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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나 May 02. 2023

플래시드 식빵

필라델피아 생활

한국에서는 빵을 가끔씩만 만들었다.

집 근처 단골 빵가게에서는 4500원만 내면 우리밀 식빵을 살 수 있었고, 맛도 훌륭했다.

게다가 오가는 길목에 있었고, 십 프로 적립도 됐다.

발효빵을 만들 때마다 기대와는 다른 덜 부푼 빵이 나왔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의기소침해져서

더 이상 집에서 빵을 만들지 않게 됐다.


미국에 와서는 빵을 매일같이 굽고 있다.

미국 마트 빵 코너에 가면 특유의 냄새가 난다.

기름진 견과류 냄새랄까?

월마트나 타겟, 코스트코에서는 마트에서 구운 빵을 파는 코너도 있다.

남편은 우리나라 빵에서는 맡을 수 없는 특유의 향이 있다며 먹지 않는다.

세상 둔해 보이지만 까다롭기 그지없다.


어쨌든, 내가 빵을 만드는 건 미국 빵집 빵을 안 먹는 남편 때문이 아니라 내 아침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시간이 조금 여유 있어서 샤워도우 빵부터 시작해서 이런저런 빵을 만들다 보니,

내가 발효빵을 왜 실패했는지 조금씩 깨닫게 됐다.


가장 큰 이유는 충분히 기다리지 않아서였다.

발효빵 책이나 유튜브에서는 1차 발효까지 한 시간 정도 기다리라고 하지만 그건 실내온도와 반죽 온도에 따라 달랐다.

책이나 유튜브에서 실내온도와 반죽 온도에 따라 발효 시간이 달라진다고 했지만, 충분히 발효되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급히 발효를 마무리한 것이 원인이었다.


나는 물이나 우유를 따뜻하게 데우지 않고 쓰곤 했는데 반죽 온도가 낮아서 발효까지 천년만년 기다려야 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잘 부풀지 않으니 불안해서 발효를 마무리하곤 했던 거다.

'액체 온도가 이렇게 중요했구나.' 깨달았다.

어제 귀찮음에 대충 생수를 넣었더니 또 발효가 너~무 늦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나는 빵을 만들 때 마음이 설렌다.

오븐에서 빵이 구워질 때 오븐 스프링이 잘 나오는지 오븐 라이트를 켜고 지켜보고,

'빵이 구워지는 냄새를 맡으며 오늘의 빵도 대성공일까!' 기대하며 빵을 굽는다.


희망을 갖기도 한다.

'이러다 나도 제빵유튜버? 혹은 일본을 여행하면서 봤던 만들 만큼 만들고 오후 2시쯤 다 팔면 문을 닫았던 작은 빵집 차리는 거 아니야?' 하는 희망말이다.


기대랑 희망은 달라서 희망은 좀 멀리 있고 내 머릿속에만 있어서 닿지 않지만.

끝없이 기대하다 보면 언젠가는 희망에 닿을 수 있을까?

요즘은 아이들도 "엄마, 빵집 할래?" 말하곤 하는데, 아마 요즘 백밀빵을 많이 만들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플래시드 30그램, 끓는 물 30그램을 밥그릇에 넣었다.

플래시드를 그냥 넣었더니 빵을 먹을 때 겉도는 느낌이어서 이번에는 불려서 넣기로 했다.


백밀 280그램에 통밀 40그램. 설탕과 꿀. 물과 우유. 이스트. 소금. 버터

그리고 플래시드.


플래시드가 콕콕 박힌 빵은 도도해 보인달까.

통밀과 함께라면 더 아름답다.

플래시드 빵은 오늘도 샌드위치로 토스트로 눈 깜빡할 사이에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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