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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Jul 17. 2023

체험 중1 사회 시간 - 고기 습곡 산지

셰난도어 여행

중학교 1학년은 사회 시간에 ‘고기 습곡 산지’에 대해 배운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중1 사회 학습서에는 ‘고기 습곡 산지는 고생대에서 중생대 초기에 조산운동으로 형성된 산지로 그 후 오랜 시간 침식작용을 받아 낮고 완만하다.’고 쓰여있었다.

우리나라 산들도 산들 중에서는 할아버지뻘인 고기 습곡 산지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치악산과 태백산맥 근처에 사는 나로서는 그게 낮고 완만한 건지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내가 보기엔 꽤나 뾰족하고 걷기 힘든 것 같은데 말이다.

그건 내가 신기 습곡 산맥인 아직 로키산맥을 못 가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내가 ‘그래! 이런 게 고기 습곡 산지구나!’ 느낀 건 애팔래치안 산맥을 보고서다.

워싱턴 DC에서 벗어나 셰난도어가 가까워지니 누군가 땅을 반듯이 접어 놓은 듯 일정한 높이의 벽이 나타났다.

마치 지구의 주름살처럼 도로 앞에서 끊어지지 않고 한없이 길게 이어졌다.

어쩐지 로키 산맥을 종주한다는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지만 애팔래치안은 종주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있더라니.           




미국에서 국립공원을 갈 때마다 가장 먼저 방문하는 곳은 ‘비지팅 센터’다.

비지팅 센터에는 해당 국립공원의 지형과 식생, 역사를 알 수 있는 작은 박물관과 기념품점 그리고 가장 중요한 화장실이 있다.      

미국의 국립공원과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곳, 그러니까 독립전쟁이나 남북전쟁이 있었던 곳에는 어김없이 주니어레인저 프로그램이 있다.

미국에서 어떤 도시를 여행할 때 구글에 접속해서 방문하는 도시 이름과 junior ranger를 검색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비지팅 센터에 가서 “주니어레인저 책 받을 수 있을까요?” 하면 책을 주는데 책에는 꽤 양질의 정보도 담겨있다.

셰난도어 국립공원 책에는 애팔래치안 트레일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표시된 지도와 셰난도어에서 볼 수 있는 식물과 동물에 대한 정보도 퀴즈 형식으로 담겨 있었다.

어른인 나도 아이들의 주니어레인저 책 덕분에 그냥 지나쳐버릴 만한 것들을 공부하는 재미가 있다.

아이들은 책을 완성하면 받을 수 있는 배지 덕분에 다소 힘든 트레킹이나 재미없는 일정도 버틴다.      


우리 가족은 오후 4시 반, 비지팅센터가 문을 닫기 30분 전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주니어레인저 책 주세요.”

“물론이죠. 셰난도어에 며칠 묵나요?”

“내일까지요.”

“아쉽게도 오늘은 레인저 프로그램은 끝났어요. 내일 할 수 있는 건 10시 트레킹이네요.”


팸플릿을 보니 셰난도어에는 레인저프로그램이 생각보다 다양했다.

역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하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집중되어 있었다.

‘3시간만 더 일찍 도착했으면 다른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었는데!’     


다음 날, 7월 4일은 독립 기념일이었다.

그날의 주니어레인저 트레킹은 스토니 맨 트레일 Stony Man Trail이었다.

스토니 맨 트레일은 2.5킬로미터 정도인 짧은 트레일이고 길도 울퉁불퉁한 돌길이 아니라 걷기 편한 흙길이었다.

아이들과 걸어도 왕복 두 시간 정도 걸려서 부담 없다.      


트레일에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었다.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은 남자와 미국 국기의 반디나를 쓴 여자가 초등학교 저학년쯤 돼 보이는 딸 둘을 데리고 있었다.

반디나를 쓴 여자는 괄괄한 목소리로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어디서 왔어요?”

“필라델피아, 아! 그리고 한국이요.”

“모자를 보고 필라델피아인 줄 알았어요.”

필라델피아 야구팀 필리스의 광팬인 아들은 항상 빨간색 필리스 모자와 필라스 티셔츠를 입고 정체성을 드러내고 다닌다.

그러곤 혼자 필리스보다 잘하는 팀 모자를 쓴 사람을 보면 경계한다. 그날도 양키스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몇 번이나 “왓? 양키스 모자를 쓰다니! 양키스는 나빠.” 하고 혼자 짜증을 냈는데 재미로 그러는 건지 진심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음에 도착한 가족은 백인 노부부, 그리고 키가 엄청나게 큰 남자와 역시 키가 크고 금발을 양 갈래로 땋은 여자가 딸 둘과 아들 한 명을 데리고 도착했다.

그렇게 네 가족이 레인저와 함께 트레일을 출발했다.      


“애팔래치안은 고생대에 생긴 산이 침식작용으로 낮아지고 완만해졌어요. 애팔래치안 트레일은 총 2215마일입니다. 애팔래치안에서 셰난도어에만 사는 도마뱀이 있어요. 셰난도어에만 서식해서 이름도 셰난도어 도마뱀이지요.”


내가 알아들은 건 이 정도였다.

조금 길을 걷다가 레인저가 길 가의 작은 돌을 하나 들췄다.

그러곤 작고 붉은 뭔가를 가리켰다.

처음엔 그게 뭔지 잘 보이지도 않았다.


“도마뱀이다.”


주니어 레인저 책에서도 봤지만 그렇게 작을 줄은 몰랐다.

내 새끼손가락만 한 길이에 두께는 그 절반쯤이었으니.

그런데 그 도마뱀은 어떻게 레인저랑 입을 맞춘 건처럼 정확히 그 돌 아래에 있었던 거지?      


“셰난도어는 1935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첫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 어딘 줄 아세요?”

“옐로스톤이요.”

“맞아요. 아마 서부에만 국립공원이 몰려 있어서 동부에도 하나쯤 있어야 할 것 같아 지정한 것 같아요.”

이건 나랑 의견이 같다.


길에는 방학을 맞아 애팔래치안 트레일 종주를 나선 학생들, 아저씨들이 잠시 쉬느라 배낭을 내려놓고 철퍼덕 앉아 있었다.

반디나를 쓴 여자는 또 스스럼없이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배가 고프지 않아요? 목마르죠?"

대답할 기운이 없는 건지 딱히 대화가 오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애팔래치안을 종주할 때 물은 어떻게 구할까 궁금해졌다.

<나를 부르는 숲>에서 읽었듯이 일 이주만에 한 번 마을이 있는 곳에 가서 음료와 먹을 것을 사던데, 그동안 산속에서는 어떻게 물을 구하는 건지.

아마도 정수필터가 들어있는 물병을 사서 물을 걸러 마시는 것 같기는 하다.


정상에서 본 풍경마저 치악산에서 내려다보면 보이는 여느 풍경과 다름없었다.

이미 셰난도어에 다녀왔던 지인들의 말처럼 대단할 것이 없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곳.

서부처럼 어마어마한 장관은 아니지만, 그곳은 애팔래치안이었다.


애팔래치안 종주를 나설만한 열정과 동기는 없지만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따라갔다는 사실만으로 어깨가 으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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