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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청년은 왜 죽었는가

by 윤늘

"101호 청년 신 재근 씨가 사망하신 사유를 밝혀주십시오."

한 기자의 질문에 담당 경찰 최 광식은 대답을 하기 꺼려한다.


"사유는 불분명합니다."

"사망한 지 얼마나 됐는지는 알 수 있습니까?"


"현재 1주일 정도 지난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 이상의 질문은 받지 않겠습니다. 조사 후 정확한 정보 전달드리겠습니다. "

"한 가지만 더 받아주시죠!"

"죄송합니다."


기자가 큰 목소리로 그를 붙잡았지만 그는 기자를 지나쳐 가며 고개를 숙였다. 기자는 어딘가 급하게 전화를 하고, 광식은 빌라 바깥에 있는 경찰차를 타고 서로 돌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한 남자가 있는데. 근심이 가득한 표정의 50대 남성이다.



그로부터 6시간 뒤 101호 앞 102호 수연이 퇴근 후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 그만! 엄마 때문이 아니라고!"


자신의 전 남자친구이자, 전 예비신랑 박 하준과의 파혼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는 자신의 잘못이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수연은 짜증났다. 그녀와 그의 파혼 사유는 하준의 집에서의 완강한 반대였다. 여러 이유 중 하나는 그녀가 2년제 대학을 나왔고, 이혼가정이라는 사실이었다. 엄마에게는 그저, 마음이 떠나서 그런 것이라며 둘러댔지만 엄마는 눈치가 있었고 자신때문이지 않냐며 그녀에게 사과했다.


"끊어! 엄마때문 아니니까. 그만 사과해."


그녀의 인생에서 모든 것이 완벽하다고 할순 없지만, 그래도 남들만큼 열심히 살아왔다고는 자부했다. 2년제 대학과 홀어머니 같은 것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8년동안 한 회사에서 장기근속을 했고 인정도 받았다. 돈도 차곡차곡 모아서 곧 있으면 이 낡은 빌라에서 나가 좋은 아파트로 들어갈 준비까지 마쳤다.


그런 그녀에게 딱 하나 부족한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이 부족했다.


첫 번째 4년간의 연애, 그리고 남자친구의 바람. 이별. 실패였다. 그리고 두 번째 4년간의 연애, 완벽한 남자친구였고 천생연분이라고 믿은 박하준. 그와는 결혼까지 생각했다. 실팼지만.


그녀는 답답한 마음에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냉장고에서 맥주한캔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가 헤어지자고 말할때 보인 차가운 눈빛이 다시 떠올랐고, 그때 그 감정이 몰려왔다. 심장이 찢어질 듯한 고통. 영원히 함께 하자던 약속이 무너진 그날 그녀의 영혼도 무너졌다.


즐겁게 하던 회사 일도, 항상 하던 루틴과 운동들도 모두 재미없어졌다. 삶이 무너졌다. 아무도 그녀를 보살펴 주지 않았고 또 다시 사랑에 실패했다는 슬픔과 자신의 부족함을 채울 수 없다는 것에 낙담했다. 그는 영약했다. 그녀가 고칠 수 없는 것들로만 그녀를 버렸다.


의미없는 뉴스가 흘러나오는 텔레비전을 바라보며 작은 방안에서 맥주를 마셨다. 익숙한 화면이 뉴스에 나올때까지 그녀의 머릿 속에는 온통 하준이었다.


"안타까운 소식 전해드립니다. 서울의 한 빌라에서 20대 청년이 사망한 지 1주일 만에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20대의 청년이 사망하고 1주일 동안 발견되지 않은 것은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오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인의 고독사 문제는 우리 사회의 문제로 이미 많이 제기되어 왔지만, 이번 사건으로 청년 고독사에 문제도 붉어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텔레비전 속에서 나오는 뉴스속보가 나왔고, 화면 속에는 자신의 빌라가 비춰졌다.


"우리 빌라잖아..?"



백조빌라는 작았다.5층까지 있는 빌라였고 1,2라인만있는 10집이 사는 곳이었다. 10집에 총 12명의 사람이 살았다. 두집은 신혼부부가 살고 있었고, 나머지 9집은 홀로사는 청년들이었다. 그중 한명의 청년이 죽었다.

사유는 고독사


7명의 청년들은 불안했다. 특히나 사망한 청년 신 재근의 집 101호 옆에 살고 있던 102호 수연은 불안에 떨었다. 경찰들도 수연을 가장 인접한 인물로 지목했고 경찰서도 동행되어 다녀왔다. 그러나 그녀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고 곧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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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사를 온지 5년만에 처음 열린 주민회의. 아니, 이 백조빌라가 생긴지 근 30여년만에 처음 열린 주민회의였다. 조용하고 소박한 이 빌라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이었고 위기였다. 9집이 모두 빌라 앞에 작은 카페에서 모였다. 선셋카페.

선셋카페의 사장 수호가 모두에게 말을 했다.


"네?"

"아무래도 가장 불안하신 건 수연씨겠지만, 모두가 불안하시죠. 그래서 제가 생각해봤어요. "

"어떤?"


수호를 모두 주목했다. 수호는 헛 기침을 한번 하더니 긴장한 목소리로 말을 한다.


"지금 사건은 101호에서 났고, 그러면 102호, 201호, 202호 301호, 302호, 401호,402호, 501호,502호 이렇게 9집이 남았어요. 그중 501호와 502호는 부부가 사시죠. 나머지 분들은 모두 혼자사시고요. 저는 혼자사시는 분들끼리 커뮤니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뭔.."


202호에 사는 대학생이 어처구니 없다는 식의 표정을 했다.


"202호 학생 맞죠? "


"네. 202호입니다. 저는 2주 뒤에 군대가서 이집 뺄거에요. 그니까 저는 빼주세요."


"아."


"저도요. 저도 별로.. 그런건 귀찮은데,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요."


401호 청년이 말했다. 수호는 당황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커뮤니티라고 하면 뭘 하는데요?"


"어.. 저도 거기까지 정확하게 계획한 것은 아닙니다만, 고독사를 알아보니 홀로 도움을 청할 곳도 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니까 힘든일이 있으면 고민도 들어주고, 간간히 생사여부도 확인하는?"


"좋네요. 저는 찬성이요."


수연은 적극 찬성했다. 수호는 카운터에서 종이와 펜을 꺼내왔다. 그리고 102호부터 502호까지의 호수를 적었고, 동그라미와 엑스 표시를 했다.


"102호는 동의, 501호 502호분들은 제외. 202호 학생과 401호 청년은 비동의 맞으실까요?"


그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연락처와 성함 여기 다 적어주세요. 오늘 같은날이 또 벌어지면 안되지만 비상연락처정도는 있는게 맞을 것 같아서요. 제가 취합해서 개인적으로 다들 보내드리겠습니다."


"네."


수호가 주는 종이에 자신의 번호와 이름을 적기 시작하는 주민들. 302호 희원의 차례가 되었을 때 희원은 수호에게 물었다.


"근데, 저는 101호 재근씨가 고독사라는게 사실 믿기지가 않아요."


"네?"


"제가 302호라서 3층에 살지만 101호 재근씨. 가끔 마주쳤거든요. 출근시간이 비슷해서 그런가. 여튼 그사람 되게 열심히 살았고, 또 지인들도 없지 않았거든요. 뭐. 확실한건 아니지만 여자..친구? 같은 사람도 있었구요."


희원은 종종 재근을 본적이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고개인사를 할정도로 얼굴을 서로 익힌정도였다. 한 번은 그가 술에 취해 빌라 입구에 쓰러져 있는 것을 재근이 발견하여 3층까지 올려다 준적도 있었다. 그는 건장하고 열심히 사는 청년같아 보였다. 희원과는 달리.


"...그런가요? 그분이 도통 잘 안보이던데.."


"그가 죽은 이유가.. 정말 고독사인지... 저는 의심이 가요."


희원의 말에 모두가 잠시 침묵했다. 그 침묵을 깬 것은 202호 정훈이다.


"의심 할 필요 있나요? 이미 경찰이 조사중이고, 고독사라고 발표했으면 그런걸로 생각해야죠."


"그래요. 그냥 저희는... 저희 살길을 찾아봅시다."


"커뮤니티에 대한 동의와 비동의도 지금 그 종이에 표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호의 말에 희원은 연락처를 적고 있던 종이를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동의에 동그라미를 친 사람은 단 둘. 수연과 수호. 희원은 고민했다. 그리고는 동그라미를 꾹꾹 눌러 그렸다. 옆에 있던 202호 정훈은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다. 원래는 커뮤니티 같은건 정말 제일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왠지 옆에 있는 희원의 말이 자꾸 걸렸다. 집에서 공부 밖에 안하는 희원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


'아, 고민되네.'


"그럼 다들 적으신거 맞죠? 보니까 102호, 202호, 301호, 302호 이렇게 동그라미 쳤네요. 이분들만 남고 다른 분들은 집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비상연락처는 내일까지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바쁘신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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