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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B Oct 22. 2023

(마감을 위한 마감) 운명이 즐겁다

마감을 위한 마감

나는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훌륭하신 선생님들을 뵙고 말씀을 청하고, 배움을 얻는 시간이 허락되었으니요. 가방을 싸고, 기차를 타고, 길을 걷는 일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여름이 덥지 않았고, 겨울이 춥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곰곰 생각해 보니 내가 이 공부를 사랑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왜 이 공부를 사랑하는지를 곰곰 생각해 보니 늘 새롭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공부는 새롭습니다. 이 세상 모든 개체가 다른 것처럼, 이 공부에서 이야기하는 사주팔자는 모두 다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색깔들이 몇 개인지 헤아릴 수 없듯이, 이 공부가 이야기하는 관계성의 케이스를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화풍정 선생님께서 '이제는 창조하는 명리를 해보십시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 말이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이론을 익히기도 힘든데 무슨 창조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런데 이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습니다. 음양오행의 기본적 체계와 생극제화, 형충회합파해의 개념, 육신과 격국, 십이운성과 십이신살 등 중요한 맥락을 익혔다면, 그다음은 창조의 명리입니다. 


내가 만난 선생님들이 각자의 개성으로 명리를 다루는 모습에서 예술가와 같은 면모를 볼 수 있었습니다. 명리 공부는 뛰어난 관찰력과 분석력을 바탕으로 창조를 도모해 냅니다. 결국 '나'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여 나만의 세계관과 윤리관, 철학을 다져나가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학의 정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마르고 닳도록 그 책을 읽었고, 누군가는 마르고 닳도록 그 책을 베꼈습니다. 누군가는 책꽂이에 장식처럼 꽂아 두었고, 누군가는 냄비 받침으로 쓰고 있습니다. 같은 책이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집니다. 


기본적인 개념을 익힌 사람이라면 사주를 풀어내는 방법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은 사주를 두고 그것에 대한 해석은 역학자의 수만큼 다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똑같은 사람의 사주라도 그것을 해석하고 상담하는 사람의 세계관, 윤리관, 철학에 따라 풀이가 달라진다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한동안 나는 이 공부에 자신감을 잃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만의 철학과 세계관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년월일시는 자연의 코드임과 동시에 사람이 만들어 놓은 글자에 불과합니다. 글자를 단순한 원리와 원칙으로 해석하는 것은 인공지능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사주팔자의 글자는 역학자의 철학이라는 필터를 거쳐 해석되고 상담되고 활용됩니다. 




내가 만난 선생님들은 작게는 20년부터 많게는 50년 이상 이 공부와 함께 하신 분들입니다. 그분들의 말은 각자의 윤리관과 철학, 세계관의 필터를 통과하여 나에게 전해졌습니다. 선생님들을 가까이에서 뵙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양한 시선과 시각, 세세한 감정선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좋다'라고 말하는 부나 권력을 좇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단지 이 공부가 좋아서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해오신 분들이었습니다. 이 공부는 자연에 대한 공부이고, 사람에 대한 공부이고, 관계에 대한 공부이고, 스스로에 대한 공부입니다. 


오랜 세월 자신이 궁리하는 것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부족한 자료를 모으고, 밤을 새워 토론하고, 공부하고, 강의하고, 상담하는 세월을 사신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나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진심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에 매진하고 몰입하는 삶을 선택한 사람만이 전할 수 있는 감동이었습니다. 


아직 인터뷰는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브런치 공모전 마감일에 맞춰서 그동안의 인터뷰를 정리해야겠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숨 가쁘게 글들을 업로드했습니다. 선생님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기쁘게 공부하고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어떠한 운명의 길을 걸어오셨나요. 또 어떠한 운명의 길을 걸어가실까요. 과거의 길이 어떠하였든 잘못된 것이 없습니다. 잘하셨어요. 앞으로의 길이 어떠하든 잘하실 수 있습니다. 스스로를 응원하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이 공부는 알면 알수록 매력적입니다. 


공부를 위해 공부를 합니다. 일단은 마감을 위해 마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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