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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Nov 10. 2018

내게는 없고 그들에게는 있는 ‘그것’

# 사투리.  [ 경상남도 , 대한민국 ] 

“아니, 거기는 지난주에 갔다 와놓고 왜 또 가?”

“누나는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네요.”

“서울에 좀 붙어 있어라.”     


노세 노세 젊어 노세를 몸소 실천해보겠노라는 의지였는지, 여행에서 무언가를 찾아보겠노라는 대단한 각오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저 내가 속한 서울, 이 답답하고 복잡한 공간에서 해방되고 싶었다.      


대학생일 때는 학교, 집을 반복하는 일상이 재미없어서. 

회사원일 때는 회사, 집을 반복하며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

      

남다르지 않은 하루에 '특이함'을 선물해줄 수단으로 여행을 택했다. 서울에서 벗어나는 걸 인생 목표로 삼은 것처럼 쉬는 날엔 열차와 고속버스를 만났다.   


   

어느 날은 고려 시대 때 지어졌다는 사찰을 갔다. 어느 계절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마을에 들렀다. 그 시(市)가 좋아 몇 해를 계절마다 찾기도 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떠나기도 했고 누군가와 헤어지기 위해 떠나기도 했다. 



‘처음’은 좋았다. 모든 순간이 설렘이었으니까. 들뜬 숨결이 가득 찼던 자리에 '익숙함'이 비집고 들어오며 문제가 생겼다. 이미 무뎌져 버린 감각과 그 부산물인 귀찮음이 마음을 좀먹기 시작한 것이다. 국내 여행을 떠나는 횟수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내키지 않은, 딱 그뿐이었다.     

서글펐다. 새로운 거! 새로운 거! 새로운 거! 만을 외치는 나의 모습이.      

대한민국에선 이젠 어디를 가도 새롭지 않을 거라는, 오만함에 지쳐 가고 있을 때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는 그토록 찾아 헤매던 낯섦과 조우했다. 스러져 사려졌던 오감의 촉에 다시 생기가 돌았다. 그곳은 관광지가 아니었다. 우리나라 남쪽, 어느 동네의 평범한 카페였다. 관광객은 찾지 않는, 온전히 그 동네 사람들만을 위한 공간.      

당연히 서울에서 내려온 촌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완벽하게 혼자인, 외지인. 나를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두근거리는 것이었나. 흥분된 마음을 안고 2층 창가 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만의 리듬이 서서히 흘러들어온다.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뒤섞여 귀에 박힌다. 낯설다. 전혀 낯설 것 없는 장소인데 한없이 낯설다. 



억양 없는 나의 무미건조함이 괜한 불협화음을 낼까, 내 목소리는 잠시 묻어두기로 한다. 입술은 닫고 귀를 연다. 그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어느 테이블에선 소곤소곤 거리고, 어느 테이블에선 시끌시끌하다. 모든 것이 무질서하게 뒤섞인 듯 공기 중에 부유하고 있지만, 정말이지 아무래도 괜찮다. 나는, 정말이지, 아무래도 좋다.     


그들의 호흡을 만질 수 있다면, 붙잡아둘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녹아들 방법을 찾아볼 텐데 ‘타지인’ 딱지에 금세 포기한다. 그저 흘러 가는 대로 두기로 하고. 저들 중 누군가는 타인이 호흡처럼 뱉어낸 단어를 삼키고, 자기만의 색을 입혀 다시 내놓을 테니.      


나는 그저 그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는, 나의 세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모든 존재를 느끼면 되는 것이다. 무뎌짐에 아파했던 마음을 보듬어주면 되는 것이다.       

네모난 공간에 앉아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쏟아내고 간다. 본인에게 중요한 문제도, 시시콜콜한 잡담도, 연애 고민도. 구분 없이 모두 쏟아내고 간다.      


공간은 사람들의 사연을 먹고 살아간다. 사람이 달라지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제 왔던 사람이 오늘 다시 올 수도 있고, 오지 않을 수도 있고, 함께 오는 사람이 바뀔 수도 있고,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어제를 살다간 사연이 부활하는 일은 없다. 매일 매시간이 새로움으로 가득가득 채워진다.            


처음 보는 사람의 입을 통해 나는 이제야 깨달았던 거다. 

공간의 평범함에 가려져 보지 못했던, 낯선 목소리가 그토록 내가 찾아 헤매던 해답일 줄이야.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직도 그들이 주는 낯섦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나의 무미건조함에 비하면 그들의 언어는 살아 춤추는 것 같다. 나는 그 생동감이 좋다. 익숙하지 않은 만큼 설레기 마련이니까. 정말이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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