 33초 남았군요. 아무튼, 저는 해가 갈수록 성공을 거듭했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마치 오래 기다려온 순간을 앞둔 사람처럼 들떠 보였다.


"그 편지를 보내는 사람을 의심하지 않으셨나요? 60세의 자신이라는 말을 쉽게 믿기 어려웠을 텐데요."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의심했죠. 하지만 제가 그를 믿을 수 있었던 건, 20세의 저와 똑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투, 사고방식, 심지어 꿈까지… 모두 저와 같았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20세까지 이룬 것이 인생을 결정한다고 하셨는데, 그건 절대 바뀌지 않는 걸까요?"


그는 잠시 얼굴을 찡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저는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내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그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걸까요?"


그의 표정이 환해졌다.

"네, 그렇습니다. 사실 오늘 제가 발표하려는 건 바로 이 거울입니다. 20년간 제가 계획했던 것, 이 편지가 이끈 모든 것이 오늘 컨퍼런스에서 공개될 겁니다. 저는 이 거울을 손봐서,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이 자신의 미래와 소통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조금 미리 공개하는 셈이지만, 이제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겁니다."


그 순간, PD가 나에게 사인을 보냈다. 손목시계를 가리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60세의 당신이 처음 편지를 보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이 뭐였나요?"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때까지 살아있구나’였죠. 그게 저에게 큰 희망이 되었습니다. 그의 필체는 분명하고 건강해 보였으니, 저는 남들보다 걱정을 덜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의 유머와 여유는 인터뷰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가 다시 손목시계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제 시간이 다 되었군요. 마지막 편지를 읽어볼까요?"


그는 들뜬 표정으로 거울을 들었다. 거울 표면에 글자가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그 신비로운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그는 거울을 응시하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러더니 얼굴을 환히 펴며 나에게 말했다.

"역시, 거울은 정확하군요."


그가 거울을 내밀었다. 그 위에는 단 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얼른 인터뷰를 끝내.’


그는 크게 웃었다.

"인터뷰가 끝날 시간인가 보군요."


그는 정장 자켓을 가볍게 털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다 문득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담당자님 나이가 어떻게 되시죠?"


"28살입니다."

내가 대답하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럼 한 번 사용해보시죠."


그는 거울을 내 손에 쥐여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거울을 받아 들었다. 매끄러운 표면에 내 얼굴이 비쳤다. 그리고 곧, 글자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글자가 완성되는 순간, 나는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충격에 휩싸였다. 거울 속에서 굳어버린 내 모습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거울을 다시 가져갔다.


"좋은 시간 되세요."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방송 관계자들이 환한 미소와 박수로 그를 배웅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다. 방금 거울 속에서 본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며 나를 사로잡았다.


미래의 내가 쓴, 완성되지 않은 단 한 문장.

‘반드시 그를 막아야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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