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광 김성태 선생님
원광디지털대학교 동양학과 교과목 중 <현대 명리학 탐방>이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신정원 교수님께서 역학계의 명사 네 분을 만나, 그분들의 공부 과정과 철학을 인터뷰하신 내용으로 구성된 수업입니다. 한 학기로 진행된 이 과정은 백민 양종 선생님, 청화 박종덕 선생님, 창광 김성태 선생님과 Sasha Lee 네 분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저명한 선생님들도 계시겠지만, 신정원 교수님께서 이 네 분을 인터뷰하시게 된 이유는 30년 이상 학문을 이어오시면서 교육도 하시고, 상담 현장을 떠나지 않으신 분들이었습니다. 이 강의를 수강하면서 언젠가 나도 신정원 교수님처럼 대단하신 선생님들을 만나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성경의 말씀이 내 삶의 길에서 함께 하는 때가 오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강의에서만 접하였던 백민 양종 선생님, 청화 박종덕 선생님, 창광 김성태 선생님 세 분과 인연을 맺게 되고, 길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시간을 가지다니요. 정말 꿈만 같은 일이 펼쳐졌습니다.
김병우 선생님과 선운 선생님께서 창광 선생님께 연락을 한번 드려보라고 말씀하셨는데, 너무 유명하신 분이시라 연락을 드려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문을 두드려 보지도 않고 이 문이 닫혔는지 열렸는지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창광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볼 방법은 상담 신청밖에 없었습니다. 서울에 가서 직접 뵙고 상담하고 싶었지만, 직장이 있으니 시간이 맞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 전화 상담을 신청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내 사주에서 월령이 부여한 나의 의무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글을 쓰고, 교육하는 일에 대해 응원해 주셨습니다. 응원을 해주시는 틈에, 선생님께 인터뷰 요청을 말씀드렸습니다.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고 계시는 유명한 분이시라 허락하시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답을 기다렸습니다. 심장이 쿵쿵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뜬금없이 전화번호를 불러줄 테니 받아 적어보라고 하셨습니다. 갑자기 불러주시는 전화번호를 당황하며 받아 적었습니다. 선생님 일정을 관리하는 직원 번호라고 하시며, 여기 전화해서 이야기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건 오케이 신호인가? 아닌가?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습니다.
창광 선생님과 인터뷰 약속을 잡고 뵙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선생님의 강의는 많이 들었었지만,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출판하신 책들을 읽어보고 가는 것이 예의라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고 뵈러 가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습니다. 선생님을 뵙기 전에 <명리학 개론> 3권과 <음양오행_출생의 이유>를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들이 만만치 않아 오랜 시간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님을 뵙기 전에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의 인터뷰는 다른 인터뷰들과 달리 청중이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더큼학당>에서 공부하는 학생분이셨는데, 인터뷰하는 내도록 대화 내용을 타이핑하고 반응도 해주셨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느 순간 긴장의 끈을 놓아 버렸습니다. 인터뷰인지도 모르고 대화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역학계의 대가라는 타이틀 너머, 한 사람으로서 선생님 삶에 대한 철학과 고뇌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선생님과 깊은 대화를 나눈다는 사실이 비현실 같았지만, 그 시간 내내 감정적 몰입이 깊게 일어났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때 선생님께서는 열심히 살고 있겠다고 말씀하셨고, 나는 열심히 공부해 나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봄의 수확 같은, 여름의 바람 같은, 가을의 꽃향기 같은, 겨울의 햇살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제이선생님) 반갑습니다. ‘하루 한 장’ 명리입니다. 창광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한번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하루 한 장’이라고요? 내 블로그 이름은 ‘벽돌 한 장’이에요. 하루에 뭐든지 하나는 하겠다는 뜻이지요. 모든 것이 하나둘씩 쌓여 가는 것이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벽돌 한 장, 그래서 벽돌 한 장.
(제이선생님) ‘하루 한 장, 벽돌 한 장.’ 무언가 비슷한 점이 있어서 기쁩니다. 먼저, 선생님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서초동에서 33년째 상담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98년부터 ‘하이텔 역학동’이라는 동아리 내 소모임인 ‘서당 개 클럽’에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더큼학당에서 오프라인, 온라인 강의하시고, 유튜브 활동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있는 곳이 '한길로'라는 회사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주바주’라는 앱을 만드셨습니다. 또 다양한 책들을 집필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 명리학을 공부하시기 시작한 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명리를 학습한 것은 집안 내력으로 접하게 되었습니다. 명리학 공부는 89년에 명리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분 말씀 중에 귀담아들을 말이 있어서 하게 되었지요. 수행도 해보았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수행하는 것을 공부라고 그래요. 그래서 명리학을 하는 것은 공부란 용어를 쓰지 않고 ‘궁리’라고 했습니다. 어디 한 번 명리에 대해 궁리해 볼까 하며 시작해 본 거지요.
(제이선생님) ‘궁리’라는 단어가 명리 공부와 너무 어울립니다. 지난번 저와 통화하실 때 저에게 독서를 많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다양한 독서를 학생들에게 권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춘추번로(春秋繁露)’, ‘회남자(淮南子)’, ‘오행대의(五行大義)’ 이런 고서들을 여기 학생분들에게 다 읽히시는 건가요?
(김성태 선생님) 읽어야 하는 도서의 목록이 있습니다. 제 책상 옆에 도서 목록이 있죠. 또 도서를 사서 여기 공부하는 곳에 비치를 해놓죠. 책에 도장을 찍어 놓지요. 내가 도장 찍은 건 꼭 읽으라고 합니다. 춘추류인 동중서의 책은 꼭 읽으라고 합니다. 동중서(董仲舒) 책 중에 <춘추번로(春秋繁露)>는 유가류 중에서도 읽어볼 만합니다. 도가류 중에서는 여불위의 <여씨춘추>를 읽으라고 합니다. 대개 대학원 가면 꼭 읽어야 하는 책들이지요. 여기 다 비치가 되어 있지요.
(제이선생님) 네, 저도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월(月)'을 이해하고 눈물을 흘리셨다고 하셨습니다. 다양한 독서 경험을 베이스에 두시고, 월을 이해하시면서 어떤 깨달음이 오신 걸까요?
(김성태 선생님) '나'라는 일간을 포기하지 않은 상태에서 월령을 알려고 한 욕심들이 명리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라는 '일간'을 완전히 포기하고, 월령이라고 하는 환경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내세우지 말라는 이야기지요. 명리에서는 ‘격(格)’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태어난 월(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즉 세상이 원하는 것을 항상 중심에 두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따르는 것이 중요함을 알게 되었어요. 다시 말해 이 세상에 태어난 나의 의무를 이행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명리학이 가지는 진짜 의미이지요. 개인적으로 봤을 때 어떻게 보면 한 인간은 유치합니다. 세상의 이치를 따라야지요.
명리(命理)라는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은 감정을 완전히 버리고, '월지(月支)'라는 시공간의 임무를 보는 것이지요. 시간으로는 그것을 '월령(月令)'이라고 합니다. 임무로는 '용사지신(用事之神)'이라고 하고, 임무로는 내가 따른다고 해서 '용신(用神)'이라고 합니다. 그곳에 내 삶이 있다고 해서 '택향(宅向)'이라고 합니다.
(제이선생님) 제가 선생님 전화번호 알게 되면서 카카오톡에 있는 선생님 프로필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올려놓으신 거예요. 댁이신 것 같던데. 그 사진을 통해 월(月)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마당. 낙엽 사진?
(제이선생님) 네, 마당. 거기에 눈 덮인 사진 하나, 낙엽으로 덮인 사진 하나. 이렇게 계절이 변하는 사진을 올려두셨던데, 천원(天元) · 지원(地元) · 인원(人元) 이런 것이 이 사진 속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하늘의 뜻 그리고 땅이 만물을 낳는다는 것. 그래서 그 마당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귀뚜라미가 울 때도 있고, 매미가 울 때도 있고. 그 각각의 역할들이 드러났다 사라지는구나, 그냥 그런 생각을 사진을 통해서 한 번 해봤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천원(天元)은 ‘천인 감응’이라고 해서, 하늘의 기운을 말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알고 있어요. 모르는 사람은 없어요. 바보도 알고 성인도 알아요.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으니까. 다 알아요. 그래서 천간은 내 계획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지원(地元)이라는 것은 시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내 계획이 이 시간에 맞는가. 그리고 인원(人元)이라고 하는 것은 지장간(支藏干)을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에 맞게 실천했는가. 이런 것들을 보는 것이 ‘자평 명리학’의 근본이지요. 다시 말해, 천간과 지지를 보며 내 계획이 시간에 맞나? 살펴야지요. 그리고 지장간(支藏干)의 인원을 보며 내가 그만큼 노력을 하나?, 생각해야지요. 맨날 뭐 그런 생각만 하는 거니까, 그래서 카톡 사진도 그런 것밖에 안 올리나 봅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 사실 제가 지금 여기 오면서 엄청나게 긴장했었거든요.
(김성태 선생님) 왜 긴장해요?
(제이선생님) 너무 유명하신 분이시잖아요. ‘서락오 이후에 최고의 명학자(命學者)’라는 말뿐만 아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큰 선생님이신데, 제가 뵙고 말씀 나눈다고 생각하니 긴장이 되었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웃으시며) 가볍기가 뭐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제이선생님) 그럴 리가요. 제가 너무 긴장한 탓에 선생님 소개로 시작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제 소개는 그냥 술사(術士)예요. 혹세무민 안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노력과는 달리, 상처를 받으신 분들도 있겠지요. 항상 남의 집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는 이 못 쓸 직업에 대해서 반성을 많이 합니다. 죽을 때 뼈가 시커멓게 안 죽기 위해서 계속해서 반성합니다. 반성하고 또다시 반성합니다. 계속 반성 반성하다 보니, 내가 하는 말이 명리학자 같지 않고, 무슨 뭐 스님 같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뼈 있는 말만 하고 또 너무 무거운 분위기라 하니, 또 웃기려고 노력도 하고. 그런 술사입니다. 내 소개는 술사가 맞아요.
(제이선생님) 이 일을 하시며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냥 술사라 하시지만, 많은 사람이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엄청 부지런하게 사셨지요?
(김성태 선생님) 남들이 보면 부지런하다고 하는데, 시간을 어기진 않죠. 34년 서울 이 장소로 출근하면서 단 한 번도 결근을 해본 적은 없죠. 또 사장님이 없으니까 사장님을 가상적으로 정해놓고 항상 보고하고. 보고 많이 해요. 오래된 제자들은 나한테 지독하다고 합니다. 손님들은 특이하다고도 하고요. 그 자리에서만 이사도 안 가고 33년 앉아 있으니. 어린애가 와서 말도 충청도 말 계속하며, 변하지 않으니까요.
(제이선생님) 34년간 결근이 없으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제가 이전에 강의하시는 부분에서 확 와닿았던 내용이 생각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하고 전념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셨어요.
(김성태 선생님) 지금도 마찬가지죠.
(제이선생님) 제가 이렇게 인터뷰하면서 명리 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예술가 기질도 있고, 시적으로 표현하시는 것도 있고, 상담가이기도 하고, 철학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종합하면, 공부하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계속, 끊임없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를 공부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또 자연과학 지구과학 이런 것도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 이 명리 공부가 통섭의 학문이지 않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점학(占學)은 사실을 전해주면 되는 약간의 단순함이 있죠. 점학(占學)과 달리 명리학은 명학(命學)이거든요. 인생 전반을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가 많지요. 하지만 명리학 범주가 인생 전반을 이야기하는 건 또 사실 아닙니다. 운명학의 범위는 협소한데, 고객이 바라는 것은 인생 전반에 대해 듣고 싶은 것이지요. 이럴 때를 대비해서 술사(術士)에게는 술사(術士) 자신의 철학적 사유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개개인의 철학적 사유를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이런 사유체계를 넘어서서 개개인의 가치관과 경험 역시 존중해주어야 합니다.
상대를 존중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이 지혜의 폭을 넓혀 놓으려면 책이 필요합니다. 또 세미나 등을 다니면서 다른 선생들은 어떤 말씀을 하시는지 듣는 것도 필요합니다. 사람을 대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행복을 지지해야지요. 그 행복을 지지하는 위로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제이선생님) 선생님. 결국에 내가 단단하게 다져져야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단단해지는 방법은 끊임없는 공부와 인내인 것 같습니다. 위로. 명리학이 가지는 매력이 이러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위로. 그러려면 점학(占學)처럼 할 수는 없지요. 그러다 보니까, 이 공부하는 사람들이 다재다능할 수밖에요. 또 때로는 개그도 하고. 이런 것들이 다 필요해요. 다양성을 갖추셔야 해요.
(제이선생님) 너무 멋진 공부인 것 같고, 끝도 없는 공부인 것 같고, 사는 내도록 함께 해야 하는 인생 여정에 있는 공부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 하나만 더 여쭤보고 잠시 쉬겠습니다. ‘대운’이 궁금합니다. 월에서 따져나가며 10년마다 바뀌는 운인데요, 그렇다면 대운(大運)이 바뀌면 임무도 바뀌나요?
(김성태 선생님) 아닙니다. 임무는 그냥 사주 그대로지요. 그걸 수행하는 과정이 대운이지요. 나이가 들어가는 것뿐이지요. 대운은 나이의 표시예요. 대운(大運)이라는 것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의 재능을 계속 업데이트하는 것이고, 세운(歲運)은 대운에서 배운 재능을 쓰는 것입니다.
대운은 내 월령(月令)에서 나간 거잖아요. 봄에 태어났으면 대운이 여름으로 가거나 겨울로 가는 거잖아요. 그 시간의 변화는 한난조습(寒暖燥濕)의 변화예요. 나무가 봄이면 싹이 나잖아요? 여름으로 대운이 흘러가면 가지가 나오죠. 그런 만큼 자신도 성장합니다. 그거 보는 거예요. 대운은 내가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내 것에서 출발했으니까요.
세운은 내가 남을 만나는 거랍니다. 대운은 바뀌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동양철학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화(化)입니다. 삼라만물(森羅萬物) 중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바뀌는 것이 아니라 변(變)하는 것이다. 내가 어디서 출발했는지를 보는 것이 시령(時令) 사상입니다. 모든 동양철학은 시령(時令)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동양철학은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제이선생님) 선생님께서는 명리학이 실용 학문이라고 이야기하시던데요, 명리학의 역할에 대한 선생님의 견해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학문으로 이야기할 것 같으면, 사람 사용 설명서라는 '육신(六神)의 생화극제(生化剋制)'와 만물 사용 설명서라는 '오행(五行)의 상생상극(上生相剋)', 시간 사용 설명서라는 '월령(月令)의 합충변화(合沖變化)'를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 만물, 시간을 사용하는 설명서라는 것을 보면, 실용적으로 활용되는 학문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제이선생님) 그런데 선생님과 같이 명(命)을 잘 보시는 분들은 한 사람의 사주팔자 명식(命式)을 딱 보게 되면, 이 사람의 임무가 무엇인지, 본질은 어떤지, 그리고 어떤 쓰임을 가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사용될지, 무엇을 가지고 이 사람이 살아갈지, 만물 가운데 어떻게 행위하는지. 이런 것이 모두 보이시는 것이지요?
(김성태 선생님) 그걸 억지로 하나하나 찾아서 보고 있으면, 손님 시간 없어서 가십니다. 본능에 가깝도록 연습을 해서 몸에 완전하게 익혀야지요.
(제이선생님) 그냥 한눈에 바로 보이시는 거지요?
(김성태 선생님) 그렇지. 그냥 해야 하는 거지요. 굿을 세 번 하고도 말문 안 트인 무당처럼, 그러면 안 되지요. (웃음) 그걸 앉아서 한 30분씩 쳐다보고, 찾고. 이렇게 하면 그건 안 되지요. 연습이죠. 연습해서 그게 습관처럼 딱 붙어야 해요. 만물 사용 설명서라는 오행의 상생상극, 사람 사용 설명서라는 육신의 생화극제 그리고 시간 사용 설명서라는 합충의 변화. 논리적으로나 뭐나 학습 목차만 알고 있으면 다 됩니다.
눈 감고도 자동으로 되어야지요. 연습을 본능적으로 해야지. 프로축구 선수들한테 '공을 알아서 차냐? 정신없이 차냐?' 물어보면, 유명한 선수들은 모두 정신없이 찬다고 해요. 하나의 이론을 50개의 사주를 놓고 임상을 해보세요. 그런데, 쉽지 않아요. 아는 건 아는 게 아니에요. 평상시도 모르는데, 현장 가면 자동으로 해져야 아는 거예요. 명리학은 칼싸움과 같아요. 지금 시간이 아니면 다음 시간엔 만나지 못하는 이 땅의 기운.
우리는 설명서의 내용을 설명해 주기만 합니다. 설명서의 내용을 설명해 주면, 그다음은 그 물건을 가진 사람의 몫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할 일이지요. 너무 많은 개입을 할 수는 없지만, 그걸 해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지요. 연습하면 돼요. 연습 많이 하시면 돼요. 자다 일어나서 축구공을 차도 공이 골에 들어가야 합니다.
(제이선생님) 그러면 선생님. 내담자가 와서 무언가를 물으면, 어떻게 살아갈지 그런 해결 방법을 제시해 주시나요?
(김성태 선생님) 해결 방법은 없어요. 상식이라고 하는 거 있잖아요. 우리가 살다 보면 상식이라는 것을 잘 지키지 못해요. 종교적으로는 초심, 사회적으로는 본질이라고 하지요. 이걸 다 잊어버려요. 그래서 초심 찾아주고, 본질 찾아주고, 상식 찾아주고 그러지요. 맨날 통변(通辯)이 똑같아요. 파란불에 건너가시고, 빨간불에 건너가지 마시라는 정도만 이야기해 주면 되지요.
(제이선생님) 요약해 보자면, ‘너의 임무는 뭐란다, 너의 쓰임은 뭐란다.’ 이런 이야기해 주시는 거지요?
(김성태 선생님) 왜 이렇게 변했냐. 네가 분수에 안 맞는 것을 요구했으니 불행한 것이다. 상담이 뭐 대단한 거 아니에요.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분수에 안 맞는 소원을 내려놓게 하고, 자식이나 남편이나 부인을 바꾸려 하는 말투와 눈빛을 자중하게 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도움을 주는 노력을 하는 게 상담이지요.
(제이선생님) 선생님 저번에 저와 통화하실 때, 명리에는 사실(事實)이 있다고 이야기하시면서 선악(善惡)도, 피아(彼我)도 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그런 이야기해 주시면서, 명리학자는 봄이 와도 따뜻한 걸 느끼지 말고, 겨울이 와도 추운 걸 느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저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명리에는 선악이 없지요. 명리학이 대전제로 삼는 것은 용(用)입니다. 물건을 용도에 맞게 쓸 수 있어야지요. 선악으로 분류해서는 안 됩니다. 명리학에서 '주관'은 절대 용납이 안 되는 단어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감성이나 감정에 치우치면 객관성을 잃어버릴 우려가 있지요.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사람인지라, 명식(命式)을 대하면서 주관화시킬 수 있지요. 가령 자기의 경험만으로, ‘상관’만 보면 이혼시키려 한다거나 하는 사례를 생각해 보세요.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을 해버립니다. 그러면 안 되잖아요.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용도가 있습니다. 그 용도를 우리가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용지대용(無用之大用),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못 쓰는 물건은 없습니다. 역학자는 그렇게 하면 안 되지요. 그러면 뭐 '나는 축구 선수만 상담할 거야', '나는 이혼녀만 상담할 거야' 이러면 안 되잖아요.
(제이선생님)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용도가 있다는 말씀, 너무 멋진 말씀이십니다. 그런 이유에서 명리학은 참 좋은 공부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오랜 기간 상담하시며, 정말 다양한 인생들과 마주하셨지요?
(김성태 선생님) 그렇죠. <무당풍경>이라는 책을 쓸 때,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사연만 생각하면 눈물이 나는 거예요. 나라는 사람은, 그냥 공허한 공간에 서서 바라보기만 해야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순간들에서 내가 뱉었던 냉정함, 쌀쌀맞음. 뭐, 어떻게 이야기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순간에는 그런 태도가 필요했겠지요. 오랜 시간 상담하며 마음 한구석에 쌓인 그 무언가 확 날려버리고 싶었습니다. 그간에 손님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을 무당이 굿하는 것처럼 형상화하면서 <무당풍경>이라는 소설을 한 번 써보았습니다. 그 소설을 쓰고 나니까 조금 홀가분하더라고요.
(제이선생님) 냉정함. 쌀쌀맞음. 그럴 수밖에 없었던 순간들. 선생님의 마음 한구석에 쌓였을 그 무언가가 무엇일지 생각하니 숙연해집니다. 그 글을 쓰시고, 쌓이셨던 것을 확 풀어내셨네요.
(김성태 선생님) <자전거>라는 글을 쓸 때는 사람들의 한(恨)에 관하여 생각했지요. 구조적 한은 사회적으로 개선해야 하지만, 개인적 한은 날려버려야 하잖아요. 안타까움이 지워지지 않는 한(限)이 있습니다. 역학자가 부끄럽게 한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너무 부끄럽지 않나요?
(제이선생님) 역학자도 사람인데 어쩌겠습니까.
(김성태 선생님) 안 된다니깐요. 그러면 안 됩니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이야기인 거지요. 그래서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역학자로서의 '창광'과 나라는 인간 '김성태'를 나누는 작업을 오랫동안 했지요.
(제이선생님) 창광과 김성태를 나누는 작업이라고요?
(김성태 선생님) 오래 했어요. 문을 '딸깍' 열고 사무실에 들어오면 '창광'이 되었다가, 문을 '딸깍' 열고 나가면 '김성태'가 되지요. 구분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김성태'를 쳐다보면 이건 뭐. 10살도 안 된 것 같아요. '창광'은...
(제이선생님) 500살이십니까? (웃음)
(김성태 선생님) 사람들이 조금 무서워하고 그러지요. 존경도 해주고, 어디 가면 대우도 해주고. 그런데 '김성태'는 그렇지 않아요.
(제이선생님) 다른 사람의 명을 수도 없이 대하시고, 그 인생들을 다 봐오시면서 참 많이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성태 선생님) '사유관(思惟觀)'이라고 하는 것이 있어요. '사유체계'라고도 하지요. 나는 지금도 상담할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상담하는 동안 나의 사유체계를 넓히고, 또 다른 한 사람의 사유관을 하나 더 알아가는구나'라고. 또 하나의 세상을 만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만납니다. 요즘은 나의 사유관이 ‘아직’ 관으로 바뀌었지요. 안 된다는 것은 없어요. ‘아직’ 안 된 것이라고 말해주지요. 가끔가다 사람은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생길 때가 있어요. 손님에게도 '좋은 경험 하신 거예요'라고 이야기하지요. 내 특기가 그런 거예요. '이번에 돈이 안 벌렸어? 아직 안 벌린 거지요. 내일 벌리면 어떻게 하려고요?' 이런 식으로.
원대한 꿈보다는 자기부터 위로해야 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사람을 대하면 명리학 하면서 한도 안 쌓이고 억울한 마음도 안 생기겠지요. 사람들이 나쁘게 변하는 것은 부러움을 못 견뎌서 그래요.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게 젊음이거든요. 사실이에요. 본능적으로 젊음이 부러워요. 그래서 젊은 행사를 하려고 하다 보니까, 주변머리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세속적으로는 돈과 권력이 부러워서 그걸 쫓아가다가 앉은뱅이가 되기도 하고, 구차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부러워서 그래요.
(제이선생님) 나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는 가운데서 불행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김성태 선생님) 그렇죠. 그러니까 부러움만 없으면 돼요. 그렇다고 부러워 말라고 하니...
(제이선생님) 자포자기는 안 된다, 이 말씀이시지요?
(김성태 선생님) 그렇지요. ‘자포자기’하는 마음은 멀리해야지요. 검이불루(儉而不陋),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말고, 화이불치(華而不侈), 화려하나 치장하지는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삼국유사의 이 이야기가 ‘인생(人生)’에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