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깊은 산과 푸른 숲으로 둘러싸인 어느 왕국에 아름다운 왕비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섬세한 손길과 따뜻한 미소로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인물이었다. 창문 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바람의 속삭임을 들으며 바느질을 하곤 했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어우러진 풍경은 그녀의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었고, 그녀는 그 순간을 사랑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한 날이었다. 창밖에는 눈이 소복이 쌓여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유리창을 스치며 낮은 소리를 냈다. 왕비는 평소처럼 창가에 앉아 바느질에 몰두하고 있었다. 손끝에서 실이 부드럽게 흘렀지만, 그날은 손이 살짝 떨렸다. 순간, 바늘이 그녀의 손가락을 찔렀다. 작은 통증과 함께 손가락에서 붉은 피가 방울져 나왔다. 세 방울의 피가 순백의 눈밭 위로 떨어졌다. 하얀 눈 위에서 붉은 피는 선명하게 번지며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왕비는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창틈으로 스며들며 그녀의 뺨을 스쳤지만, 그녀의 눈은 눈밭에 고정되어 있었다. 붉은 피가 하얀 눈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서 그녀는 깊은 감동을 느꼈다. 한숨을 내쉬며,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저 눈처럼 하얀 피부와 저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가진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그 말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녀의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난 간절한 기원이었다.
그녀는 눈을 감고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차가운 방 안에서 그녀의 마음은 뜨겁게 타올랐다. 그녀는 손을 가슴에 얹고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날이 갈수록 그 소망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밤마다 꿈속에서 하얀 피부와 붉은 입술을 가진 아이가 나타났고, 그녀는 그 아이를 품에 안는 상상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마침내, 하늘도 그녀의 열렬한 기도를 들은 듯했다.
시간이 흘러 왕비는 임신을 했다. 왕궁은 기쁨으로 들썩였다. 백성들은 왕비의 건강과 태어날 아이를 위해 축복을 빌었다. 마침내 아기가 태어나는 날이 다가왔다. 그날은 왕국 전체가 숨을 죽이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하늘은 맑았고, 햇빛이 왕궁의 첨탑을 비추며 희망의 빛을 드리웠다. 왕비는 긴 진통 끝에 마침내 딸을 품에 안았다. 숨을 몰아쉬며 그녀는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놀라움과 기쁨이 스며들었다.
아기는 왕비가 소원했던 대로 눈처럼 하얀 피부와 피처럼 붉은 입술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러나 그뿐만 아니었다. 아기의 눈동자는 피처럼 붉게 빛났다. 알비노 특유의 하얀 피부와 금빛 머리카락 사이에서, 그 붉은 눈동자는 신비롭고 강렬하게 빛났다. 마치 열정과 사랑, 그리고 깊은 비밀을 품은 듯한 눈빛이었다. 왕비는 딸을 처음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내 소원이 이루어졌구나,"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기의 작은 손이 그녀의 손가락을 잡았고, 그 순간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충만함을 느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왕비의 몸은 점점 쇠약해졌다. 출산의 고통은 그녀의 생명을 서서히 앗아갔다. 그녀는 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랑과 슬픔이 뒤섞인 눈으로 그녀는 아기를 바라보았다. "내 사랑하는 딸아, 너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보물이란다. 부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아야 해. 너의 아버지와 함께 이 왕국을 지키고, 너의 빛나는 붉은 눈동자로 세상을 바라보며 강인하게 자라길 바란다." 그녀의 목소리는 약했지만 단호했다. 마지막으로 딸의 손을 꼭 쥔 채, 왕비는 숨을 거두었다.
왕비의 죽음은 왕국 전체에 깊은 슬픔을 안겼다. 왕궁의 종소리가 낮게 울리며 그녀의 떠남을 알렸다. 왕은 사랑하는 왕비를 잃은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딸을 품에 안고 왕비의 유지를 이어나가기로 다짐했다. 딸은 그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백성들은 공주의 붉은 눈동자를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것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저 붉은 눈은 저주받은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수군거렸고, 그 말은 바람처럼 퍼졌다.
공주는 점점 고독해졌다.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속삭임은 그녀의 어린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붉은 눈동자가 왜 두려움을 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그녀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왕은 딸을 위로하며 말했다. "너는 특별하단다. 네 눈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어." 하지만 그의 말은 백성들의 편견을 바꾸지 못했다.
그럼에도 공주는 강인하게 자랐다. 그녀의 붉은 눈동자는 어머니의 사랑과 희망을 담아 반짝였다. 외로움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녀는 알비노 공주로서, 세상 누구보다 아름답고 강한 존재로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