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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Aug 25. 2024

나를 죽이는 신용카드

나는 아빠와 일을 했을 때 월급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아빠는 일을 배우는 것이고, 크게 보아야 하고, 나와 아빠가 일을 하는 행위는 가족을 위한 것이니 “돈돈” 거리지 말라고 했다.


 당시 나는 판단력이 많이 흐려져 있었고, 누구한테 이 상황이 맞는지 안 맞는지를 말할 사람도 없었다.

 오직 내게는 가족뿐이었다. 



부모님은 내게 용돈으로 쓰라며 아빠의 신용카드를 손에 쥐여주었다. 한도는 500만 원 언저리였던 것 같지만, 나는 매달 40만 원 정도만 썼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아빠의 신용카드를 빌려달라며 할부로 세탁기를 구매한 적이 있다. 그리고 아빠는 그날 나를 불러 나를 ‘죽일 년’으로 만들었다.



 백수 주제에 200만 원을 넘게 썼다며 화를 내고, 내가 여태까지 쓴 모든 명세서를 가져오라며 나를 닦달했다.



 나는 정말 억울했고, 서러웠다. 나의 카드 내역서에는 가끔 친구를 만나러 나가 쓴 카페, 편의점에서 사 먹은 음료수, 교통비, 밥값이 전부였다. 그렇지만 나는 그걸 보여주고 아빠에게 이것만 쓴 게 사실이라며 보고를 하는 것이 힘들었다. 억울한 보고를 한다는 것 자체로 아빠로부터 내 삶을 구속당하고, 나의 사생활 따위는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들었으며, 나의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엄마는 얼마 썼는지 정확하게 아빠에게 얘기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라며 나를 부추겼다. 



당시 나는 아빠의 일을 하였고, 백수라는 호칭은 맞지 않았다. 



그 신용카드는 월급을 대신 받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봤자 최저시급에도 한참 못 미치는 돈이었다. 억울하고, 난감하고, 무섭고, 두려웠다. 



그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성적인 판단 따위는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대체 가족이라는 사람들은 나를 어디까지 목을 조여올 것인지, 나를 어디까지 죽일 것인지 무서웠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억울한 생각만 가득했다. 돈 200만 원에 딸을 도둑년이라고 하는 아빠, 자신이 대신 쓴 것임을 끝까지 밝히지 않는 엄마, 내게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라고 하는 언니까지, 나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의 잘못은 어디서부터 일까? 내가 취직을 하지 않은 순간에서부터 일까? 아니면 아빠가 나를 부려 먹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신용카드를 써서일까? 




아니, 내가 멍청해서 집으로 돌아온 것부터가 잘못인가. 

“그까짓 쓴 내역을 보여주는 게 뭐 어렵다고. 보여주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언니는 그 뜻이 무엇인지 알고 말을 하는 걸까? “나의 모든 것을 내어주다 못해, 나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내 삶을 통째로 휘두르는 것인데, 더 이상 나라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인데...”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 말해도 분명히 내가 이상하고, 망상하는 피해자 코스프레라고 말할 거야. 그렇게 당하고도 모르겠어? 이제는 알잖아. 그만하자.     


 

“그래. 그만하자.”     



모두가 나간 방 안에서 나의 마음의 목소리가 한숨과 함께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더는 하지 못할 것을,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음을 드디어 깨달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집에서 목을 내놓고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렇다고 이 집을 뛰쳐나가서 살 용기도 없다. 


이제는, 이제는, 죽어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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