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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가 프리만 Jul 20. 2021

다시 글을 쓸 용기


17개월 만에 다시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코로나와 함께 날아간 꿈


브런치를 시작한 계기는 지난해 1월부터 시작된 6개월간의 육아휴직이었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며 설명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육아휴직 기간을 보내며 아내와 딸과 함께 한 에피소드들을 글로 남기겠습니다."


그렇게 출국 날이 다가오기 전에 두 개의 글을 썼다. 일종의 베타테스트 글이었다. 세 번째 글부터 본격적인 내용을 다루려 했다. 왜 육아휴직을 바르셀로나에서 보내려 하는가. 어떻게 준비했는가. 이런 글들로 시작해 현지에서 정착 과정을 쓸 계획이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졌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서울이 아닌 바르셀로나에서 걸리자는 무모한 생각까지 했다. 무조건 출국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출국을 1주일 앞두고 우리 가족의 바르셀로나행 비행기는 아예 사라졌다. 무모한 생각은 사라졌다. 꿈도 함게 사라졌다.


그렇게 17개월이 지났다. 딸은 부쩍 커서 얼마전에 키 1미터를 돌파했다. 코로나19는 여전하지만 화목한 우리 가족도 여전하다. 하지만 술을 한 잔 하면 아내에게 한 번씩 실없는 소리를 한다.


"바르셀로나에 다녀온 우리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2017년의 어느날 찍었던 지하철 광고.


다시 글을 쓸 용기


바르셀로나행이 무산된 뒤로 이곳 브런치 페이지를 쳐다 보지도 못했다. 바르셀로나에서 아침 마다 러닝을 할 코스를 짜놨었고, 아침마다 들러 에스프레소를 마실 카페도 정해놨었으며, 조기 축구회까지 알아놨었다. 아내와 딸의 손을 잡고 성가족성당을 볼 날을 고대하고 있었다. 


와이너리를 방문하는 걸 딸이 좋아할까를 고민했었다. 까탈루냐 쿠킹 클래스는 시내에 있는 걸 갈지, 아니면 교외에 있는 것을 갈 지 끝까지 정하지 못했었다. 딸이 방문할 현지 짐보리와 주고 받은 메일은 여전히 내 중요편지함에 들어있다.


바르셀로나에서의 생생한 기록을 남겼을지도 모르는, 하지만 텅 빈 채 베타테스트 글 두 개만 남은 이 페이지를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2020년 3월. 바르셀로나행이 좌절된 후 우리 가족은 그 짐을 그대로 들고 제주도로 건너갔다. 짜증과 분노. 제주도에서 한 달을 보내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했다. 텅 비어버린 마음의 곳간을 제주도의 추억으로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었다.


2021년 7월. 여름휴가로 제주도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사실 지난해 한 달을 보낸 후 제주도에 대한 별 미련은 없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제주도에 갈 기회가 생긴 것. 2020년의 고마운 기억이 다시 떠오르며 설레기 시작했다. 팬데믹 이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아름다웠던 사계리.

그런데 코로나19 4차 유행이 다가오며 이 계획이 흔들렸다. 데자뷔인가. 지긋지긋한 코로나19. 트라우마가 다시 스멀스멀 기어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2020년의 짜증과 분노가 백신으로 작용한 것일까. 실소 정도만 나왔다.

  

짜증과 분노가 아닌 실소가 나오는 상황 속에서 텅 빈 브런치 페이지가 떠올랐다. 여전한 두 개의 베타테스트 글. 그리고 존재하지 않지만, 바르셀로나에서 작성했었을 가상의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길 진짜 내 삶으로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글을 쓸 용기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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