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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운 Oct 19. 2023

39, 가출

갈 곳도 만날 이도 없는 순간.

이게 무슨 중2병인가 싶은 생각들이 마구마구

들기 시작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나.

나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 통장엔 얼마가 있나.

내 이름 석 자가 소유한 것이 있나.

내가 지금 생산력이 있는 걸까.

 

거울을 보았다.

뱃살도 늘어지고

잔주름도 가득하고

기미도 생겼었구나..

허벅지 셀룰라이트도 가득하고..

 

애 낳고 찐 살이 안 빠져요라고 하기엔 너무 10년 동안 살이 안 빠지고 있다.

더 찌고 있는 것이 맞다 하겠다

도대체 1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렇게 더 있다가는

나의 40살이 계속 이럴 것 같았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며느리로 살다가

나의 청년 시절을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저물어 가는 나의 청년기를

그냥 살찐 아줌마로 마무리한다는 생각만으로

너무 절망이었다.

 

쌓인 빨래더미도 쌓인 설거지도 어지러운 방도

애도 남편도 뒤로하고

맞지도 않은 니트 원피스를 입고 수첩 하나를 들고

집을 박차고 나왔다.

 

나와서 카페를 가는 내내

귓가를 맴도는

열아홉 살 헤어지는 순간

안아주시던 은사님의 목소리.

 

우리 K는 하늘하늘한 가을 코스모스 같아.

우리 K는 코스모스처럼 이쁘고 아름답게 살 거야..

 

하얀 코스모스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해 주시던

은사님의 눈에

지금의 나는 어떤 꽃으로 보일까.

.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손으로 감쌌다.

굵어진 마디와 굵은 주름으로 바뀐 나의 손이 보였다.

후하고 부는 입김으로

커피를 넘기며 수첩을 펼쳤다.

.

당장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물음표 아래로

체크 리스트의 네모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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