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추 희원
서울의 대기업에 3년 차 직장인 추 희원은 작년, 깊은 고민을 했다. 보증금 5천에 월세 90 관리비 15에 오피스텔에 살고 있던 그는 월급이 400이 넘어가도 생계를 유지하고, 저축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매달 고정비만 200이었고 남들이 연봉 반만큼의 시계 정도는 껴도 된다며 부추기는 바람에 명품시계도 무리해서 샀다. 매달 부모님 용돈도 10만 원씩 드려야 했고, 대기업에 다닌 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만날 때면 턱턱 밥도 사야 했다. 심지어 그는 차를 사고 싶다는 욕심도 문득문득 올라올 정도로 물욕이 있는 편이었다. 그러나 한 달에 백만 원은 저축해야 한다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며 물욕을 꾹꾹 누르고 3년 동안 8천만 원을 모았다. 그마저도 성과급이 없었다면 못 모았을 금액이다.
그의 나이 만 29세, 30세가 되어가니 주변에서 결혼을 얘기하고 부추겼다. 여자친구도 없는데 무슨 결혼이냐며 말을 돌리고 있긴 하지만 여자친구가 있어도 돈이 없어서 결혼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돈을 생각하자 그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관리비 포함 월세 105만 원이었다. 며칠 전 재계약을 하기 위해 집주인과 통화를 했고 집주인은 올해부터는 월세를 10만 원을 더 올리겠다며 통보까지 했다.
"그래. 월세 말고 전세가자."
남들도 다 전세를 사는데, 그만 115만 원이나 내고 월세를 사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당장에 전세를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을 몇 군데 돌아보았지만 생각보다 전세는 많지 않았다. 부동산 사장님은 처음부터 그에게 경고했다. 마음에 드는 매물이 나오면 고민하지 말고 당장 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말고도 집을 노리고 있는 사람들이 최소 5명, 10명이 있어서 5분, 1분 안에도 집을 뺏기는 일이 태반이라고. 그는 3번째 집을 보았을 때, 이 집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집들보다 위치도 좋고, 층수도 좋았다. 심지어 가격도 합리적이었기에 부동산 사장님께 그는 이 집이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부동산 사장님은 그에게 이 집은 특히나 보러 오는 사람이 많고, 인기가 좋다며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5분 내로 집이 나갈 것 같다 했다. 당장에 계약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가계약금을 걸라며 그를 꼬드겼다. 그는 당황했지만 전세 2억의 잠실 투베이 신축빌라가 인기가 좋다는 말이 설득력이 있음을 느꼈고, 눈앞에는 월세 115만 원이 아른거렸다.
그는 그 자리에서 500만 원을 송금했다. 가계약서를 쓰고 오후에 집주인을 만나 진짜 부동산 계약을 진행했다. 집주인은 평범하고 인상이 좋은 아저씨였다. 여러 집이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며 부동산 사장님은 우리 집주인은 좋은 사람이라며 몇 번이고 그를 안심시켰다. 그는 어디서 본건 있었고 집에 대출금은 얼마인지, 집주인의 주민등록증과 실주인이 일치하는지도 나름 꼼꼼히 따져보았다. 은행에서도 대출이 나오는데에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3일 뒤 이사를 하는 날 잔금을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계약금 10프로를 선입금했다. 2억의 10프로 2천만 원 중 500만 원을 제외한 1500만 원을 그 자리에서 입금하자 집주인은 고맙다며 좋은 일이 있을 거라고 그에게 덕담을 했다.
그와 집주인은 웃으며 서로 악수 하고 한부씩 계약서를 나눴다. 그는 가벼운 마음으로 부동산을 나왔다.
약속했던 이사 날짜 3일 뒤 그는 이사를 했다. 이사와 동시에 그는 잔금을 치루고 감사인사를 집주인에게 문자로 남겼다. 집은 그가 처음 본 날보다 훨씬 깨끗하고 편안했다. 전세로 이사오면서 그가 내던 월세 115만원의 금액은 전세이자 포함 40만원으로 팍 줄었다.
그의 선택이 옳았음을 즐겼다.
행복이 이런것이구나 잠깐 만끽할 정도였다.
그의 행복은 단 한달짜리였다. 그가 전세사기를 당했음을 알기까지.
이사를 오고 한 달 뒤, 법원에서 통지표가 날아왔다. 집주인의 모든 재산이 압류당할 것이고, 그의 전세금은 보호받지 못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했다. 말로만 듣던 전세사기 피해자가 본인이 된것을 받아들이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3년을 꼬박 모은 8천만원을 모두 날리고, 전세자금대출 1억2천의 빚도 하루 아침에 생겨난 것이었다.
그나마 국가에서 1억2천의 빚을 당장 갚으라고는 하지않았다. 다행인것일까, 유예기간을 주었다. 국가는 피해자 보호라며 공공임대 주택에 2년간 월 30만원에 살수 있는 방도 마련해주었다. 그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렇게 대기업에 잘나가던 추 희원은 서울의 공공임대 주택인 백조빌라 302호로 이사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