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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한 오후엔 쫄깃한 베이글을

자급자족 미국 생활 2

by 니나

"아야!"

어깨가 벽에 부딪쳐서 낸 내 목소리가 어색하다.

'몇 시간이나 아무 말 없이 있었지?'


"심심해!"

혼자 말해본다. 역시 낯설다.

"베이글 먹고 싶어."

이젠 내 목소리보다 나 혼자 중얼거리고 있다는 것이 어색하다.


왜 갑자기 베이글이 떠올랐을까?

점심으로 더블린 치즈를 얹은 사워도우 빵을 먹은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뭐, 생각났으면 만들면 되지.


밀가루와 설탕, 소금, 이스트를 척척 꺼냈다.

쫄깃하게 만들까나? 아니면 조금 푹신하게 만들까나?

심심하니 쫄깃쫄깃 씹어먹자.

나는 강력분 250그램과 중력분 50그램을 계량했다.

따뜻한 물은 210그램.

설탕 60그램과 이스트 4그램, 소금 4그램을 넣고 대충 섞었다.


지금 필라델피아 온도는 화씨 47도, 집안 온도는 화씨 61도.

따뜻한 곳에서 후딱 발효하기로 했다.

따뜻한 물을 넣은 컵과 반죽을 전자레인지 안에 함께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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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기다리고 반죽을 폴딩,

다시 15분 기다리고 폴딩,

40분 발효.


반죽이 발효되길 기다리는 동안 나는 밀린 설거지를 했다.

책을 읽어보려고 애썼다.

빨래를 개고 물을 마셨다.


발효가 끝난 몰캉한 반죽을 6개로 분할했다.

"이제 10분만 쉬어라."

반죽에게 혼잣말을 했다.

반죽이 쉬는 10분 동안 나는 그다지 쉬지 못한다.

손을 계속 씻고 반죽을 만들고 다시 손을 씻는 것을 반복하느라 손끝이 거칠다.

어차피 또 반죽을 만질 거라 핸드크림도 바르지 않는다.

겨우 10분. 나는 막 전자책으로 구매한 <걷기의 인문학>을 펼쳤다.

"어디에서 시작할까? 근육이 긴장한다."

이렇게 시작하는 서론을 몇 줄 읽으니 벌써 십 분이 지났다.


반죽을 베이글 모양으로 성형하는데 발효가 완벽하지 않아선지 탄성이 강하다.

'오늘은 기다림이 짧았구나. 내가 마음이 바빠서 그래.'

오늘 저녁에는 아이 바이올린 레슨이 있고, 그래서 저녁을 서둘러 준비해야 한다.

그새 아이들도 집에 돌아왔다.


밀대로 밀어도 잘 밀리지 않는 반죽을 억지로 도넛 모양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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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이 모자랐거나, 다른 곳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기다림을 끝낼 타이밍을 놓쳐버린 빵은 모양이 별로다.

탄성이 강한 반죽을 밀면서 오늘 베이글은 완벽하진 않겠구나 생각했다.


2차 발효를 기다리면서 해바라기씨를 볶고 체다치즈를 치즈 그라인더에 갈았다.

'오늘은 고소하고 짭짤한 베이글을 먹어야지.'

해바라기씨와 체다치즈로 실수를 커버했다.


못생겨도 베이글은 베이글이다.

그것도 갓 만든 베이글은!

나를 나무라거나 베이글을 나무라지 말아야지.

마음이 급한 날도, 느긋한 날도 있다.

기다릴 여유가 있는 날도 여유가 없는 날도 있다.


어쨌든, 겉은 쫄깃 속은 촉촉한 베이글이었다.

하루 종일 입을 다물고 있느라 무료했던 입이 바빠졌다.


3개를 먹고 3개는 남겼다.

내일의 자급자족 점심 도시락에 넣을 빵이다.

작은 아이는 크림치즈와 양상추만 넣어달라고 한다.

남편은 하나는 크림치즈, 하나는 초코크림을 발라달라고 한다.


각자의 취향대로 오늘의 자급자족 베이글로 내일의 점심까지 준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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