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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십자가를 마주하는 일

창광 선생님이 말씀해 주시는 월령의 의미

by 몽B


때에 맞게 산다는 것



명리학에는 월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그 사람이 태어난 달을 말하며, 사주팔자에서는 태어난 달의 지지(地支) 글자로 월령을 살펴봅니다. 달 월(月)과 명령 령(令)의 글자를 가지는 월령은 해당 월이 부여한 명령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북반구 중위도 동아시아 지역에서 살았던 옛사람들은 4계절이 어김없이 순환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하늘을 가만 관찰해 보니 태양의 고도가 4계절과 함께 어김없이 오르내리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들은 태양의 고도가 절정에 이르는 지점을 하지라 하였고, 가장 고도가 낮을 때를 동지라 하였습니다. 태양의 고도가 점점 높아지는 가운데 밤낮의 길이가 같은 때를 춘분이라 하였고, 태양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는 가운데 밤낮의 길이가 같은 때를 추분이라 하였습니다. 그들이 살핀 하늘의 길, 이것이 천리(天理)이며 건도(乾道)라 생각합니다.


옛 고서 중『예기』월령 편이나 『여씨춘추』12기, 『회남자』시칙훈을 보면 12개월의 일상적 법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5월(巳월)은 초여름 맹하(孟夏)로 이 시기의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제시합니다. 이 시기에는 토목공사를 시작하거나 큰 나무를 베어서는 안 됩니다. 초여름의 시기에 가을이나 겨울 봄의 정령을 행하게 되면 농사나 정치, 사람들 삶의 행태에 문제가 순조롭지 못하게 됨을 이야기합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초여름은 초여름답게 보내야만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때에 맞추어 농사를 짓고 정치를 비롯한 공동체를 영위하는 일을 하였을 때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흐른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명리학에는 '나'를 상징하는 '일간'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또한 환경을 상징하는 '월지 즉 월령'의 글자가 있습니다. 창광 선생님께서는 ‘나라는 일간과 상관없는 월령 본연의 의미’를 궁리해 보라고 이야기하셨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한 내용이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리송하였습니다. 월령을 이해하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하셨을 때 나는 선생님 말씀에 크게 공감하지 못하였습니다.



월령, 자신의 십자가를 마주하는 일



선생님을 뵙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 이후로 한참의 시간이 흐른 이후의 어느 가을날. 나는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월령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습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마태복음 16장 24절의 성경 말씀입니다. 월지는 자기만의 십자가인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환경 혹은 내가 벗어날 수 없는 환경이 ‘월지’입니다.


어느 주말의 나른한 오후, 모래내 성당 이용현 베드로 신부님이 쓰신 글이 내 눈에 들어왔습니다. 쉴 휴(休) 자를 설명하신 글이었습니다. 인간이 나무에 기대어 있는 형상의 글자인데, 신부님께서는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그리스도로 보이신다는 글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쉼이란 기도하는 모습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고통이 찾아오면 그 뜻을 찾고 십자가 옆에 머물지 않으며, 친구나 인터넷, 잠을 쉼으로 여기고 십자가를 피하려 한다고 설명하십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마태복음 16장 24절은 예전부터 읽고 또 알고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오늘 나는 이 말씀에서 월령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머릿속에 고통은 나쁜 것이고, 행복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러기에 고통이 찾아오면 그 안에서 주님의 뜻을 찾고 십자가 옆에 머물지 않고 십자가를 피하려 한다. 주님께서는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참 쉼을 찾기를 바라시는 것이다.>


우리는 책임과 고통을 마주하면 그것을 외면하려 하며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곤 합니다. 내게 주어진 의무, 내 십자가를 당당하게 마주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자연(自然)이고 도(道)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건도(乾道)의 한 자락인 나라는 존재는 천리(天理) 안에서 우주 만물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사주팔자 여덟 글자 네 개의 기둥은 언제 내가 발복 한 것인지, 언제 내가 고통에 직면할 것인지를 예언하고 예측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마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로또에 당첨되기를 기원한다거나, 내가 직면한 고통을 없애버려 달라고 간구하는 기도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사주팔자 여덟 글자에서 우리는 삶을 직면하고 삶 속에서 참 쉼을 찾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곁에 있음을 알려주는 공부, 내가 마주해야 할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공부가 명리학입니다. 월지라는 환경,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 우주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고, 모든 진리 역시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월지에 맞게 살기 위한 기도는 내가 짊어진 십자가를 마주하는 일입니다.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사람만이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월지를 따르는 삶, 내가 나를 위로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창광 선생님의 말씀은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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