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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Apr 29. 2023

비 오는 날의 머핀

필라델피아 생활

미국에 일 이년 단기로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서부로 간다. 일 년 내내 따뜻해서.

동부는 한국과 날씨가 비슷하다고 들었는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지만 한국과는 다르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올 줄이야.

일주일에 절반은 비가 온다.

이번주 내내 비가 오더니 주말에도 비가 내린다고 하고 다음 주도 비가 올 거란다.

4월 중순에 경량패딩을 빨아 넣으며, 게으름을 피우다 늦게 빨았다고 생각했는데. 부지런을 떤 거였다.

빨아 넣은 경량패딩이 아쉽다.

이젠 5월 초까지 빨지 말아야지!


한국에 있을 때부터 비가 오는 날이면 머핀이나 쿠키를 굽곤 했다.

비 오는 날에는 집에 버터향이 폴폴 풍겨야지!


아침 6시 반, 가족들은 아직 잠을 자고 있고 혼자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머핀!'

계시라도 받은 것처럼 벌떡 일어나 냉장고로 가서 버터랑 계란을 꺼냈다.

그때 읽고 있던 책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였다.

그러니 머핀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책이었다는 뜻!


나는 계시대로 버터랑 계란을 꺼내 실온에 뒀다.

버터가 말랑해야 핸드믹서로 휘핑이 되고 계란도 실온이어야 버터랑 믹서로 돌렸을 때 따로 놀지 않기 때문이다.

큰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본격작인 작업을 시작했다.

레몬제스트를 넣을 거니까 레몬을 깨끗이 씻어 겉껍질만 다졌다.

설탕이랑 우유도 계량해 두고,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를 계량해서 체에 쳤다.

오븐은 170도로 예열했다.

머핀종이가 없으니 머핀틀에 기름도 발라뒀다.

블루베리랑 블랙베리도 넣을까?

아참! 작년 크리스마스 때 만들어 둔 라즈베리 쨈도 넣어야겠다!

이제 재료는 준비 끝.


이제 팔 아픈 작업 시작.

핸드믹서로 버터를 마요네즈처럼 될 때까지 휘핑했다.

1분, 2분. 팔이 아파오지만 포기하지 않고!

설탕을 넣고 계속 휘핑. 설탕이 서걱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을 때까지.

이제 계란을 넣자.  

버터가 사방팔방으로 튀네. 아이고, 깊은 볼에다 할걸.

조심조심 두 번째 계란도 넣고 휘핑. 내 팔아~ 조금만 힘내!

레몬제스트를 넣고, 밀가루랑 우유를 두 번씩 나눠 넣고 휘핑하면 끝.

핸드믹서 안녕.


이제 라즈베리 쨈이랑 블루베리 블랙베리를 넣고 대충 휙 섞고 머핀틀에 반죽을 채우자!

반죽 위에 블루베리랑 블랙베리를 얹어 170도로 예열된 오븐에 넣고 25분을 기다리면 된다.


머핀을 만드는 데에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일단 버터와 계란이 실온 온도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핸드믹서의 무게를 참아야 하고, 저울에 재료를 계량해야 한다.

재료가 충분히 휘핑됐는지 알아채야 하고.

밀가루를 넣고는 과하게 휘핑하지 않게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머핀을 오븐에 넣고 나서 기다리는 동안 버터가 묻어 있는 설거지도 해야 한다.


이렇게 귀찮은 일이 가득하지만 나는 머핀을 굽는다.

이것 역시 운동처럼, 시간을 들이면 즉각적인 결과가 나오는 일이다.

심지어 예쁘고, 냄새도 끝내주고, 맛있고, 먹으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딸은 남은 머핀을 학교에 간식으로 싸가서 엄마가 만든 거라고 자랑도 한다.

그러곤 한 입만 달라는 친구들과 나눠 먹는다.


다들 바쁘게 살아간다.

바쁘게 살아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우리 집에 놀러 오세요.

머핀 하나에 우유 한 컵의 틈은 나눠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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