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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r 19. 2023

미국 중학교- 레벨이 중요할까?

필라델피아 일상

"미국 온 후로 아이들이 너무 놀기만 하네."

"그러게. 정말 놀기만 해서 큰일이야."

초등학생을 둔 엄마들은 걱정이 많다. 아이들이 4시에 하교한 후 동네 아이들과 놀기만 해서다. 심지어 우리 반 선생님은 숙제도 거의 내준 적이 없으니 학교에서 공부는 하긴 하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우리는 한국에 돌아갈 사람들이니 '한국 수학 진도 따라가기'도 또 다른 걱정이다. 


아마도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에이~ 그래도 영어 하나는 늘잖아요!"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미국에 온 지 3개월쯤 지났을 때도 아이들은 대체로 알아듣긴 했지만 하고 싶은 말의 뉘앙스를 다 전달하지 못해 조금 힘들어했고, 쓰기는 아직도 힘들다고 한다.

다른 집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영어로 말도 하곤 하던데 우리 집 아이들은 집에서 영어를 쓰지도 않는다. 

한 명이 어쩌다 말 중간에 영어 단어를 섞어 쓰면 다른 한 명이 버럭 화를 낸다.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영어를 쓰다니 이 배신자!' 느낌이다.

사정이 이러니 노느라 EBS수학을 들을 시간도 없고 문제집 풀 시간도 없어서 걱정인데 영어는 잘하는지 어떤지 알기도 힘들다.


초등학생과는 달리 중학생은 숙제에 치여 산다.

우리 가족이 있는 교육구는 5학년까지가 초등학생, 6학년부터 중학생이다.

4학년인 아이와 6학년인 아이를 비교하면 4학년은 숙제도 없고 매일 놀지만 6학년은 시험과 숙제가 늘 있다.

숙제와 시험은 성적에 반영되는 비율이 있고 비율과 점수를 합산해서 최종 점수가 나온다.

중요과목인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은 그 시험을 바탕으로 7학년부터 레벨이 나뉜다고 한다.

레벨이 높은 반에 들어가면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 함께 심화 공부를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미국 중학교가 그런 시스템이라고 들은 후 큰 아이는 나름 점수를 관리하고 있다.


어느 날 학교에 돌아온 아이가 말했다.

"어제 상위 10% 정도인 아이들 명단이 나왔거든. 같이 한국에서 온 친구는 들어갔고 나는 못 들어갔어."

"그게 뭐야?"

 "상위 10% 정도 아이들은 따로 반을 만들어서 선생님이 따로 가르친대. 다른 아이들이 5장 읽으면 그 아이들은 20장 읽는다고 생각하면 돼. 그래서 어떤 애는 그 반 됐는데도 그렇게 스트레스 받으면서 공부하고 싶진 않다고 그 반 안 들어가더라."

나는 역시 한국엄마다. 

"엄마, 오늘이 세인트 패트릭 데이여서 초록색 옷을 입는 날인데 까먹었어."는 흘려듣다가 레벨 이야기가 나오니 아이 이야기가 귀에 쏙쏙 박혔다.

"너는?"

"나는 못 들어갔지."

아이의 말에서도 아쉬움이 느껴졌다.

솔직히 나도 '우리 아이도 들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에 아쉬웠다.


하지만 미국에 온 지 겨우 6개월이다. 

영유를 다닌 적도 없고 영어 학원에 다닌 적도 없는데 아이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다.

숙제도 발표수업도 큰 스트레스 없이 잘 따라가고 있으니 이미 내 생각보다 잘하고 있는 거다.

영어로 진행되는 모든 수업을 힘들다는 내색 없이 듣고 있고, 학교에서도 아이들과 잘 놀고 즐겁게 다닌다.

상위 10% 반은 아니지만 7학년 레벨에서는 무리 없이 상위반에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도 아쉬운 마음이 들다니, 영락없는 한국 엄마다.


어느 날 한국 엄마들끼리 이런 주제로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미국인들은 억지로 상위레벨 반에 가려고 기를 쓰진 않더라." 고등학생 때 미국에 와서 이제 대학 졸업을 앞둔 자녀가 있는 엄마의 말이었다.

"그래요? 한국인들은 어떻게든 상위레벨 반에 가려고 기를 쓸 텐데."

"여기선 자기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반에서 즐겁게 공부하는데 우선순위를 두는 것 같아."

 

미국 학생들은 악기나 운동을 하는 시간이 많고, 과외 활동 비중이 높다.

공부에만 올인해서 초등 4학년이 되면 악기와 운동을 끊고 중학생이 되면 영수 학원으로 저녁 시간을 보내는 한국 아이들과 다른 일상을 보낸다.

사실 과외활동이 미국 대학입시와 관련이 있긴 하다.

'협동'이 필요한 운동이나 오케스트라 같은 활동을 해야 대학 입시에 유리하다고 들었다.

우리가 영어, 수학 사교육에 돈을 쓰듯 과외 활동에 돈을 쓰는 나라인 것이다.


그래도 나는 아이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만큼 공부하고 나머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것이 부럽다.

그리고 더 열심히 해서 높은 레벨에 올라가길 재촉하지 않는 여유를 가진 미국엄마들의 마음이 부럽다.

다만 2시간을 공부할 수 있는 사람과 10시간을 공부할 수 있는 사람은 어쩌면 그렇게 다른 기질로 타고난 것 같은데 모두 '공부'라는 목표만 가지고 달리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중학교에서 레벨이 중요한가?

우리 아이는 아직 한국인 패치가 되어 있어서 좋은 레벨에서 공부하고 싶어 한다.

물론 나도 아이가 똑똑한 아이들과 공부하길 바란다.

다만 아이는 미국에서 공부 외에도 피아노나 야구 같은 과외 활동도 즐겁게 하고 있다.

내 생각에는 성실하기만 하다면 공립학교에서 상위 레벨에 가는 건 힘든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러니 미국에 있는 동안은 한국에서 할 수 없는 오케스트라나 팀운동도 해보도록 격려해줘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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