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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운 Apr 18. 2024

선생님의 말씀

엄마의 자존감은 아이의 자존감

아이 태어나고 여러 가지 환경이 자존감을 키우기 좋은 가족구성원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불안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육아서를 읽으며 지냈다.

다양한 곳에 상담도 받으러 다녔고 강의도 들으러 다녔다.

정기적으로 많은 곳들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며 훈련을 받았다.

내 아이를 나처럼 살아가게 키울까 봐 너무 많이 걱정을 했고 아직도 하고 있다.


나는 자존감이 낮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래서 내가 받은 상처를 생각해 보며 그것들을 절대 아이에게 행하지 않았다.

나는 둘째였고 무엇이든 뛰어나야 부모에게 인정받는 거라고 느끼고 생활했다.

나를 증명하며 모든 순간을 보냈다. 부지런해야 했고 내 능력치에서 잘 해내야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험이 틀리는 날이면 다 틀린 아이처럼 엎드려 울면서 집에를 가질 않으려고 했다.


내 아이에게 늘 사랑을 표현했고 너의 마음은 소중한 것이다라고 가르쳤다.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거나 시험결과로 아이에게 속상함을 표현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일 년 반동안 내가 행한 의식과 무의식의 어떤 행동들과 반응들이 쌓여서 

내 아이는 눈빛이 달라졌고 웃음도 달라졌다.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도와주거나 호의를 베푸는 것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 위치를 확인하려 했다.

타인의 평가에 세밀하게 신경을 썼고 그날의 기분을 좌지우지당했다.


타인에게서 아닌 스스로를 채울 수 아는 사람이라...

나는 나를 소중히 알뜰살뜰하게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타인을 그렇게 사랑하지도 않는다.

가끔 나에게 마음을 주고 나에게서 실망하고 마음을 거두는 것처럼 타인에게도 그랬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 뭔지 나는 모른다.


지금은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내가 여태 받은 사랑 중에 내가 느끼기에 좋았던 사랑을 흉내 내어보는 중인데

말하는 것이나 표정이 너무 오래된 일들이라 잘 표현되지 않는다.


나도 한다고 하는데.....

                                (내가 제일 싫어했던 부모님의 말을 내 입으로 하다니)


나의 모자람이 내 아이에게 결핍으로 나타나니 마음이 바닥에서부터 아리다.

많은 기관을 다니며 아이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지게 키우기 위해 공부도 하고 시행도 했다.

족히 천만 원이 넘는 투자였다.

그만큼 간절했다. 

내가 남겨줄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튼튼한 몸과 정신, 이 둘은 노력으로 왠지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공부하고 실천하면 되는 일이니까. 

내가 노력하면 내가 주양육자이니까. 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참 쉽지가 않았다. 

지혜가 부족했다. 결국 나 자신이 너무 부족한 상태였다.

쥐어짜 내어서 이제 짤 것이 없는데....

이제 정말 힘을 내서 신중하게 말하고 눈 맞추고 웃어주고 생활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몇 년간의 쌓은 나의 어설픈 사랑들이,

몇 번의 실수와 나하나 건사하기 정신없던 2년의 생활 때문에 

한꺼번에 사라진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들께서는 "아직 늦지 않다. 이제 시작이다."

원래 그렇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에 충분히 회복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무엇보다 이제는 내가 느낀다..

앞으로 20년은 내가 바짝 정신을 차려야

이 아이의 마음 밭이 탄탄해지겠구나 느끼고 있다.


결혼 생활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내 의지만큼 쉽지가 않다.

매번 다짐을 하더라도 한 시간 뒤에 던져진 문제로 겨우 찾은 평정심에서 허우적거리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매일이 쌓여가고 그만큼 나의 자존감도 낮아진다.

그만큼 실수도 쌓여가고 시간은 흘러간다.

수많은 조언들 중에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조언을 실행해 보기도 하지만 부족한 끈기와 능력은 다시 죄절로 나에게 돌아온다.

그저 긴 터널을 지나는구나. 편안하게 누워 기다릴 수도 없이 동동 거리며 매일을  수습하며 살아가다 보면

겨우 끌어내어 실행한 일들이 한걸음 뒤에 떨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나의 첫사랑을 책임지고 싶어서 인 것 같다.

내가 살아나서 생기가 돌고 농담을 하며 깔깔 웃어야 

나의 생명 같은 아이도 그렇게 살아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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