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의 용기, 그리고 나
달리기 선수는 자신의 뒤를 돌아볼 틈이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인생의 경주자가 아니니까. 이 글을 읽는 순간이라도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면 더 말리 갈 수 있지 않을까?
더운 여름이 지났다. 특히 올해 여름은 너무 더웠다. ‘가을이 올까?’ 의심했지만 어느새 가을이다. 출근길에 만나는 단풍을 바라보며 ‘또 일 년이 다 지나간다’라는 말이 실감 났다. 여름의 녹음을 품고 있던 나뭇잎이 어느새 갈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내 인생의 여름은 어떠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서툴고 급하고 여유 없이 앞만 보며 달려왔다. ‘난 참 바보처럼 살았구먼,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더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지금보다 나은 생활과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꼬리를 문다. 노을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내린 결론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우리는 앞만 바라보며 쉼 없이 달려간다. 변화의 속도는 우리에게 뒤돌아볼 틈은 주지 않는다. 빠른 속도에 적응하고 달리다 보면 내가 세운 목표와 다른 길 위에 서 있음을 깨닫는다. 잘못된 방향임을 알면서도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는 순간, 함께 경쟁하던 사람들에게서 도태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결국 우리는 ‘적응’을 선택한다.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의 색으로 물들어 간다. 이렇게 불안감과 적응은 우리에게서 다시 노선을 설정할 수 있는 여유를 빼앗아 간다.
우리는 탄생이라는 기회를 부여받았다. 그리고 그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많은 질문은 우리의 삶을 다양한 색으로 채울 수 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고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재정비할 여유를 만들어 주는 건 어떨까?
‘멈추다’ 더 이상 하지 않는 것.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멈출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 용기는 시간의 낭비가 아닌 회복의 공간이 된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나는 잘 살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방향을 보고 서있는지, 또 어디로 나갈 것인지 돌아보는 시간. 인생은 단 한 번 뿐이므로, 자신의 인생은 타인의 시선과는 관계없이 스스로 정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은 타인일 뿐. ‘어떻게 잘 살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은 스스로 정의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인생이 던지는 질문의 답을 타인에게 찾는다. 그렇다면 그 답은 나의 것일까 타인의 것일까?
나를 타인에게 내어주는 방법은 간단하다. 타인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타인의 생각과 기대로 채워진다.
나 또한 그 공간을 늘 타인에게 내어 주었다. 타인의 평가가 두려웠고 그들의 시선에 나를 맞추기에 급급했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내 방향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 사소한 타협은 길 위에서 나를 밀어내고 있었고 결국 타인의 궤도에 올라타게 만들었다. 너무나 부끄럽고 허무했다. 결국 길 위에서 나를 밀어낸 건 타인도 아닌 나 자신이었다.
미국의 사회학자인 ‘찰스 호튼 쿨리’는 사회학 개념인 ‘거울자아’를 통해, 타인의 시선이 자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타인을 지나치게 의식할 경우, 자신의 자아가 흔들리고, 결국 ‘진짜 나’보다는 타인의 기대에 맞춰진 가짜 자아가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우 비판이나 비교에 과도하게 민감해져 자존감이 쉽게 무너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성찰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 하였다. 그 역시 삶을 돌아보고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한계를 인식하는 유일한 존재로 그 비극적 실험의 속에서 의미를 만들기 위한 숭고한 노력을 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숭고한 작업을 위해 스스로의 방향을 찾아가야 한다.
멈춤은 나에게 큰 선물을 안겨줬다. 멈춰서 돌아보니 생각보다 멀리 와 있었다. 생각보다 타인에게 공간도 많이 내어 주었다. 고민 끝에 ‘과감하게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의 선택은 많은 것을 바꿨고, 다시 나의 방향을 향해 나갈 수 있었다.
우리는 스스로를 모르고 살아간다. ‘나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난해하고 어려운 질문의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 일생을 고민해야 하는 숙제이자 사명이다. 우리는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전력질주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찾는 해답을 고민해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