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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주관적인 일기로 객관적인 책 쓰기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와 걷는 지금이 좋아>를 출간하기까지

by 니나

여행 에세이는 주관적인 경험이 바탕이 되는 글이다. 여행하면서 썼던 일기도 상당히 주관적인 인상과 느낌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가 본 풍경에 대해서 상세하게 쓰기보다는 내 느낌과 우리 가족에게 있었던 일을 남기는 주관적인 방법으로만 일기를 써왔다.

만약 내가 어디를 갔고 무엇을 봤는지 상세하게 기록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읽을 가치가 있는 글일까? 애팔래치아를 트레킹했던 경험을 에세이로 쓴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은 내가 따라 쓰고 싶었던 에세이였다. 그 책에는 미국의 국립공원이 처음에 누구의 생각으로 추진되었는지 몇 장에 걸쳐 쓰여있다. 함께 책을 읽었던 친구는 그 몇 장이 너무 지겨웠다고 했는데 나는 그 몇 장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나는 내가 몰랐던 새로운 정보가 나오면 솔깃해하는 독자이기 때문이다. 빌 브라이슨과 친구가 툭탁거리며 길을 걷는 경험과 어우러져 진지하게 등장하는 국립공원의 역사나 작가가 밟고 있는 산맥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 덕분에 내가 그와 함께 길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작가의 흥미로운 경험만 쓰여있다면 그 책은 완성도 없는 책에 불과했을 거다.


책의 개요를 작성한 후에 일기를 바탕으로 국립공원의 이야기를 채운 다음 작업은 내가 본 것을 객관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이었다. 나는 국립공원에서 가져온 신문과 아이들의 레인저 책을 펼쳐놓고 읽었다. 그 안에는 국립공원별로 역사와 국립공원에서 볼 수 있는 동·식물의 정보, 지도와 트레일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그 기초 정보를 참고한 다음에 나는 읽어보고 참고할 만한 책을 찾기로 했다.

먼저 에세이를 어떤 방법으로 적어야 할지 고민하면서 여행 에세이를 찾아 읽었다. 여행 에세이가 아니라 스페인 내전에 참전해 기록한 책인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읽으며 경험을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감탄했다.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도 읽었는데 ‘여행하면서 일기와 편지를 이런 식으로 쓸 수 있구나!’ 또 감탄했다.


써야 할 건 천지인데 감탄만 하다가 일주일이 훌쩍 가버렸다. 이제 정말 필요한 책을 읽어야 했다. 나는 챗GPT에서 ‘미국 사막이 배경인 배경 소설이나 에세이를 알려줘.’라고 입력했다. 챗GPT는 사막이 배경인 책을 4권 알려줬는데 그중에 번역본이 있는 책은 애드워드 에비의 『사막의 고독』뿐이었다. 다른 책은 한국에서 구하기도 힘들었다. 아마존을 월 결제한 후 킨들을 설치하면 읽을 수 있었겠지만, 책을 쓰는 것보다 번역해서 이해하는 데 에너지를 더 쏟게 될 것 같아서 번역본이 있는 책부터 읽어보기로 했다. 내가 몰랐던 작가였을 뿐 애더워드 에비는 꽤 유명한 자연주의 작가였다. 나는 겨우 3일 묵었던 유타 사막에서 그는 반년이 넘게 묵었다. 그의 책에는 내가 갔던 곳도 많이 등장했다. 나는 내가 걸었던 곳이 콘크리트 길이 깔리기 전에 어떤 곳이었는지 그의 책을 읽으며 다시 여행할 수 있었다. 에르난 디아스의 『먼 곳에서』, 폴 오스터의 『달의 궁전』을 읽으며 사막을 다시 여행했다.

솔트레이크시티와 유타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얻게 해 줬던 책은 마이클 길모어의 『내 심장을 향해 쏴라』였다. 둘째 형 게리가 살인을 저질러 사형을 당하게 된 사건을 통해 모르몬교였던 가족의 폭력의 역사를 샅샅이 밝힌 책인데, 내가 여행했던 솔트레이크시티가 전면적으로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유타와 솔트레이크시티에 대해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그곳의 초기 거주자들인 모르몬교도들에 대해 알게 됐다.

동부의 국립공원은 소설 『액스』와 빌 브라이슨의 에세이 『나를 부르는 숲』을 통해서 다시 여행했다. 지금 박찬욱 감독이 <어쩔 수가 없다>로 재해석한 소설 『액스』는 제지회사에서 해고당한 한 남자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하나둘 죽이는 이야기다. 배경인 메인주는 물이 풍부해 삼림이 울창한 곳인데 트레킹해보니 정말 숲이 울창한 곳이었다. 역시 제지회사가 많을 수밖에. 북서부의 몬태나주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보며 다시 여행했다.


경험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을 말할 때 어떻게 독자가 지루하지 않게 말할 수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며 읽었다. 정보를 대화 속에 녹이거나, 직접적으로 ‘이 국립공원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라고 말하거나, 내가 말하고 싶은 논점을 분명하게 밝히면 읽기가 쉽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예를 들면 글레이셔 국립공원에는 100개가 넘는 빙하가 있었지만, 지금은 23개 남아있다. 과학자들은 지금처럼 온난화가 진행되면 2030년에는 빙하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거라고 전망한다. 나는 나중에 또 글레이셔에 방문해도 빙하가 남아있으면 좋겠다. 고 생각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챗GPT를 활용하는 건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참고할 때는 출처가 어디인지 알려달라고 다시 물어본 다음, 그 출처가 신뢰할 만한 곳인지 판단해야 한다. 누군가의 블로그는 신뢰할 만한 정보가 아니다. 국립공원 홈페이지가 출처였을 때는 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다시 한번 읽어봤다. 그리고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그런 정보를 읽었다고 인용 문구를 남겼다.


“나는 국립공원을 다시 여행하고 있구나.”

재미있고 신선한 경험은 독자가 책을 읽는데 웃음을 주는 요인이지만, 지적인 독자를 위해서 우리는 객관적인 정보도 함께 제공해야 한다. 일기에서 시작된 글쓰기였지만 책을 읽고 미국 국립공원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내가 여행한 곳에 대해 이해하려고 애쓰며 나는 국립공원을 다시 여행했다. 책을 쓰면서 나는 다시 내가 걸었던 곳을 여행할 수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그 말을 다시 이해할 수 있었다. 독자에게도 내가 알리고 싶은 정보를 준다면 여행 에세이를 읽으며 책으로 그곳을 여행하는 독자에게는 그 여행지가 생생하게 전달될 것이고, 그곳을 여행할 독자에게는 여행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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