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은 이미 몇 달째 이어지고 있었다. 하늘은 무자비하게 맑았고,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았다. 대지는 쩍쩍 갈라져 메마른 흙덩이가 드러났고, 농작물은 시들어가는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한때 푸르던 들판은 이제 황량한 황토빛으로 변해 있었다. 농부들은 힘없이 밭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손에는 더 이상 생기를 잃은 옥수수 대가리 몇 개만 들려 있을 뿐이었다. 시장도 예전의 활기를 잃었다. 상인들의 외침은 힘없는 메아리로 변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먼 기억 속에 묻힌 듯 희미하게 들릴 뿐이었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기조차 어려웠다. 눈을 마주치면 서로의 절망이 고스란히 전염될까 두려웠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희망의 불씨는 이미 오래전에 꺼져버린 듯했다.
“이 모든 게 백색공주 때문이라니까!” 한 농부가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진 대지처럼 거칠었다. 손에 든 마른 옥수수는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힘없이 흔들렸다. 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그의 외침에 귀를 기울였다.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녀가 태어난 후로 마을에 재앙이 끊이질 않잖아,” 또 다른 목소리가 덧붙였다. 그들은 알비노 공주의 하얀 피부와 붉은 눈동자를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맞아, 그녀의 붉은 눈동자와 흰 피부는 불길한 징조야,” 한 상인이 단호하게 맞장구쳤다. 그의 얼굴은 굳어 있었고, 손에는 팔리지 않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우리 마을에 평화가 찾아오려면 그녀를 멀리해야 해,”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군중 사이에서 동조의 웅성거림이 퍼져나갔다.
두려움과 불안은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더 잠식했다. 한 여인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중얼거렸다. “그 붉은 눈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쳐요. 마치 저주가 우리를 노리는 것 같아요.” 또 다른 남자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가뭄이 이렇게 심해진 것도 그녀 때문일 거야. 그녀가 왕궁에 있는 한 우리는 평화를 찾을 수 없어.”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분노는 시장 전체로 퍼져갔다. 백색공주는 그들에게 모든 불행의 원흉으로 여겨졌다. 그녀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 저주처럼 그들의 삶을 옥죄는 것 같았다.
그때, 군중 속에서 한 노인이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그의 걸음은 느렸지만 단단했다. 얼굴에는 세월이 깊이 새긴 주름이 가득했고, 눈빛은 지혜와 온화함으로 빛났다. 그는 지팡이를 짚으며 사람들 앞에 섰다. “모두들 진정하시오,” 노인은 부드럽지만 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힘이 있었다. 시장은 잠시 숨을 죽였다. “백색공주가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온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소,” 그는 차분히 말을 이었다. “그녀는 단지 다르게 태어났을 뿐이오. 그녀의 하얀 피부와 붉은 눈은 저주가 아니라 그녀만의 특징일 뿐이오. 우리가 맞서야 할 것은 가뭄이지, 공주가 아니오.”
노인의 말은 이성적이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두려움과 분노는 이미 깊이 뿌리내린 나무처럼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럼 이 가뭄은 뭐 때문이오?” 한 젊은이가 반박하며 소리쳤다. “공주가 태어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잖소!” 그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우리는 무언가를 해야 해!” 또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순 없어!” 그들의 외침은 점점 더 격앙되었다. 시장은 혼란으로 가득 찼고, 공포는 그들을 하나로 묶는 끈이 되어갔다.
그 순간, 시장 한가운데에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 한 아이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의 작은 손에는 물병이 들려 있었다. 물병 안에는 몇 모금 남지 않은 물이 찰랑거렸다. 아이는 고개를 들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맑았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야 해요,” 아이가 말했다. 군중은 잠시 말을 멈췄다. “가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함께 노력해서 이겨내야 해요.” 아이의 눈은 순수했고,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 단순한 말에 시장은 잠깐의 정적에 휩싸였다.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이의 말이 옳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았다. 가뭄은 자연의 섭리였고, 누군가를 탓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은 달랐다.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백색공주는 여전히 그들의 불안의 상징으로 남아 있었다. “그 애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한 노파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 붉은 눈을 볼 때마다 가슴이 떨려.” 사람들은 아이의 말에 잠시 흔들렸지만, 곧 다시 불안 속으로 빠져들었다. 백색공주의 하얀 피부와 붉은 눈동자는 그들에게 여전히 낯설고 두려운 존재였다. 시장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해결책을 찾고 싶었지만, 그 방향은 여전히 공주를 향하고 있었다. 가뭄은 그들의 삶을 위협했고, 백색공주는 그 원인을 돌리기 쉬운 대상이 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