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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ug 31. 2024

죽음의 끝자락


    신용카드 사건이 있고, 나는 며칠간 나의 죽음을 계획했다.


 완벽한 계획을 위해 멀쩡해 진척 연기하고, 정신과 약도 먹는 척하며 책상 서랍 안쪽에 차곡차곡 약을 쌓아놓기 시작했다. 한 달 치 받아온 약과 그전부터 먹지 않고 모아둔 약, 잊어버린 채 주머니에 넣어 둔 약도 찾아냈다. 내가 모아 온 약은 약 70 봉지 정도 됐던 것 같다. 


결전의 밤, 나는 수백 알의 약이 들어있는 70봉의 약봉지와 자동차 키, 다이어리와 볼펜을 들고 주차장으로 갔다. 차에 타서 근처 편의점으로 갔다. 그리고 500미리 물병과 담배를 사서 다시 차에 올랐다. 약과 함께 먹을 물과 마지막을 적을 다이어리, 끊었던 담배까지. 죽기 전에 준비한 것은 고작 이 정도였다. 나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고속도로에 올라 직진만 하다가 어느 나가는 길목에서 나와 모르는 산길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1시간쯤 달리니 정확히 어딘지 정말 모르는 곳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약을 먹기 전 내가 혹시나 운전을 다시 하거나 죽고 싶지 않은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 키를 풀 속에 던졌다. 그리고 다시 차에 타서 약봉지를 뜯어, 왼손 가득 하얀 약들을 부었다.


 한 손에 다 들어오지 않을 양의 약이었다. 전부를 한 번에 먹기는 힘들었고, 나는 여러 번을 거쳐 목구멍으로 집어넣었다. 쓰디쓴 약들이 목으로 넘어가는 느낌은 정말 구역질이 나고, 뱉어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물을 목구멍에 들이부어 약을 흘려보냈고, 모든 약과 500미리 생수를 해치웠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정신이 금방 몽롱해지는 듯했다. 담배를 한 대 태우고 나서 조수석에 던져 놓은 다이어리를 펼치고 싶은 말을 적기 시작했다.    

  


-유  서-


2021년 7월 12일 밤 11시 57분


 저는 지금 차를 끌고 아무 곳에나 와있습니다. 저도 이곳이 어딘지 잘 모르겠어요. 오다가 담배와 물도 샀어요. 그리고 4월 이후, 처음으로 정신과 약을 다량으로 복용했습니다. 지금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가족들에게 더 이상의 짐이 되기 싫어서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제 밥벌이는 못 할 것 같아요. 이기적이지만 이 우울증을 이겨낼 자신이 없습니다. 괜찮아지려고 노력했는데,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매일 우울한 것도 지겹고, 우울해서라는 핑계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도 더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괜찮은 척, 나아지는 척하는 것도, 이제는 한계에 다 달았습니다. 


이번에도 죽지 못한다면 제 의지가 부족한 거겠지요. 저를 한심하게 생각하신 아버지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열심히 키워주셔서 어찌어찌 27년을 살았네요. 많은 돈을 병원에 바친 인생이었지만 그만하고 싶습니다. 돈, 일, 삶 그 무엇도 저를 편안하게 만들지 않네요.  며칠 전부터 모두에게 사랑한다는 말 꼭 해주고 싶었어요.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쉴 새 없이 말한 적도 있어요. 아마 제가 그 말을 듣고 싶었던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요. 저를 사랑해 주신 적은 있나요. 없는 걸 알면서 또 이렇게 묻는 저는 정말 끝도 없이 한심한 사람이에요. 돈 200에 놀라신 아버지, 할 말 다 하면서 사셔서 좋겠어요. 정신력이 체력이 문제라며 타박하시던 것들 안타깝게도 저에게는 하나도 안 통했어요. 아까우셨을까요? 한심하시게 보셨죠. 알아요.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요, 저는 이 말 마저 앞에서 못했어요. 저는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수긍해 주는 사람들을 살면서 만나본 적이 별로 없어요. 가족들 조차요. 저는 배려하는 게 당연하다고 배워왔어요.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언니랑 동생은 안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알았어요. 내가 문제구나, 내가 병신이구나. 이런 말들을 지금 적는다고 의미가 있을까요. 그냥, 그랬었다는 거죠. 아빠는 변하지 마세요. 참고 살면 저처럼 병나요. 특히 엄마, 엄마는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살았으면 해. 나한테 매번 엄마도 참고 사는데, 나보고 참으라고 했잖아. 참지 마. 말해. 그렇게 살아. 엄마는 그렇게 살아. 마지막으로 이 말은 하고 싶어요.


 모두 안 고맙습니다.  

    


나는 몽롱한 상태로 유서를 적어나갔고, 끝으로 갈수록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앞뒤가 다른 말들을 적고, 적는 내내 너무 울어서 목이 다 나간 상태로 정신을 잃어갔다.


그렇게 나는 어두운 차 안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했다.      






문제는 내가아니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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