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 미국 생활기
"엄마야! 환율이 1400원이 넘었다고?"
여름부터 오르기 시작한 환율이 9월, 미국에 왔더니 급기야 1400원을 돌파했다.
무에서 유를 만드는 신혼 장만과 같은 초기 정착 단계에서 환율 1400원을 보게 되다니!
이런 날벼락이!
처음에는 아이들 도시락을 싸야 하는 줄 알고 매일 도시락을 쌌다.
바게트는 한 덩이에 1.5달러면 사지만 도시락에 넣을 샌드위치 빵으로 바게트는 딱딱해서 무리다.
부드러운 빵을 사려니 한 덩이에 5달러.
빵을 자급자족해 볼까?
이런 위험한 생각에 이르렀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머핀이나 쿠키를 만들곤 했다.
하지만 발효빵은 급한 성격 때문인지 매번 돌덩이같이 딱딱한 결과물만 나왔다.
"냄새는 좋은데..."
남편과 아이들은 늘 뒤에 점점점이 붙은 감상을 말하기 일쑤인 빵.
심지어 한국에서는 키친아트 반죽기가 반죽도 해줬는데 말이다.
미국에는 2년 체류하게 될 것 같다.
한국은 220 볼트, 미국은 120 볼트.
반죽기처럼 비싸고 공간도 많이 차지하는 가전제품은 사치다.
심지어 환율 1400원! 1400원일 때 차를 사느라 허리가 휘었다.
'무반죽 빵이 있을 거야!'
아니나 다를까 네이버와 유튜브에 검색을 해보니 검색 결과가 쭉~ 나온다.
그중에 한국에 있을 때 한 번 실패하고는 다시는 해보지 않았던 빵.
사워도우 빵!
먼저 발효종을 키워야 한다고 해서 5일간 발효종을 키우고 빵을 만들었다.
첫 번째 빵은 돌덩이인 결과물이 나와서 버렸다.
몇 번 구워보니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긴 하다.
첫 번째, 사워도우 빵을 만들 때는 큰 무쇠냄비를 오븐에 달궈서 반죽을 냄비 속에 넣어 굽는데, 그냥 무쇠 팬 위에 구웠다.
두 번째, 화씨 500도로 구우라고 했는데 설마 그렇게 높은 온도로 구우라고? 하고 의심하고 소심하게 화씨 370도로 구웠다.
온도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한 입 먹고 너무 딱딱해서 버려서 심지어 사진조차 없다.
한국에서였다면 '뭐야, 내가 그럼 그렇지. 또 실패다!'하고 넘겼을 텐데.
지금은 남편은 일하러 나가고, 아이들은 학교 가고, 나는 남는 게 시간이다.
실망하지 않고 두 번째 시도.
아! 아름답잖아!
그런데 식감이 뭔가 아쉬웠다.
이때도 설마 화씨 500도는 아니겠지 하고 470도로 구워서일지도.
세 번째 시도에는 레시피를 믿고 화씨 500도로 굽기로 했다.
사진은 조금 탄 것처럼 나왔지만 오븐 스프링도 더 좋고 빵이 가볍게 나왔다.
그래도 뭔가 곁이 조금 딱딱했다.
네 번째 시도 이번에는 다른 무쇠 그릇이 끓는 물을 넣어 스팀을 주기로 했다.
심지어 그새 빵을 나이프로 꾸미는 실력도 늘었다.
아이들은 그동안 사워도우 빵은 심심하다고 싫어했는데 이 빵은 아침식사로 절반이 사라졌다.
'왜 하필 사워도우 빵이야?'
누군가 물었다.
사워도우 빵에는 물, 밀가루, 소금만 들어간다.
정말 순수함 자체.
밀가루는 당연히 오가닉을 쓰고, 물과 소금만 들어가니 속이 편하다.
그런 일차적인 이유 말고 나는 기다림이 좋다.
냉장고에서 발효종을 꺼내 밀가루와 물을 섞어 다시 쓸 반죽에 넣을 발효종을 기다리는 시간.
발효종이 부풀어 뽀글뽀글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는 시간이 좋다.
물과 밀가루를 넣고 30분을 기다리고 소금과 물과 발효종을 넣고 치덕치덕 소리를 내면서 반죽을 하고
폴딩 하는 시간.
6번의 폴딩이 끝나고 기다리는 2시간.
2시간 이후에 반죽을 냉장고에 넣고 기다리는 하룻밤.
반죽을 꺼내 냉기가 사라지길 기다리는 시간.
무쇠냄비 속에 반죽이 들어있어 오븐 스프링이 보이지 않아 두근두근하며 기다리는 시간.
무쇠냄비 뚜껑을 벗기고 다시 오븐에 넣어 굽는 시간.
다른 빵과 달리 굽자마자 먹을 수 없고 식기를 기다리는 2시간의 시간.
하루가 걸리는 빵이다.
쓰고 보니 엄청난 수고가 드는 것 같지만 몇 번 접는 것 외에는 기다리는 시간이 다인 빵이다.
한국에 있을 때 내가 언제 이렇게 뭔가를 기다릴 시간이 있었던가?
늘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하루하루를 살았다.
매일 오늘 다 하지 못한 일을 생각하며 살았다.
환율 덕에 자급자족 빵을 만들고 있다.
덕분에 기다림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