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이 많은 우리 아이는 새로운 공포의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 대상은 바로 “전쟁”입니다.
책에서 전쟁에 관한 글을 읽고는
전쟁이 나면 어떡하냐며, 자기는 전쟁이 세상에서 가장 싫다며 울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자기 전에 말이죠.
아이를 달래기 위해 먼저 전쟁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을 이야기해 줍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난다면 북한과 전쟁을 할 텐데, 북한의 지도자는 그리 쉽게 전쟁을 시작하지 못할 것이다(구체적인 이야기는 생략했고요…ㅎㅎ)고 달래 봅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날 가능성도 있잖아요! 라며 울음보가 터집니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어쩔 수 없는 거야. 그럴 땐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지 최선을 다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천국에 갈 테니 걱정 말라며 달래 봅니다.
사실 우리는 휴전 상태입니다.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우리는 일상을 살아갑니다. 언제든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말입니다.
아이가 했던 그 말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을 왜 하는 거예요? 전쟁하면 사람들이 많이 죽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서로 떨어지게 되잖아요. 전쟁 같은 걸 왜 하는지 도대체 모르겠어요.”
사실 구구절절 다 맞는 말입니다. 너무 맞는 말이라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사실 저도 전쟁을 왜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으니 말입니다.
전쟁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여러 이론들을 제시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아이의 입장은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영구 평화론을 떠올리게 해 주었습니다.
칸트는 국가들이 이성적으로 국제 관계를 맺길 바란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여러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하는데요. 그의 예비조항(영구평화를 위협하는 요인의 금지를 위한 조항) 중에는 상비군의 폐지 등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는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전 세계의 모든 국가의 적극적인 평화에 대한 동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제시한 조항들은 언뜻 들으면 실현이 불가능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반면, 모겐소(Hans Joachim Morgenthau
, 1904-1980)는 이른바 고전적 현실주의를 채택합니다. 그는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며 사회 역시 이기적이라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따라서 완전한 평화란 무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국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이라는 입장을 견지합니다. 따라서 만약 한 나라의 국방력이 증대되면 상대국 역시 그에 합당한 국방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모겐소의 입장이 앞서 칸트의 이야기보다 더욱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모든 국가가 공화정의 정치체제를 갖고 국제 연맹에 적극 참여하며, 단순 종전이 아니라 완전한 평화를 위해 타국을 침해하지 않고 점차로 상비군을 줄여나가는 것은, 일견 지나치게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러나 모겐소의 입장과 같은 세력 균형은 인간이 이기적이며 동시에 이기적 욕구를 위해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전제합니다. 게다가 국가의 지도자는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인간은 항상 이성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비이성적인 모습과 그로 인해 어이없이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드러낸 영화가 있는데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64년작,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입니다.
영화의 내용은 단순합니다. 미소 냉전의 시기, 편집증적인 반공주의자인 미 공군 장교 한 명이 소련을 향해 단독으로 핵공격을 지시합니다. 미국과 소련은 이 핵공격을 저지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소련 본토에 핵폭탄이 터지게 됩니다. 소련은 자국이 핵공격을 받을 시 자동적으로 전 세계를 파멸시킬 “ 운명의 날” 기계를 만들어 놓았고, 결국 이 기계가 발동되어 전 세계가 멸망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납니다. 핵폭발이 일어나는 와중에 Vera Lynn의 "We will meet again(우린 다시 만날 거예요)" 울려 퍼지며 말이죠.
물론 미국이나 당시 소련의 경우, 핵공격과 같은 민감한 상황에 대해서는 이중 삼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 인류를 멸망에 이를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인류의 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전 인류는 위험에 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모겐소의 의견과 같이 군비경쟁이 치열해지면 결국 인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닥뜨릴 것입니다. 따라서 당장은 현실적이지 않은, 이상주의적인 평화주의는 냉정한 현실 속에서 더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 아이의 소원처럼 전 세계가 평화로워 지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