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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운 Oct 23. 2023

39, 아내의 역할

당신이 말하는 그 역할

오늘은 아내의 역할이라고 말하던 남편과 시댁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집안일

집안일이라.... 어디서부터 일까..?

결혼하기 전에 나는 집안일을 정말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내가 책임지려고 했다.

남편이 바깥일을 하면 집안일은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싱글 시절 출근길에 들고나가는 음식물 쓰레기봉투가 싫었던 나는 신혼 때부터

모든 집안일은 남편에게 함께하자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치약 중간 짜기, 옷 뒤집어 벗기, 양말 뒤집어 벗기, 변기 사용법 등등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더러우면 한 번 더 청소하고 내가 한 번 손을 뻗어 정리했다.

나는 남편이 그걸 알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10년 후 내가 들은 말 중에 가장 충격적인 말들 중 하나가

"네가 밥을 하니 빨래를 하니 네가 뭘 하는데??

 아~~ 애 라이드? 학원 뺑뺑이 돌리고 커피 사 처먹는 거?"


그쯤엔 아마도 내가 2년 정도 사 먹기도 하고 외식도 하고

반찬도 가끔 사기도 했다.

외식할 때 (아이가 남긴 밥이 아니라) 내 밥도 따로 주문하기도 하고

일 년에 서너 번 친구들을 만나러 외출도 하고

내 몸이 아프면 종일 자기도 하고

엉망인 집도 외면하기도 하고 분리수거도 쌓아두고

가끔은 그에게 버리라고 하던 그런 상태가 지난 후였다.


남편 입장에서 보면 거의 2년 동안 아내의 역할도 엄마의 역할도 며느리 역할도

하지 않는 사람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내야 했다.

아이 앞에서 매일 죽음을 말하고 싶진 않으니까.

아이에게 가장 행복한 것은 엄마의 웃는 얼굴이라는 것을 아니까.


남편은 몰랐던 것 같다.

부부상담을 받으러 가서 나의 장점이 겨우 '돈을 안 쓰는 것'이라고 적었을 때

당신이라는 사람은 나의 배우자도 뭣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을.


와스스 무너져버렸다.

가정을 위해 돈을 벌어오는 사람을 대접해 주기 위해

매일 새벽 5시부터 매일 새 밥과 국과 반찬을 만들고,

4층을 오르락거리며 장보기를 하고 분리쓰레기를 버리고,

매일 주스를 내리기 위해 뽀득뽀득 손톱이 뜰 때까지 야채를 닦고,

족저근막염이 걸리게 좁은 집을 오가며 소독하고 쓸고 닦고 털고,

평생 외투와 니트 이부자리 관리를 못 받고 자란 남편의 등드름과 예민한 피부를 위해

이불과 베개커버를 관리하고 옷들은 관리하고,

통풍을 완화하기 위해 좋다는 식품을 친정엄마까지 동원해서 공수해서 먹이고,

아무거나 먹여서 건강하지 못했던 몸을 살리기 위해 건강식을 만들고,

한 푼이라도 빨리 모으기 위해 몇 년간 커피는커녕 친구도 안 만났던,

내가 먹고 싶은 것은 항상 뒷전이고 아이에게 그에게 양보했던,

자는 것도 싸는 것도 아이 먼저 남편 먼저 그 후가 나의 차례라서

밤새 쪽잠을 자고 하루를 마무리하고 볼일을 보며 나의 모든 욕구를 조절하며 살았던,

나의 소소하고 열정 넘치는 제2의 인생은 처참하게 박살 나버렸다.

나의 10년은 아직도 끝인 듯 끝이 아닌 듯 르고 있다.




딸 같은 며느리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나에게 며느리의 역할을 운운하며 이야기를 하고

나를 몰아세우고 남편은 방치하고의 연속이다.

예전에는 그 수모를 그 앞에서 터뜨리는 것조차 수치스러워 홀로 많이도 울었다.

멋있게 받아치고 싶지만 그녀가 입을 놀릴 때마다 머리카락이 곤두선다.

10년이 되어도 입술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리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이제는 그녀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두서없는 울음 섞인 말들을 내뱉는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당황한 나머지 그녀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한 바보 같은 나에게 분통이 터진다.

왜 이상한 생각이 들었을 때

나는 이야기를 멈추고 생각을 못 했을까

아직도 나는 이렇게 밖에 대처를 못 할까 자괴감으로 밑바닥까지 들어차는 감정을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녀의 말 끝에는 항상 딸 같이 지내고 싶다는 말이 붙는다.

딸 같이?? 난 우리 엄마에게 안 하던 희생을 강요당했고 그걸 해 주었다.

이 남자가 좋아하니까 이 남자가 원하니까.

그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이었나.

시부모가 원하는 딸 같은 며느리는

시키는 데로 부려먹는 종 같은 존재를 원하는 것이었다.

나의 아들 밥하고 욕구받이하고 애 낳고 애 키우고 돈 안 쓰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시부모 시중들고 돈 주고 당신들이 다 맞다 찬양하고

시키는 데로 군말 없이 사는 공짜 종년. 딱 그거인 거면서.


"너랑 딸 같이 지내고 싶은데 나는. 네가 아직도 꽁하게 있으니까. 니 성격이 꽁해서."

라고 말한다. 본인 아들 앞이라서... 아주 다정하게... 마치 내가 나쁜 짓을 했지만 내가 사과한 버전으로...


똑똑한 주변인들의 지혜롭고 애교 있고 말로만 하는 행동을 보면서 그들의 방식이 별로라고

진심을 담아 말없이 묵묵히 내 일은 하는 것이 진정이다 오만을 떨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처음부터 내가 달랐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것도 달라질 것이 없다고 해도 내 모습이 지금과 같지 않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나는 지금 피폐해졌다.


엄마라는 이름의 희생

나는 모성애가 없다.

그걸 알기에 지독하게 그걸 해내려고 노력했다.

너무 피해를 주기가 싫었다.

능력이 없는 내가 낳은 것부터가 아마도 피해였을까.

나의 처절했던 노력은 9년 차에 산산조각이 났다.

아이식사도 예전처럼 내 손으로 하지 않았고

더 이상 싸움을 피하지 않고 가감 없이 아이 앞에서 남편과 싸웠다.

아이에게 독설과 분냄을 반복했다.

그럴수록 내가 공들인 9년의 탑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멈춰지지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한 미움은 더 강렬하게 분노가 되었다.

슬프고 애통했다. 이 부분은 타협할 수 없이 달라져야 하는 부분이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고 사죄해야 했다.

그렇게 10개월쯤... 그중의 한 달은 맹렬하게......


아이에게 모든 상황을 담담히 말했다.

너무나 어린아이에게.. 큰 피해를 주었다.

앞으로 그 아이가 살아가는 모든 생각의 잠재의식 속에

내가 구정물을 뿌린 것에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 사과했다.

너무 슬펐다. 절망스럽고 애통했다.


부모의 역할을 못 한 나는 낭떠러지 앞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

죽느냐 사느냐... 나는 살아서 아이를 지켜야겠다.

저런 사람들한테 맡길 수는 없었다.

자기들이 필요할 때, 자기들 시간 될 때, 자기들이 충전하고 싶을 때만 찾는 저런 사람들.

살기 위해 나를 선택했다. 나의 마음을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이 말하는 아무것도 안 하는 년이 되어 있었다.

결국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수 만 번 되뇌고 수 만 번 힘을 내도

겨우 1mm의 진전밖에 못하는 나에게 너무 화가 났다.

왜 이렇게 에너지도 없고 부지런하지도 못한 거야 좌절을 하고.

안 돼 내가 이겨내서 이 벽을 뚫어야 해. 외쳤다.

겨우 일어서면 집 채만 한 파도가 때려쳐왔다..

네가 바뀌어야지.

네가 긍정적으로 해야지.

집부터 치워야지.

빨래도 해야지.

설거지도 바로 해야지.

돈을 벌어야지.

화내면 안 되지.

자식을 위해 구정물이라도 마셔야지.

네가 가정을 바꾸려면 상대방의 요구를 큰걸 들어줘야지.

실수하지 말아야지.

술 취하지 말아야지.

약점 잡힐 일을 누구도 안 좋게 보는데 하지 말아야지.

절제해야지.

너는 엄마니까 그렇게 해야지.

너는 딸 키우니까 정신 차려야지.

.............

나도 안다.

나도 알고 있다.

나도 느리지만 변하고 있다. 너무 느려서 제자리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일어설 때마다 때려치는 파도를 맞서서 다시 일어선다.

이런 하찮은 나도 부모라서..

딱 하나.. 엄마가 돼서 피해를 더 이상 줄 수가 없어서.

걸림돌이 될 수 없어서.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나를 다그친다.

행동을 하라고 나가야 한다고.

살아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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