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동백꽃과 고양이를 품고 있다

by 희재


순천 송광사를 들르기로 했다. 선암사는 여러 번 다녀왔음에도 송광사는 처음이었다. 웅장하고 큰 사찰보다는 수수한 느낌의 작은 사찰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커다란 사찰 송광사에서 기억에 남는 딱 한순간이 있었다. 내 눈앞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있을 때였다.



# 동백꽃과 고양이 이야기

산채비빔밥을 먹고 송광사로 향하는 길이었다. 고양이들이 도로에 늠름하게 앉아있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어떤 인간이 지나가려나, 하고 지켜보겠다는 듯이 말이다. 원체 성격이 용감한 녀석들인지, 사람을 지켜보다가 사람 손을 탄 것인지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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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613.jpg 너 좀 까칠해보인다? ㅎㅎ


나는 고양이가 앉아있을 때 등의 곡선을 좋아하는데,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부드럽게 떨어지는 느낌이 왠지 모르게 참 마음에 들었다. 고양이의 유려한 선에 빠져 한참을 바라보고 있었다.

맞은편에 폐점한 식당인지 사람이 찾지 않는 곳이 있었다. 녹슨 철 대문으로 삭막할 수 있었지만 빨간 동백꽃이 듬성듬성 피어있어 차가운 느낌은 덜했다. 동백꽃만 있었다면 무의미한 풍경이었을 거다. 하지만 그 순간은 정말 특별한 순간이 되었다.


동백나무 밑에서 새끼 고양이들이 놀고 있었다. 이럴 수가, 너무 예뻐! 동백꽃과 고양이가 어우러진 모습을 실제로 본 적이 없었기에 완전히 빠져들어 버렸다. 새끼 고양이들도 봄나들이를 나왔던 걸까? 꽃나무 밑을 떠나지 않고 오래도록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나도 그러했다. 그 녀석들이 종종 사라질 때까지 멀찌감치 쭈그리고 앉아 ‘예쁘다, 예쁘다, 정말 예쁘다‘고 혼잣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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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가 아니었어, 둘이었지

동백꽃만 피었다면 나는 그토록 오랫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을 거다. 듬성듬성 피어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끼 고양이만 있었다고 해도 발걸음을 오래 멈추지는 않았을 거다. 귀엽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을 붙잡아두기에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백꽃과 고양이가 절묘하게 만나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냈고,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그 순간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썼다. 추운 겨울을 보냈을 길고양이가 따사로운 봄을 만끽하는 귀중한 시간을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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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사람은 동백꽃과 고양이를 품고 있다

사람은 모두 동백꽃과 새끼 고양이를 품고 있다. 다만 두 존재가 아직 만나지 못한 채, 홀로 지내고 있기에 빛나지 않을 뿐이다. 나의 동백꽃과 새끼 고양이는 쓸모없을 뿐이라고, 무능할 뿐이라고 생각지 말기를 바란다. 언제든 그 순간은 찾아올 테니까. 당신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고양이가 동백꽃 밑에서 자유롭게 놀고 있을 것이다. 내가 우연히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들었던 그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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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9690.jpg 꼭꼭 숨어라, 고양이가 보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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