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내가 집에 온 시간과 어떻게 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자살시도를 버린 환자로 정신병동에 입원했다. 나는 거의 1주일 동안은 몽롱했고, 어떤 기억도 나지 않았다.
나는 큰 대학 병원에 입원해 있었고, 많은 검사를 했다. 사실 끌려다니면서도 몽롱해서 기억이 부분, 부분 끊겨있다. 정신분석 결과는 경계선인격장애라고 했다. 지금의 나는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당시 결과는 경계선인격장애라는 판정이었다.
병원에 환경은 정말 열악했으며 남녀가 함께 쓰는 병동이었다. 또래의 여자애들이 내게 말을 걸었고, 무슨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첫날은 거의 기억나지 않고, 잠을 잤던 것 같다.
둘째 날쯤 되었을까,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왔고 그곳에 있는 다른 여자애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나처럼 약을 먹고 들어온 아이, 손목을 그은 아이, 배에 칼을 스스로 꽂은 언니,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 스스로 입원한 아이까지. 정말 다양했고, 서글펐다.
그곳은 너무나 슬프고, 아픈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었다.
각자의 사정이 있었고, 모두가 누군가에게 상처받고 온 사람들뿐이었다.
핸드폰을 쓸 수 없는 곳이라, 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정말 시간을 때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일과의 중간중간 상담 했고, 1주일이 지날 때쯤 가족과 통화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그곳에서 늘 울었다. 상담하는 동안에 울고, 자기 전에 울고, 가족들과 통화하면서 미친 듯이 울었다. 그때 나는 괜찮아져야만 이곳을 나간다고 생각해서 정말 괜찮아지기 위해 병원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열심히 따랐다. 인생 그래프며, 자기소개며, 자화상 그리기 같은 것들을 다 했다.
의사 선생님은 밖에 나가면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가장 자주 물었다. 가족들과는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곳에서 나는 내가 여행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니까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시골에 한적한 곳에 가서 조용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것도 생각해보았지만 역시 나는 사람이 좋았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여행 온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차리는 것이었다.
3주간 그곳에 있으면서 나의 우울증보다 또렷해진 것은 가족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죽음의 끝까지 간 딸, 그리고 동생을 보고도 가족들은 전화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말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머릿속에서 나는 스스로 죽기 위해 자살시도 했던 2021년 7월 12일 밤 11시 57분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날로 정말로 돌아간다면 다시 약을 먹을 것이고, 이번에는 반드시 죽어야지, 라고 말이다. 왜 살았지, 왜 죽지도 못하고 이곳에 갇힌 신세가 되어 착한 딸이 되라고 하는 개소리를 또 들어야 하는 걸까. 내가 여기서 괜찮은 척을 하고, 착한 딸이 돼서 밖에 나가서 다시 족쇄를 차는 것이 맞는 것일까, 두려웠다. 숨이 안 쉬어지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간호사에게 긴급 약을 받아먹었다.
다행히 내가 점차 나아지는 시간도 다가왔다. 나는 병원에 입원하면서 영화 토이 스토리의 악당 보라색 곰돌이 인형을 가지고 들어갔었다. 병원에 들어오기 전 바깥에서부터 꼭 끌어안고 잠을 자던 것이었고, 애착 인형이기 때문이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숨이 안 쉬어지는 날은 간호사에게 긴급 약을 받은 후, 곰돌이 인형을 껴안고, 깊은 호흡을 하며 잠이 들었다. 바깥에 있을 때와 다르게 내 옆에는 곰돌이 인형뿐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다.
나는 어느새 가족들을 외면하고 나만을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점차 가족과 나를 분리하며 생각했고, 제 3자의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았다. 완전한 이해는 하지 못했지만, 가족들도 그럴 수 있다고 일정 부분 이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가족과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서서히 나아지고 있었다. 가족들 품으로 돌아갔을 때 어떻게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매일 일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지금도 종종 쓴 일기를 보면 답답하고, 우울하고 힘든 마음이 온전히 적혀있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20대, 모두 청춘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왜 이런 정신병동에서 아파야만 하는 걸까. 숨이 먹먹하다.’
함께 입원해 있는 젊은 친구들이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고, 안쓰러웠으며 동시에 그 속에 나 또한 포함되어있기에 스스로 연민하는 글이었다. 3주간 갇혀 나를 연민하고 용서했으며, 아빠와 가족들과의 사이도 좋아진 것처럼 말하자 결국 병원에서 나를 퇴원 시켜주었다.
정말 완벽히 괜찮아졌는지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 괜찮아지기로 다짐했다.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내 삶을 조금씩 내 힘으로 돌려보는 것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겼다. 우뚝 서지는 못했지만 서기 위해 무릎을 꿇고 일어나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