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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로소피아 Sep 11. 2023

돈은 빚이다

우리의 경쟁사회는 자본주의의 결과물

EBS다큐멘터리 시리즈 중에서 자본주의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아시나요? 십 년 전에 총 5부작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입니다. 이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강산이 한 번 변했는데도 아직도 여기서 다루었던 많은 내용들이 지금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가장 먼저 “자본주의에서 돈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이번 글의 제목과 같은 “돈은 빚이다”입니다. 왜 돈은 빚일까요?

 

이 답변을 설명하기 위해 다큐멘터리에서는 우선 은행이 만들어지게 되었던 17세기 영국 시대로 갑니다. 그 시절 영국 사람들은 금으로 거래를 했습니다. 금은 들고 다니기에는 너무 무거워서, 사람들은 이 금을 금화로 바꾸었습니다. 이렇게 금을 금화를 바꿔주던 사람들이 금세공업자였습니다. 금세공업자들은 금을 보관하기 위한 금고를 만들었고, 사람들은 그 금고에 자신들의 금을 맡기고 소정의 보관료를 지불하고 보관증을 받았습니다. 이 보관증을 다시 금세공업자에게 돌려주면 언제든지 자신의 금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게 보편화되면서 사람들은 금 대신 자신들의 금보관증을 교환하며 거래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업을 하던 금세공업자는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금을 맡긴 사람들은 모두가 한날한시에 자신에게 돈을 찾으러 오지 않는다는 거였지요. 하루에 평균 10%의 고객만 금을 찾으러 왔습니다. 10%의 금을 제외한 나머지 90%의 금을 금고에 썩히는 건 아까운 일이니, 금세공업자는 금이 필요한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금을 대출해 주고 이자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금을 맡긴 고객들과 이자를 나누면서 고객들이 계속 금을 금고에 보관하게 했지요. 하지만 고객들이 받는 이자율은 금세공업자가 대출을 해주고 받는 이자율보다 낮았기 때문에 금세공업자는 계속 이익을 남겼고 엄청난 부자가 되었습니다. 조금 더 욕심을 낸 금세공업자는 나중에는 있지도 않은 금을 대출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사람들 사이에서 금고에 금이 별로 없다는 소문이 퍼지게 되고, 불안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금세공업자에게 몰려가서 자신들의 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금고가 바닥난 금세공업자는 파산하고 맙니다. 그때 전쟁으로 인해 금화가 많이 필요했던 영국 왕실이 금세공업자를 찾아와서 금세공업자가 가상의 돈을 만들어서 대출영업을 할 수 있도록 특별히 허락해 줬습니다. 대출 가능한 돈은 왕실이 보유하고 있던 금의 세배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은행이 탄생하였습니다. 


이 스토리는 현재에도 적용됩니다. 예금액 대부분은 은행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90% 이상의 예금액은 전부 다 대출되었기 때문입니다. 은행은 이 대출과정에서 돈을 창출합니다. 예를 들자면, 정숙이가 A은행에 10,000원을 예금합니다. A은행은 정숙이의 예금 1,000원만 남기고 9,000원을 상철이에게 대출해 줍니다. 이 경우에 돈을 예금한 정숙이는 10,000원을 꺼내 쓸 수 있고 돈을 빌린 상철이도 9,000원을 꺼내 쓸 수 있습니다. 분명 시작은 정숙이의 돈 10,000원이었지만 시장에 있는 돈은 정숙이와 상철이의 출금 가능한 금액, 총 19,000원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대출을 통하여 새로운 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신용 창조’라고 합니다. 은행의 대차대조표를 보면 대출해 준 돈은 자산이고 손님의 예금액은 부채입니다. 우리가 더 많은 자산을 원하듯이 은행입장에서는 더 많은 고객에게 대출을 해줄수록 자산이 늘어납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금 우리 사회는 빚을 권유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여담으로 손님들이 한꺼번에 돈을 찾아가서 은행이 망하는 일은 2023년 초에도 있었습니다. 뉴스에 많이 나왔던 미국의 실리콘밸리뱅크 파산이 그 예입니다.


우리가 대출을 받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현금이 없어서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한다거나, 학자금이 필요하다거나, 집을 사야 하기 때문입니다. 통상 대출을 받으면 우리는 대출금을 갚아야 하고 또한 이자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이자를 내기 위한 돈은 은행시스템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이자를 내는데 그럼 이 이자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다큐멘터리에서는 이자가 어떻게 오는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외딴섬 안에 중앙은행, 정숙, 상철이가 살고 있습니다. 이 섬은 외부와 단절되어 있고 단일통화체제를 갖고 있습니다. 중앙은행에서 돈 10,000원을 발행하고 정숙이가 이 돈을 연이율 5%로 빌렸습니다. 일 년 후에 정숙이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한 10,500원을 은행에 갚아야 합니다. 정숙이가 상철이에게 10,000원을 지불하고 통통배를 사서 열심히 고기를 잡아 돈을 법니다. 하지만 일 년 후에 정숙이는 10,500원을 갚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섬 안에 존재하는 돈은 단 돈 10,000원이기 때문입니다. 이자 500원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이자를 갚으려면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중앙은행이 500원을 더 발행해야 하고 그것을 누군가가 대출하는 겁니다. 이 섬 안에 살고 있는 영자가 이 500원을 대출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제 섬 안에는 10,500원이 있고, 정숙이가 열심히 고기잡이를 해서 이 섬 안에 있는 모든 돈을 다 벌게 된다면 정숙이는 원금과 이자를 갚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지만 영자의 500원의 대출 이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 이자를 만들기 위해 중앙은행이 또 돈을 찍어내고 다른 누군가가 빌립니다. 이렇게 돈을 계속 찍어내기 때문에 돈의 양이 많아지고 물가가 오릅니다. 이렇게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합니다. 만약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10,500원을 갚을 수 있는 정숙이는 괜찮지만 이자를 갚을 수 없는 영자는 결국 파산하게 됩니다. 

여기서의 교훈은 현대사회에는 빚 보존 법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자를 갚으려면 타인의 대출금을 가져와야 하고 결국 누군가는 파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경우 수입이 적고 빚이 맞고 금융지식이 낮고 경제사정이 어려운 사람이 피해자가 됩니다. 내가 살려면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는 경쟁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는 자본주의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이 승자가 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입시경쟁에 시달립니다. 의대에 들어가기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는 참으로 숭고한 직업입니다. 다만 부모님이나 학생들이 의대에 진학하는 것이 인생의 성공 가도를 달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좀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 돌아가는 원리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오히려 금융산업에 더 각별하게 관심을 가져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국 우리가 재테크에 관심을 가지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세계에서 희생자가 되고 싶기 않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살아남는 것이 힘들기 때문에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마음의 여유가 없겠지요. 그렇지만 그 누구도 희생자를 그냥 손 놓고 바라만 보는 사회에서 살고 싶어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승자가 패자에게 손을 내밀고 국가가 국민에게 안전망을 제공해 주길 바랄 겁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현대 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는 약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활 상태를 개선할 유일한 기회가 있는 곳이 자본주의 사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약자를 향한 동정의 마음으로 시작된 아담 스미스의 철학입니다. 우리 또한 윤리, 자선, 복지에 좀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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