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도태되고 있다.

도태되고 있는 우리에게 보내는 위안의 편지

by 차현

나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이 낯설고 어렵다. 시대 변화의 속도는 내가 따라가기엔 너무 빠르다. 이런 시대에 나는 이미 도태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현대사회는 쉼 없이 변하고 있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뒤쳐지고, 그 속도의 흐름에 밀려난 존재는 조용히 사라진다.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이 변화에 적응하느냐’가 개인의 역량이나 기업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렸다.


‘코닥(Kodak)’이라고 하는 회사가 있다. 한때 필름시장을 지배했지만,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등장과 함께 내리막을 걷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디지털카메라를 가장 먼저 개발한 곳 역시 코닥이었다.

디지털카메라 시대의 등장에 경영진은 기존의 시장을 지키는 방향을 선택했고, 결국 새로운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카메라 시장에서 도태되었다.


우리는 사회의 변화에 뒤처질 때 도태 되었다고 말한다. 도태는 두렵다. 혼자라는 외로움, 발전이 없다는 평가, 그리고 경쟁에서 밀렸다는 좌절감 등.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는 자기 계발과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애쓰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도태되지 않기 위한 발버둥’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를 도태의 불안감이라는 감옥이 가두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없이 많은 순간, 변화의 흐름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해 왔다.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불안감과 초조함은 우리에게서 선택의 자유를 조금씩 빼앗아갔다. 그리고 적응보다 선택의 자유를 택한 결과는 부적응자로 낙인찍히거나, 적응에 순응한 사람들의 성공 찬가 속에서 비교의 대상이 돼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마 그 삶은 ‘경쟁에 뒤처진 사람’이라는 평가와, ‘공감받지 못하는 시선’을 던져 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의 적응이 언제까지 옳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기에 우리는 적응보다는 선택을 통해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적응을 강요하는 사회는 개성을 퇴색시키고, 결국 ‘평범함’이라는 이름 아래 모든 것을 하나로 덧칠한다. 그러나 사회는 하나의 색으로 발전할 수 없다. 다양한 색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는 앙리 마티스의 그림처럼, 다양성이 조화를 이룰 때, 더 많은 사고의 확장이 일어나고 우리 사회 역시 화려하게 발전한다.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2019년 ‘다양한 배경과 사고방식을 가진 연구자가 포함된 조직이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혁신성과 문제 해결 능력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즉,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고 협력할 때, 그 집단은 더 창의적이고 강력한 지성을 발휘할 수 있다’


대학 시절, 나는 조별 과제가 가장 힘들었다. 협업을 위해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은 어떠한 해결책을 가져와도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다 보면 방향을 잃었고, 일부 의견만 반영하면 참여 의욕이 떨어졌다. 그러다 보면 결국 혼자 과제를 하고 있었고, 그 결과는 과정에서 겪은 힘듦을 보상하지 못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 문제의 단순했다.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했고, 한 가지 의견으로 적응을 강요하다 보니 다양한 의견을 과제에 담을 수 없었다.

‘이 수업에서 도태되고 싶지 않다’는 두려움과 초조함이 앞섰다. 만약 그때 ‘도태될까’ 하는 걱정보다 ‘어떻게 하면 과제를 더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면 그 과제는 더 즐겁고 의미 있는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사회의 변화는 우리에서 선택을 요구한다. ‘이 변화에. 적응을 할 것인지’, ‘자신만의 길을 갈 것인지’

그 선택의 결과에 따라 우리는 ‘하나의 색’이 되거나, ‘다양한 색’을 가진 존재가 된다. 그러나 이 선택의 순간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스스로 선택하는 순간, 이미 ‘도태’라는 감옥을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각자의 색으로 세상을 물들이게 된다.

혹시 지금, 선택의 순간에 있다면 ‘도태’라는 감옥을 벗어나 당신만의 색으로 세상을 물들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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