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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r 17. 2023

아들의 오빠노릇

필라델피아 일상

작은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일 년에 두 번 학부모 상담이 있다.

작년 가을에 첫 학기 상담을 하고 이번 주에 두 번째 상담이 있었다.

내가 학부모 상담을 예약한 시간은 4시 10분부터 30분까지. 

학교까지는 운전하는 데는 10분이 걸려서 4시 전에는 집에서 나가야 했다.

작은 아이는 4시가 조금 넘으면 스쿨버스에서 내린다.


아침에 작은 아이가 등교할 때 말했다.

"엄마는 학교 상담 가야 해서 오빠가 문 열어줄 거야. 오빠 말 잘 듣고 있어."


3시에 하교한 큰 아이에게도 당부했다. 

"동생 집에 오면 문 잘 열어줘. 엄마는 아마 4시 40분쯤 올 것 같아"


다행히 큰 아이가 중학생이라 초등학생인 동생과 둘이 집에 있는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럴 땐 큰 아이가 얼마나 든든한지.


한참 온 신경을 곤두세우며 선생님과 상담을 했다. 영어로 휘리릭 말하기 때문에.

미국에 와서 생각보다 영어를 쓸 일이 많지 않다. 늘지 않는 영어 때문에 이렇게 상담을 할 때면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해야 한다. 미리 유튜브에서 'parent conference meeting' 검색해서 이틀 전부터 간간히 들어보기도 했다.


"아이는 쓰기가 아직도 많이 힘들다고 하네요."

"하지만 많이 늘었어요."

선생님이 수학, 쓰기 노트를 보여주고 있는데 휴대폰 진동이 계속 울렸다.

상담 중이라 무시했다. 그런데 또 진동이 울렸다. 

'이건 아이들 전화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상담 중이라 또 전화진동을 무시했는데 휴대폰 진동은 그칠 줄 몰랐다.


시간도 끝나가서 상담을 마무리하고 나와 휴대폰을 봤더니 부재중 전화가 4 통이었다.

문자도 두 통 와 있었다.

"4시 20분인데 동생이 아직 안 와서 걱정돼."

"아! 이제 왔어. 스쿨버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대."


도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걱정이 됐다.

서둘러 집에 왔더니 아이들은 벌써 놀이터에 나가고 거실에는 가방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이를 찾아 무슨 일이었냐고 물었다.

"스쿨버스에서 어떤 아이가 '꺅' 소리를 질러서 기사님이 하지 말랬는데 계속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러고는 기사님한테 세 번째 손가락을 올리는 거야. 기사님이 그래서 버스를 돌려서 학교에 갔거든. 그리고 교장선생님한테 전화해서 애를 맡기려고 했는데 그 애가 절대 안 내린다는 거야. 그래서 교장선생님이 스쿨버스에 타서 그 애 옆에 앉았지. 그래서 집에 늦게 왔잖아. 진짜 짜증 나!"


내가 상상했던 온갖 상황들보다는 나았다. 그리고 큰 아이가 동생 걱정을 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맙던지.

매일 다투는 줄만 알았는데.

내가 큰 아이에게 사랑을 주면 큰 아이는 그만큼 작은 아이에게 마음을 준다. 

보통의 사람에게 사랑의 크기는 자기가 받은 만큼의 크기인 것 같다.

큰 아이가 간만에 오빠노릇을 한 날이었다.

마음 속에 오래 예쁘게 간직되는 기억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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