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안에만 있는 것이 싫었었다.
집에 있으면 계속해서 이름을 불러댔고, 또 일을 해야 했다. 그래서 시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을 참여했다. 나는 그 프로그램에서 한 인연을 만났다.
그 친구는 타인을 돕기 좋아하는 친구여서 함께 청년단체를 운영할 기회가 생겼다.
내가 정신병동에서 나오고 얼마 뒤, 우리는 함께 청년 단체를 만들었다.
우리는 곧 시에서 운영하는 청년 정책사업을 따내고, 운영을 시작했다. 바로 그곳에서 나는 나와 비슷한 그리고, 나를 구해줄 구원자를 만났다.
구원자는 프로그램을 위해 모신 글쓰기 선생님이었다. 그녀는 나보다 8살이 많은 여자였고, 쾌활하고, 밝은 성격으로 금세 나와 친해졌다. 나와 코드가 잘 맞았다고 해야 하나? 별것 아닌 인연이었는데, 그녀와 나는 어느새 절친한 친구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심리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이었다.
그녀는 나의 가정사를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가족희생양’이라는 이론이다.
그녀 또한 가족 희생양이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누가 보아도 예쁘고, 똑똑했고, 나와 달리 첫째였다. 나는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나의 상황과 조금 다른 방식의 가족희생양이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 이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녀는 나와 달리 가족희생양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그나마 그녀는 나보다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그녀에게 도움을 줄 어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집을 나올 수 있도록 금전적 도움을 준 이모가 있었고, 그 도움으로 독립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집을 나오는 것이 가족들을 배신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당시 아빠는 내게 우리 집을 일으켜 세우고, 늙은 부모를 앞으로 먹여 살릴 딸이라고 말했었기에 나는 정말로 우리 가족을 어떻게 부양할 것인지 고민했던 때였다.
그녀의 말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나도 내 삶을 책임지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부모님은 왜 내게 자신들의 삶을 책임지라고 하는 것일까? 무섭고 두려웠었다.
그녀는 내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할 때 가장 현명한 답을 주었고, 내가 우울할 틈이 없게 매일 나를 밖으로 불러냈다. 나는 그녀를 만나면서 독립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졌다.
“혼자서 잘 살 수 있을까요? 전 돈이 없어요.”
“네, 살 수 있어요. 우리 집에 와서 살아도 되니까 나와요.”
그녀는 나를 보살펴 줄 의향까지 있었고, 그 정도의 믿음을 받자 용기가 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그런 그녀를 싫어했다. 이상한 여자라며 그런 여자랑은 어울리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걱정과 달리, 그녀를 만나고 내 우울증은 점점 나아졌다. 불안한 것은 사라지고, 판단력이 돌아왔다. 내가 해야 할 다음 단계에 대해, 내게 가장 맞는 선택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힘이 생겼다.
가족희생양에서 벗어난 사람이 어떻게 벗어나게 되었는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지 마음을 얼마나 굳게 먹어야 하는지도 그녀가 알려주었다. 내가 한 발짝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할 수 있어요. 나와요. ”
정말 할 수 있을까? 라고 의심이 들어서 수백 번 수천 번 고민하고, 죽음까지 갔던 내게 혼자서 할 수 있고,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끊임없이 말해주었다.
그녀는 나의 구원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