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와 걷는 지금이 좋아>를 출간하기까지
6월 중순에 책을 마무리한 후에 게으름이 시작됐다. 몇 달간 일정하게 시간을 내서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고, 그 습관대로 일정 시간 앉아 책을 읽고 필사하고 신문을 읽고 글을 쓰고 싶었는데 역시 나는 마감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우리 집은 일반적인 4인 가족이다. 가족이 넷인데 활동 시간은 제각각이다. 나와 딸은 아침형 인간이고, 남편과 아들은 올빼미형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일찍 찾는다는 말이 있는데, 야행성인 남편과 아들을 볼 때마다 일찍 일어난다고 꼭 좋은 건 아닌 것 같다. 올빼미형 인간인 둘은 다 하려고 생각했던 일을 다 끝마치기 전까지는 졸리지 않은 것 같다. 나와 딸은 해야 할 일이 있건 말건 밤 10시 이후로는 눈을 뜨고 있어도 뜨고 있는 게 아니다. 대신 아침 6시면 반짝 눈을 뜬다. 둘 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힘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편이다.
그러면 언제 글을 써야 할까? 나는 아침형 인간이기 때문에 늦은 시간에는 뭔가를 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차라리 새벽 4시에 일어날지언정. 책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할 때는 아이들 방학 무렵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학원을 많이 다니지 않아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주 2회 수학, 주 2회 피아노 레슨이 전부였다. 아침형 딸은 7시부터 일어나 아침을 먹고 집안을 휘젓고 다니고, 야행성인 아들은 새벽 1시가 되어야 잠이 든다. 파수꾼들 덕분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커피를 내려 식탁에 앉아 글을 좀 써볼까 하면 딸이 부스럭거리며 빵을 굽고 우유를 꺼내서 아침을 먹는다. 내가 노트북을 펼쳐둔 식탁 앞자리에서! 안방에는 아침에는 1분이라도 더 자야 개운한 야행성 남편이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다.
아쉽게도 방은 세 개뿐. 아파트 카페는 겨울 아침에는 너무 추웠고, 아파트 독서실에서 노트북을 탁탁거리면 공부하는 학생에게 방해가 될 것 같고. 그래서 아침마다 집 앞 카페에 가기로 했다. 한 달에 20일 동안 카페에 간다고 치면 한 달에 십만 원. 방학이 두 달이니까 이십 만원. 두 달 동안만 눈을 딱 감고 시험 기간인 학생이 스터디 카페에 가듯 카페에 가기로 했다. 매일 아침 집 앞 카페가 문을 여는 오전 7시에 카페에 가서 오전 9시까지는 무조건 앉아 있기로 정했다.
글을 쓰기로 작정했다면 일정하게 시간을 내서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있는 건 필수다. 집에서 노트북을 켜고 앉으면 글을 쓰다가 물을 마시고, 간식을 조금 먹다가 휴대폰을 잠시 보고, 아이들이 엄마 부르면 갔다가 다시 앉고, 바닥에 굴러다니는 머리카락이 보이면 청소를 시작하고, 그러다 점심때가 다가와 냉장고 문을 열면 먹을 게 없어서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평소에는 그렇게 부지런한 편도 아닌데 글쓰기를 할라치면 왜 갑자기 부지런해지는지.
하루 종일 이일 저일 하는데 원고 분량은 늘어나지도 않고, 더 이상 진행이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딱 2시간이라고 시간을 잡으니 그 시간에 휴대폰을 보거나 하는 딴짓을 할 겨를이 없었다. 겨울에는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서 운동 부족이었는데 왕복 30분을 숨이 차는 속도로 걸으니 나름 유산소 운동도 됐다.
카페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은 명상의 시간이기도 했다. 현관을 나서며 숨을 들이마시면 쨍하게 차가운 공기에 콧 속이 찡해지며 눈물이 찔끔 났는데, 그때부터 내 머릿속이 전환되는 것을 느꼈다. 종일 ‘엄마’라고 불리던 역할에서 벗어나 그냥 나를 오롯이 느낄 수 있었다. 길은 겨울이라 어둑어둑했고 사람도 거의 다니지 않았다. 길에서 깡총깡총 뛰고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혼자 신나게 뽀얀 입김을 내뿜으며 걸었다. 그래서인지 카페에 도착했을 땐 늘 경쾌한 기분이었다.
카페에는 매일 7시 반에 와서 해가 잘 드는 창가 자리에 앉아 반듯한 자세로 두꺼운 책을 읽는 사람도 있었다. 그 사람의 반듯함 덕분에 나도 카페에 있는 동안은 꾀를 부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아이들 방학 전에 초안을 대충 마무리했지만, 아직 분량이 모자란 국립공원도 있었다. 내가 쓴 책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와 걷는 지금이 좋아』에는 미국의 국립공원 13군데가 등장한다. 미국 서부는 풍경 자체가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기록이 많았다.
반면에 동부의 국립공원은 비행기를 타지 않고 하루이틀 정도만 운전하면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메인주의 아카디아 국립공원과 셰넌도어 국립공원은 계획 없이 훌쩍 떠난 곳이었기 때문에 기록이 적었다. 심지어 숙소도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예약했다. 그래서 동부의 국립공원은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동부의 국립공원을 제외하자니 책의 균형이 맞지 않아 뺄 수도 없었다. 동부에서는 국립공원보다 애팔래치아산맥이 지나가는 다른 곳에서 트레킹을 더 많이 했는데 책이 ‘국립공원’이 주제였기 때문에 그런 곳은 다루기도 힘들었다. 그래서 동부의 국립공원은 분량도 적고 부록 같은 느낌이 든다.
전전긍긍했던 동부의 국립공원도 아침 2시간 카페에서 글을 쓰며 채워갔다. 들쑥날쑥하지 않고 매일 일정한 시간에 글을 쓴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다. 매일 글을 쓰니 머릿속 일부분에는 늘 글이 굴러다녔다. 일상생활을 하다가 무엇을 읽거나 들으면 ‘아! 이런 흐름으로 쓰면 되겠다.’ 생각부터 들었다.
운이 좋았는지 신문을 읽다가 내 정보의 오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후버댐에 대한 글이었다. 나는 당연히 후버대통령이 후버댐을 세웠을 거로 생각하고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그렇게 글을 썼다. 신문을 읽다가 후버댐은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대공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제안했던 뉴딜정책으로 선정된 댐이라 진짜 공은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후버댐이라는 이름은 후버 대통령 시기에 착공되어서라는 것도.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정보를 수정했다.
아이들은 내 글쓰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최적의 도우미가 되어줬다. 카페에서 돌아온 후에도 안방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항상 켜져 있었고, 웬만하면 노트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엄마는 책을 쓸 거야!’라고 선언한 엄마를 돕고 싶었는지 아이들이 점심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밀었다. 아들이 설거지하는 날에는 딸이 청소를, 딸이 설거지하면 아들이 청소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함께 산책하러 나갔고, 내가 오래 앉아 있는 것 같으면 아이들이 따뜻한 차를 가져와 주었다. 내가 아이들을 챙겨주는 것 이상으로 아이들이 나를 챙겨주었다. 사실, 아이들이 집에 있었기 때문에 휴대폰을 하고 싶어도, 유튜브를 보고 싶어도 자제할 수 있기도 했다.(비밀 아닌 비밀) 혼자 있으면 더 흐트러지기 마련이니까. 중학생으로 진급하는 딸의 공부를 하나도 봐주지 못했던 겨울이었지만, 딱 좋은 거리감 안에서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서로를 돌봐줬던 시간. 글쓰기의 리듬은 거기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