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다시 일상에서
스스로에게 느끼는 지긋지긋한 연민.
나의 인생은 드라마처럼 무엇인가 딱 펼쳐지거나 누군가 딱 나타나거나 하지는 않았다.
시험에 떨어지고 간호대를 가지 못 했으니 나는 무엇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했다.
어렸을 때는 그냥 보면 합격하고 그냥 하면 통과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나의 무엇이 나를 이토록 능력 없는 자로 살아가게 방치했을까..?
내가 할 줄 아는 것이 이렇게 없는 사람이었던 것일까..?
그냥 하라는데... 다 들 행동하라는데...
고집을 꺾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생각해서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면 돈을 벌 수 있다는데
왜 나는 이렇게 잘하지도 않는 글을 쓰고 또 쓰며 버티고 있는 걸까?
혼자 이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고 싶다 영화를 만들고 싶다
상상하며 혼자만의 세계를 계속 가져가고 있는 걸까...
현실은 돈을 벌어서 애를 키워야 하는 상황인데...
고개를 들면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더 작아지는 내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생각만 하고 계획만 세우고 꿈만 꾸며 시간을 죽이는 내 모습이 꼴 보기 싫은 날에는
또 어지러운 생각으로 맥주만 들이키며 악의 순환고리를 끈 지 못하고 반복하며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그런 다음 날에는 오는 전화도 받지 않고
멍하게 노트를 써 내려가 본다.
나는 무엇을 하였는지..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다 보면 결혼 출산... 그 이후에는 아무리 쥐어짜도 적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산적인 것은 포기하자..
그럼 소비한 것이라도 적어보자..
날 위한 소비는 뭐가 있나... 이게 사람 사는 건가...
편의점 맥주 4캔을 사면서도 눈치를 봐야 하는 나의 삶을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눈치 보지 말고 나의 응당한 대가를 요구하려고 해도
네가 한 것이 뭔데
네가 하는 일은 가정주부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네가 먹은 건 네가 쓴 것이 아니냐
네가 사는 이 집은 네가 소비한 것이 아니냐
운동하고 옷 사고 해라 내가 하지 말라고 했냐
등등 잡소리가 끈이질 않고
운동이라도 끌어서 30만 원이라도 더 나오면
카드값이 왜 이러냐
애 학원 그만 보내라
돈이 너무 많이 든다
백화점에서 밥 사 먹지 마라
등등 팬 위에 멸치처럼 득실득실 볶이게 되는
나의 삶.
아파서 일주일에 하루라도 아줌마라도 부른 달에는
네가 하는 게 뭐가 있냐
밥을 하냐 빨래를 하냐
내 밥을 안 하면 애 밥이라도 해야지
다 사 처 먹이고
네가 어디 가서 어미라고 할 수 있냐
애도 안 보고 학원 뺑뺑이나 처 돌리면서
네가 뭔 애를 키워.
맨날 택시 타고 처 다니면서 버스 타고 다녀 지하철을 타든...
너무 지겨운 몇 년째 바뀌지 않는 레퍼토리....
이것이 39살 나의 삶...
이 모든 것을 선택한 범인은 바로 나...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