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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치 Mar 24. 2024

너를 싫어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왕따를 당할만했던 아이

하교를 하고, 집에 오면 집안일을 했다. 아빠는 사업을 했었고, 어려운 시기였다. 집안사정이 좋지 않아 지고 부모님은 맞벌이를 해야 했다.

17살 언니, 6살 남동생 그리고 14살이었던 나. 그중에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정확히는 내가 해야 하는 게 당연했다. 언니는 집안일을 할 줄 모른다고 했다.


 결국 내가 엄마 대신에 집안일을 하는 착한 둘째 딸이 되었다.


엄마는 학교 가기 전에 내게 만원 정도의 돈을 쥐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정육점 들려서 삼겹살사와."


그 말은 저녁거리를 사 오라는 말이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시장을 보고 삼겹살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파란 봉지에 담겨있는 삼겹살을 덜렁이며 터덜터덜 걸어왔다. 집에 돌아오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남동생이 유치원에서 돌아왔다. 어린 남동생의 밥을 차려주고, 놀아주었다. 아빠가 들어오면 아빠 밥을 차려주고, 언니가 들어오면 언니밥을 차려주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엄마 없는 집에 엄마의 역할을 했다. 엄마는 12시가 다되어서 집에 들어오셨다.


아빠는 늘 화가 나있었고, 엄마는 아빠에 눈치를 보며 살았다. 화가 나면 아빠는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죽이겠다거나 하는 심한 말을 뱉었고, 별거 아닌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화가 나는 날이면 모두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숨 쉬는 것도 조심했다.


그런 무서운 아빠에게는 내가 힘들다거나 왕따를 당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용기가 나지 않았다.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제일 먼저 이사실을 알린 건 언니였다. 애들이 나를 왕따 시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애들이 괜히 널 왕따 시키겠어? 이유가 있겠지. 잘 좀 지내봐."


언니는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려 하지 않았다. 늦게 들어오는 엄마를 기다렸다. 피곤해하시는 엄마를 붙잡고 그동안에 이야기를 했다.


"애들한테 가서 미안하다고 해. 어쩔 수 없지."

"나 잘못한 거 없어. 학교 가기 싫어."

"학교는 가야지. 그럼 어쩔 건데?"


눈물이 톡톡, 떨어지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이때 처음 느낀 것 같다.

이야기를 하는 내내 괴로움에 가슴이 아팠다.


"나 전학 보내줘. 전학 갈래."

"전학 가면 해결이 돼? 왕따 당한 애는 어딜 가나 또 왕따 당해. 거기 가면 안 당할 것 같아?"


전학에 대한 나의 의견을 묵살시켰다. 내가 왕따를 당할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라고 했다. 잘못은 그들이 했는데, 왜 내가 사과를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해결된 것은 없었다.


가시 돋친 말에 말랑이던 심장이 푹푹 찔렸다. 눈물샘이 터져버린 것처럼 종일 울었다.


담임선생님과의 대화와 다를 게 없었다. 어른들이 미웠다. 그 누구도 내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당시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의 비웃음거리, 무시당하는 존재가 되었다. 괴로워서 수업시간에도 수업을 들을 수 없고, 쉬는 시간에도 쉴 수 없었다.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들었다. 안되면 그냥 엎드렸다. 졸리지 않아도 엎드렸고, 계속 잠을 자려고 노력했다.


학교에 있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고, 그 아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도 싫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다. 자주 아프다고 했고, 보건실을 가거나 조퇴를 했다.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남들만큼은 했었다. 매일 수업을 안 듣고 공부를 안 하다 보니 성적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평균이 40점대까지 떨어졌고, 부모님은 나를 혼냈다.  아빠는 새벽에 일어나서 공부를 하라고 했다. 엄마는 아빠를 무서워했고, 엄마는 나를 새벽에 깨웠다.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는 척을 하고, 지옥 같은 학교를 견디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했다. 14살의 소녀의 루틴이었다. 친구를 만나고 한창 놀러 다니기에 바쁠 나이에 단 한 명의 친구도 없이 학교와 집을 반복했다.


스스로를 신데렐라라고 칭했다.

-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당했더래요.
샤바샤바 아이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매일 집안일을 하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



집에만 있는 게 너무 힘들어졌다. 학원을 보내달라고 했다. 동네 작은 영어학원이었다. 몇 달을 못 다녔던 것 같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다는 이유였다.


그나마의 숨통이었는데, 그마저도 빼앗겨 버렸다.

엄마는 영어학원을 끊으면서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너 어차피 공부하는 거 싫어했잖아. 집에서 놀아.”


공부하는 걸 싫어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엄마는 내 의견을 묻지도 않고 정당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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