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직도 모험을 원해.

<등대 소년>을 읽고

by 니나

얼어붙은 달그림자

물결 위에 차고

한 겨울의 거센 파도

모으는 작은 섬

생각하라 저 등대를

지키는 사람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초등학생 시절 음악 시간에 <등대지기>를 배우고 나는 자주 그 노래를 부르곤 했다. 어렸지만 그 노래가 가진 쓸쓸하고 슬픈 분위기가 좋았다. 나는 부산에 살고 있었지만 집이 바다와 멀었기 때문에 등대는 본 적이 없었다. 등대지기 노래를 배웠을 때야 세상에 등대라는 것도, 등대를 지키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은 외롭지만 아름다운 곳 일거라 생각했다. 그때부터 등대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막스 뒤코스의 그림책 <등대 소년>은 티모테라는 소년이 우연히 다른 세상의 입구를 발견하고 그곳으로 모험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부모님이 모두 외출한 어느 날 밤, 얼마 전만 해도 함께 놀았던 누나는 이제 티모테와 놀아주지도 않는다. 남자 친구와 통화하는데만 열심이다. 티모테는 누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몇 시간이나 공들여 배 그림을 그려 방안에 붙여두지만 누나는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화가 난 티모테는 그림을 뜯어버린다. 그림과 함께 벽지가 뜯어지면서 벽지 아래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티모테는 그 그림 속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림 속의 다리를 건너 등대로 간 티모테는 모르간이라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티모테는 모르간과 모험을 하게 된다.



얼마 전 함께 스터디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생애 주기별 인생 그림책을 함께 이야기했다. 나의 40대 이후부터의 인생 그림책으로 고른 것이 <등대 소년>이다. 이제 마흔으로 진입했지만 나는 내 인생이 이렇게 흥미진진하길 바란다. 벽지 뒤가 회색 벽이 아닌 새로운 그림이 있길 바란다. 그리고 그 그림 속으로 모험을 할 용기가 아직 남아 있길 바란다.



어린 시절 나는 괜히 돌을 발로 툭툭 차고 다녔다. 돌 아래에 어떤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세상은 왠지 내가 살고 있는 곳과는 다른 모험이 가득한 곳일 것 같았다. 그 세상에서 나는 마녀가 되어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고, 구름을 타고, 마녀 위니처럼 고양이의 색을 바꾸고,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들을 골탕 먹였다. 나는 그 세계로 가는 통로가 있다면 아마도 어떤 돌 아래가 그 입구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입구를 발견하고 싶어 그렇게 돌을 차고 다닌 거다. 사실 마흔이 된 지금도 나는 어딘가 입구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은 그때만큼 돌을 차지는 않지만 말이다.





모험을 생각해보니 지금까지의 여행 중 가장 무모했던 때가 생각난다. 20대 초반에 중국에 살았을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나를 포함한 무모한 여자 넷이 황산을 갔다. 그런데 문제는 ‘내일 밤 8시 기차로 가자!’ 하고 결정해버렸다는 거다. 황산으로 가는 기차는 저녁에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에 도착한다. 기차에서 하루를 자야 하기에 침대칸 좌석이 없으면 힘들다. 그런데 당장 다음날 기차니 침대 좌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중국은 당시에 침대칸, 부드러운 의자, 딱딱한 의자로 좌석 등급이 나뉘어 있었는데, 남은 좌석은 딱딱한 의자뿐이었다. 중국인 친구가 침대 좌석인 사람이 황산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 내리면 좌석 변경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 말만 듣고 ‘그러면 되겠네. 말나 온 김에 내일 가자!’ 하고 딱딱한 의자 좌석을 샀다.


다음날 저녁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기차를 탔다. 급히 표를 사서 좌석도 함께 모여 있지 않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그때 내 앞자리에 앉아있던 중국인이 ‘황산의 두 봉우리, 천도봉과 연화봉은 5년씩 번갈아 열리는데 올해는 두 봉우리가 한꺼번에 열려. 이런 기회가 다시는 안 올 거야. 꼭 두 봉우리 다 가봐.’ 하는 게 아닌가! 우리는 그런 엄청난 정보를 듣고는 ‘우리가 황산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운명인가 봐! 그렇다면 두 봉우리 놓칠 수 없지!’ 하고 두 봉우리를 다 가기로 했다. 그것이 고난의 시작이었다.


천하절경이라는 황산은 일 년에 절반 이상이 비가 오는 곳이라 역시 우리가 도착했을 때도 비가 내렸다.

봉우리까지가 얼마나 높은지도 몰랐던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는 것보다는 역시 걸어야 제대로 된 산행이지!' 결정하는 두 번째 바보 같은 결정을 해버렸다. 산 정상으로 길은 발을 헛디디면 떨어질 듯한 절벽 계단과 줄을 잡고 간신히 건널 수 있는 굽이길로 가득했다. 해가 지기 전 정상 숙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숙소 예약조차 하지 않았던 우리는 결국 산 어디쯤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비는 오지, 다리는 풀렸지, 해는 져서 산은 컴컴하고 막막함과 두려움에 눈에서 흐르는 것이 눈물인지 비인지 모르게 울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두 선인이 나타났다. 우리처럼 배낭을 메지도 않고 허리에 작은 가방만 하나 두른 아저씨 두 분이었다. 중의학을 배우고 있는 한국 아저씨 두 분은 주저앉아 울고 있는 우리 짐을 대신 들어주셨고 숙소가 있는 산 정상까지 함께 가주셨다. 그런데 이런 절망스러운 상황이! 가까스로 숙소는 모두 이미 만실이었다. 호텔 내 안마실에 있는 안마의자에서 자도 되냐고 물었지만 종업원들은 규정상 안 된다고 했다. 이렇게 대책 없이 여행을 준비한 것이 어찌나 후회스럽던지. 다리가 풀려 꼼작 못하는 우리에게 중의학을 배우신 두 분은 침을 놓아주셨고, 그 모습을 본 호텔 종업원들은 아저씨들에게 몰려서 급 관심을 보였다. 산속에서 오래 일해 병원을 갈 수도 없었는데 마침 중의사가 찾아왔으니 줄을 서서 진료를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 두 분의 진료 덕에 종업원들이 감사의 뜻으로 안마방에서 자도 된다고 허락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에는 화창한 황산을 볼 수 있었다. 모든 봉우리를 다 오를 거라는 욕심을 내려놓고 천천히 보는 황산은 역시 절경이었다.




가끔 그 두 분이 생각난다.

대책 없는 여행에서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나를 더 낯선 곳으로 데려다주고, 모험하게 만드는 대책 없음. 나의 대책 없음은 아직도 어떤 곳의 입구를 찾길 바라는 어린 시절의 판타지는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직도 나는 입구의 돌을 찾고 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그 두 중의사분처럼, 티모테처럼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마 씨의 요가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