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또치 Sep 08. 2024

나아진 척 하다

나는 구원자인 그녀를 매일 같이 만나고, 매일 웃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아무 말을 하고, 아무 행동을 하며 웃는 것이 전부였지만, 그것이 내게는 가장 필요한 치료의 한 부분 었다고 생각한다. 걱정 없이 불안 없이 시간을 보내고,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시간이 매일 2시간 이상 있었고, 점점 나는 나아졌다. 물론, 집에 들어오면 다시 우울해지고, 괴롭고 짜증 나게 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지난날 내 우울의 척도가 100이었다면 아마 이때는 50 정도였을까. 다행히 나의 우울의 척도는 반 정도 줄어든 상태였고, 판단력과 실행력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나의 모습이 돌아오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반대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그 모습을 가족들이 나의 주변 사람들을 욕하는 부분에서 느꼈다.


 구원자를 비롯한 나의 과거의 남자친구, 친구들까지 들먹이며 나의 인간관계가 좋지 않았고, 이상한 사람들만 있었다며 가족이 최고지, 라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이 있으면 기댈 곳이 있지 않냐, 우리처럼 좋은 가정이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것이다.’라고 내게 말했다. 


이때는 다행히 나의 판단력이 50프로 이상 돌아왔던 때라, “가족이 최고야.”라는 말을 100프로 믿지 않았다.


 나는 이때부터 부탁을 거절하고, 가족에게 “싫어.”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의아해했다. 항상 말을 잘 듣던 애가 하지 않으니, 가족들은 내가 또 우울증에 걸렸나? 혹은 정신이 이상해졌나 생각했다. 


그러나 가족들이 보기에도 나는 그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졌고, 우울증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다른 원인을 찾아냈다. ‘매일 만나러 나가서 만나는 여자애가 잘못된 것이다.’라는 결론을 냈다. 가족들은 그녀가 나를 이상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내가 밖에 나갈 때면 누구를 만나러 나가는지 묻기 시작했다. 나는 가족들의 압박과 나의 친구에 대한 험담을 듣는 것이 짜증 났고, 답하기가 꺼려졌다


그다음부터 나는 그녀를 만나러 가면서도 아닌 척하며 거짓말을 했다.    

  

나는 일시적 방편이자 선택을 했다.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정신 차린 딸의 연기를 다시 해주었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내가 원하는 것을 말했다. 내가 원한 것은 확실하고도 분명한 사과였다. 지난날 내게 상처 입힌 말들과 차별에 대한 행동들에 용서를 구할 것을 요구했다. 그나마 엄마는 동의했고, 다른 가족들은 귓등에도 듣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여러 번의 사과와 용서로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아팠던 감정들을 쏟아내며 꼬인 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물론 단 한 번의 사과와 단 한 번의 용서로는 끝나지 않는 오래되고, 깊은 상처였다. 



언니는 그런 내 모습이 불만이었다. 엄마가 자꾸 사과하는 것이 싫었던 것인지, 내게 작작 하라며 화를 냈다. 나의 우울증으로 인해 다른 가족들이 피해 보고, 힘들었던 것은 왜 사과하지 않냐며 나를 타박했고,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말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마 가족들을 힘들게 만든 것이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우울증의 원인이 가족이었다는 것을 안다면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당시 나는 완벽히 판단력과 자존감이 올라간 상태가 아니었기에 그 말을 듣고, 사과를 했다. “그래. 많이 힘들었겠다. 내가 미안해.” 나는 나아지고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