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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의 흐름 잡기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와 걷는 지금이 좋아>를 출간하기까지

by 니나

나는 책을 읽을 때 신나는 이야기를 정신없이 따라가는 독자였다. 책을 쓰다 보니 소설이든, 여행 에세이든, 서평이든, 어떤 글이든 작가는 구조를 만들려고 얼마나 애썼을까 느껴졌다. 철사로 뼈대를 잡고 큰 덩어리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다. 여행 중에 썼던 일기에 세부적인 사건과 감정들은 남아있는데, 그걸 큰 덩어리 속에 어떻게 넣어야 할지 막막했다.

미국 국립공원 트레킹 이야기 초안을 쓰면서 노트북 빈 페이지가 주는 막막함을 가차 없이 느꼈다. 나는 주어진 정보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되는 시험은 많이 쳐봤지만 책을 쓰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책을 쓴다는 건 무에서 유를 만드는 일이었다.

초등학생 시절 찰흙으로 환조 만들기를 했던 때를 떠올리면 된다. 먼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떠올린다. 철사로 뼈대를 잡는다. 찰흙으로 큰 덩어리를 만든다. 찰흙이 굳지 않게 남은 찰흙은 비닐로 덮어둔다. 세부적인 묘사를 한다. 만들기를 하는 중에 말라 갈라지는 찰흙은 손에 물을 묻혀가며 매끄럽게 만든다. 계속해서 마음에 들 때까지 세부적인 부분을 손보고 손에 물을 묻혀 매끄럽게 다듬는다.


나는 앞선 책들을 선생님 삼으러 도서관에 갔다. 책장 하나가 여행서였다. 이렇게 많은 여행서와 경쟁을 해야 하다니. 인기 유튜버의 여행 이야기, 지리 선생님들의 미국 국립공원 이야기, 아이들과 미국 캠핑기. 그 외에 수많은 여행 책들 속에 내 이야기는 어떤 특색이 있어야 할까. 트레킹 책도 많았다. 다행히 트레킹 책들은 청년들이 작정하고 떠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내 이야기는 아이들과 함께 한 가족 트레킹 이야기였고, 그래서 작정한 청년들이 아니라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트레일들도 많았다. 일단 주제가 겹치지 않아서 안도했다. 책을 살펴보다 보니 환전이나 비행기 티켓 예매 방법이나 맛집 소개 같은 내용도 많았고, 멋진 사진첩 같은 책들도 많았다. 이미 블로그에도 많고, 내가 잘 쓸 수 있는 부분도 아닌 건 제외했다. 그래서 일기를 바탕으로 에세이 형식의 글을 쓰기로 했다. 트레일에 대한 정보는 참고하기 좋게 국립공원의 지도와 산의 고도표는 그림 앱으로 그려서 넣기로 했다.


한 편 한 편 업로드하는 브런치와는 달리 책을 쓰는 건 처음부터 틀을 잡고 기획해야 하는 일이었다. 여행 직후에 올렸던 브런치에 글은 마구잡이로 썼던 기획되지 않은 글이었다. 중구난방으로 내가 쓰고 싶었던 것들, 주관적인 감상들 위주의 글을 올렸다. 책을 쓰면서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참고했는데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던지. 브런치에 올렸던 글을 삭제하려고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 암흑사도 하나의 기록이야.’

기획하면서 생각했던 흐름은 이렇다.


1. 글의 주제를 정하고, 예상 독자를 고려해야 했다.

2. 글의 형식을 가이드북 형식으로 쓸지 에세이 형식으로 쓸지 생각하며 책의 카테고리도 정해야 했다.

3. 거기에 따라 책의 가제와 각 장의 세부적인 제목을 정했다.

4. 내 책을 홍보한다면 어떻게 홍보할 것인지도 생각했다.


내가 중심이 아닌 독자를 중심에 놓고 글을 썼던 첫 경험이었다. 학창 시절 내 편지를 받은 친구들이 “너 편지 잘 쓴다.”고 말하곤 했는데, 글은 그렇게 독자를 생각하고 써야 하는 것이었다. 브런치에서는 독자가 중심이 아니라 내가 중심인 일기 같은 글을 썼다는 실수를 했던 거다. 브런치 글은 누구라도 읽을 수 있다는 생각에 혼자만 읽는 일기처럼 솔직하지도 못했다. 솔직하지도 않게 포장했던 내 이야기를 주관적으로 썼던 데다가, 객관적인 정보도 별로 없어서 여행할 때 참고할 이유도 없었던 글이었다.

여행 에세이를 쓰는 건 객관성과 주관성을 모두 가지고 가야 했다. 지리나 그 국립공원의 역사를 부담 없이 내 이야기에 버무려 독자가 지겹지 않게 섞여야 했다. 그러면서도 우리 가족의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했다.

일주일이 걸려 겨우겨우 흐름을 잡았다. 그때 작성했던 흐름의 일부는 이렇다.


1. 예상 독자가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책을 한두 문장으로 소개해자.

나의 책은 학부모들에게 아이들과 가볼 만한 국립공원을 소개하고, 관광지만 대충 훑어보는 여행이 아닌 조금 힘들어도 아이들과 걸으며 느꼈던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트레킹 여행을 동기부여 해주기 위한 여행서 분야의 책이다.

2. 독자는 나의 책을 찾기 위해 인터넷에서 어떤 검색어를 쳐보게 될까?

미국 서부여행, 옐로스톤, 미국 여행 경비, 그랜드 투어, 엔털로프 캐니언 예약, 가족 여행 경비, 미국 서부 여행 일정, 서부여행 렌터카, 미국 여행 일출 명소

3. 이 책을 한두 문장으로 홍보해 보자.

빙하에서 사막까지, 거대한 북아메리카 미국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은 1년 반 동안 15개의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여름방학과 크리스마스 연휴에 방문했던 곳을 시기별로 나누고 트레킹하기 좋은 곳을 소개한다.

4. 위의 생각들을 종합해서 가제와 부제를 정해보자.

걷고, 느끼고, 성장하다 : 좌충우돌 미국 국립공원 트레킹.

1년 반 미국 생활. 빙하에서 사막까지 미국 국립공원 15개 여행기


몇 달 후 출판사에 글의 30%와 함께 기획안을 낼 때 위의 질문과 대답을 이렇게 변경했다. 1. 제목

제목: 아이들과 미국을 걷기로 했다.

부제: 미국 국립공원 트레킹에 대한 모든 것


2. 기초 정보

분야: 여행, 에세이

예상 페이지 수: 현재10포인트 글자 크기로A4 80매 정도 원고를 작성했음. 각 트레일별 상세 소개(지도와 고도표 포함) + 경험담+ 준비물& 팁, 컬러 사진 다수 포함 예정


3. 기획 의도

1) 한국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빙하와 사막이 공존하는 거대한 미국, 교과서에서나 봤던 지형과 야생동물이 있는 장대한 곳에서 평범하고 밋밋한 ‘걷기’를 선택한 가족의 여행기

2) 처음부터 트레킹을 하려고 계획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걷다 보니 트레킹이 가족에게 잘 맞는 여행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여행.

3) 같은 길을 걷지만 각자의 방법으로 자연을 느끼는 가족과 개인의 성장 에세이.

4) 대자연에서 느낀 해방감을 독자들에게 제공

5) 미국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가족 단위 여행자들을 위한 트레킹


운 좋게 출판사가 정해진 후 책이 출간되기 전에 제목은 이렇게 바뀐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아, 아이와 걷는 지금이 좋아』

당시에는 정리하느라 한 주가 넘게 걸렸던 기획안도 (위의 것은 기획안의 일부입니다.) 지금 보니 더 잘 쓸 수 는 없었을까 싶다. 당시에는 저만큼이 내 최선이었지만.


내 책 표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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