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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16. 2023

식빵냄새

필라델피아 일상

우리 집에는 항상 누릿한 고기 냄새와 피냄새가 났다.

엄마가 매주 냉장고 청소를 하고 매일 가게를 쓸고 닦아도 희미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 행복은 저녁을 만드는 엄마의 타닥타닥 도마지일 소리와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 거실에 있는 텔레비전 만화 주제가, 어느 집에선가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라고 생각했다.

저녁시간에는 항상 손님이 오갔고, 엄마는 편하게 앉아 식사를 끝내본 적 없었다. 손님이 오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수저를 내려놓고 가게로 나갔다.


우리 집은 가게와 거기 딸려 있는 단칸방이었다. 황토색 나무틀로 만든 미닫이 문이 방과 가게를 경계 지었다. 나무틀에는 유리가 6개 끼워져 있었다. 그중에서 가게가 잘 내다보이는 유리 하나는 투명했고, 나머지는 불투명 유리였다. 우리가 손님이 잘 보이는 것처럼 손님들도 방 안을 훤히 볼 수 있었다. 


“난 빵 안 먹어. 이거 너 먹어. “ 빵집하던 친구 ㅂㄱ이는 빵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나도 고기 싫어. 이 반찬 너 먹어라.” 나는 고기를 싫어했다.


정육점을 하던 우리 집 반찬은 늘 고기였다. 마땅한 찬이 없으면 엄마는 늘 고기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 구으셨다. 나는 고기가 싫었다. 많이 씹어야 해서, 고기 냄새가 나서. 대학교생이 되어 집을 떠나 서울에서 자취하기 전까지도 나는 고기를 싫어했다.


집을 떠나 몇 년이 지나서야 고기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친구 ㅂㄱ이는 이제 빵을 먹을까?


빵을 구울 때면 친구 ㅂㄱ이 생각이 난다.

ㅂㄱ이 집 앞을 걸어갈 때 나던 빵냄새가.


ㅂㄱ이네 빵 중에서 가장 좋아하던 빵은 식빵이었다.

갓 구워낸 식빵에 딸기잼을 발라 먹다 보면 식빵 한 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릴 적 내 살들은 다 ㅂㄱ이네 빵이 찌웠나?

빵 한 통을 다 먹고야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지?' 정신이 들었다.


2,3일에 한 번씩 식빵을 굽는다.

30대 초반부터 아침에 밥과 반찬을 먹는 게 거북스러웠다.

밥은 무겁고, 반찬은 맵거나 짜고 향신료 맛이 난다.

무덤덤한 맛이 나는 식빵 한 조각에 사과 조금이랑 커피.

그 정도만 아침으로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웬만하면 식빵도 통밀을 넣고, 때론 플래시드를 넣고 굽는다.

내 주식이니까.


오늘 빵냄새를 맡는데 이제는 연락이 끊긴 ㅂㄱ이 생각이 났다.

'나는 이제 고기 먹는데, 너는 이제 빵 먹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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