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이일수록, 돈은 더 멀었다
나는 한 번도 연인과, 친구와, 가족과
돈 이야기를 편하게 해본 적이 없다.
애인에게 데이트 비용 이야기를 꺼낼 때 망설였고,
친구의 결혼 축의금 앞에서도 괜스레 마음이 무거웠으며,
부모님께 생활비 이야기를 할 땐 끝내 말을 흐렸다.
이상했다.
돈은 내가 매일 쓰는 건데, 왜 말로 꺼내는 순간부터 불편해질까?
그건 아마, 내가 돈을 숫자보다 '감정'으로 여겨왔기 때문이었다.
"요즘 월급 얼마나 받아?"
"그거 살 돈 있어?"
"빚은 다 갚았어?"
단순히 정보만 묻는 말 같지만,
이 질문들을 받으면 마음 한쪽이 스르륵 조여왔다.
상대의 시선, 내 처지, 비교감, 자존심 같은 감정들이 뒤엉켰다.
그리고 나는 점점,
돈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다.
침묵이 편해졌고, 그 침묵은 거리를 만들었다.
누군가는 데이트 비용을 정확히 반반 내자고 하고,
누군가는 자연스럽게 한쪽이 더 많이 내는 관계도 있다.
하지만 그 기준이 다르다는 걸 모른 채
'이건 당연한 거 아냐?'라고 생각하는 순간,
오해가 시작된다.
돈 이야기는 솔직하지 않으면 언젠가 삐걱거린다.
하지만 너무 직설적이면 또 '정 떨어진다'는 말도 듣는다.
그 모순 속에서 나는 계속
돈 이야기를 미루고, 외면하고, 때로는 포기했다.
결국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 보기로 했다.
가족에게, 애인에게, 친구에게
지금 내 상황을 조금씩 말해보기로.
"사실 요즘 지출이 좀 많아서 이번 달은 좀 아껴야 할 것 같아."
"이 데이트는 내가 사고, 다음 번은 네가 사는 건 어때?"
"우리 선물은 금액 정해서 맞추는 게 어때?"
그렇게 말을 꺼냈을 뿐인데
상대도 오히려 편해졌다며 고마워했다.
말하지 않으면 이해받지 못한다.
그리고 이해받지 못하면 상처받게 된다.
나는 지금도 돈 이야기를 완벽하게 잘 하진 못한다.
여전히 조심스럽고, 때론 미안하고, 때론 망설여진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내 사정을 모른다는 걸.
돈 이야기는 감정을 건드릴 수 있지만,
침묵은 관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연습 중이다.
돈 이야기를 '터놓을 수 있는 사이'를 만들기 위해.
가까운 사람과 진짜 가까워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