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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진 Oct 16. 2024

3: 모두에게 사랑받을 수 없음을

세상살이, 그 이야기들


사람에게 미움받는 게 힘들다던 글에 예수도 안티가 칠천만이라는 댓글이 달린 게 생각난다. 그냥 웃자고 올린 글이 여기저기 떠돌게 된 것인데, 나는 그걸 보고 예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미움받는 건 누구나 두렵고 싫을 것이다. 그런 미움을 받았을 때 사람들은 계속 마음에 두고두고 생각하느냐, 너는 그래라 하는 마음으로 훌훌 털어 버리느냐로 나뉘게 되는데 나는 전자에 속한다. 나는 미움받을 용기 따위는 키우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도대체 미움받을 용기는 왜 내야 하는 걸까? 나는 도서 <미움받을 용기>도 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목이 마음에 안 들어서. 책을 좋아한다고 해서 많은 양의 책을 읽어야 하고, 책이 우리에게 지식을 준다고 해서 모든 책을 읽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읽고 싶지 않은 책은 읽지 않는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듯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다를 테니까. 여기서 다시, 미움받을 용기는 왜 필요한 걸까? 내가 밉다면 혼자 뒤에서 미워하지, 왜 굳이 내 앞에서 티 내면서 서로 기분 나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걸까.


애 딸린 이혼녀라고 결혼을 반대하는 연애를 했던 적이 있다. 드라마에서만 보면 인격모독을 일삼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하나도 없는 그런 집안을 살면서 언제 경험해 보랴. 내가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게, 오히려 내 인생을 구한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더랬다. ‘거기서 그런 말 듣지 말고 나도 한마디 내뱉고 그냥 나올 걸 그랬어.‘라는 내 말에 ‘거기서 너의 예의 바른 품행을 지켜, 너는 그 사람들과 다르다는 걸 증명한 셈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라고 대답해 주었다. 사람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적어도 나는 타인에게 의도적으로 상처 주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스스로를 성장시켰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면 억울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었다. 거기서 그런 얘기를 듣고 있는 내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 남자라면, 결혼해서도 변함없을 테니까.


언제부턴가 나이를 먹으면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모두가 날 사랑할 수 없듯, 나도 모두를 사랑할 수 없다고. 나도 누군가가 미울 때가 있듯이 다른 사람도 다 똑같다. 완전한 인간은 없으니, 내가 99를 잘해도 1 하나만 보는 사람도 꼭 존재한다. 때문에 난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만 나도 아낌없이 사랑하면 된다.


늘 생각하고 하는 말이지만, 뭐든 내가 힘들 만큼 애쓸 필요는 없다. 우선순위의 꼭대기는 내 자리임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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