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진 Oct 15. 2024

2: 잃고 싶은 마음

세상살이, 그 이야기들


마음이 아픈 것 또한 감기와 같아서, 병원에 가서 똑같이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받고 푹 쉬면 된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아파 병원에 가는 것을 굳이 티 내고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게 현실이다. ‘날 이상하게 볼까 봐’가 그 이유다. 나의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는 뭔가 치부 같은 것이었다. 스스로 뭐 하나 켕기지 않고 당당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냄으로써 부끄럽고 주눅이 들어버린다.


처음으로 병원을 가야겠다고 느낀 건, 아들에게 대하는 내 모습의 심각성을 느꼈을 때였다. 나의 작은 아들은 내가 잔소리를 하고 혼을 내는데 구실이 있었다. ‘네가 밖에서 이렇게 행동하지 않고 잘 자랐으면 해서’, 결국 난 나의 아들을 화풀이 대상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평생을 이렇게 살 수 없단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병원을 방문한 때는 이혼을 하고 나서였다. 그 인간이 없어서 힘든 건 아니었다. 내게 이혼은 오히려 홀가분하고 덫을 벗어난 기분을 들게 했다. 난 이혼하기 전의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리고 남의 인생을 망가트려 놓고 장본인은 당당하게 살아가는 꼴을 보는 것 또한 힘들었다. 수도 없이 한 거짓말, 금전적인 문제, 내가 본인을 신뢰한다는 무기로 나를 속이고 구덩이로 빠뜨린 것 등 셀 수 없이 많은 고통 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 뻔뻔한 태도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것도 내 속은 열불이 나다 못해 전부 새카맣게 타버려 불씨하나 남아있지 않다.


처음 병원에 가서 참 많이도 울었다. 누구에게도 내 마음 하나 기대지 않았기에, 그냥 그렇게 병신처럼 살아온 1년 또한 치부라고 느꼈다. 그렇게 꽁꽁 감춰온 내 감정을 눈물로 풀어냈다. 정말 많이 시원했다. 가슴속 응어리진 것들이 잔잔하게 깔리는 느낌이었다.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냥 잠잠해지는 것일 뿐.


약의 도움을 받고, 매주, 매달 진료를 받으며 선생님을 뵙고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마음이 편해졌다. 근데 나는 몰랐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한 번에 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물론 고지해 주시긴 하셨지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지금 괜찮으니 약을 먹지 않아도 잘할 것이라는 오만한 자신감이 나를 또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약은 그저 하나의 수단일 뿐 결국 이겨내는 건 내 마음먹기라는 것을.


그렇게 약을 끊고 또 약을 찾고 끊고 반복하다 보니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감정 조절 하나 스스로 못하는 망나니 같은 인간으로. 그래도 바쁘게 살면서 내 마음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또 괜찮아지는가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나를 놓아버리면 끝이다. 약은 그냥 나 스스로를 제대로 잡을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었고, 나는 손에 힘을 꽉 쥐고 견뎌야 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고 나는 그저 그게 조금 부족했던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람은 참 약하고 힘이 없기에, 힘든 고난과 역경 속에서 언제든 무너져 내리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당연한 것이다. 죽을 만큼 견디어 살아남아도 후유증이라는 게 또 찾아올 수도 있는 거고. 그러니 힘들면 도움을 받아도 된다. 약이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을 들어줄 사람을 찾는 것도 좋겠다. 너무 애쓰지 말자. 조금만 애쓰자. 그리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기 위해, 현명하게 살아보자.

작가의 이전글 1: 싸울 수밖에 없는 관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