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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Jul 12. 2016

조금 더 건강하게 살고자 관계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모든 것이 얼기설기 엮어있는 현대사회에서 관계에 무던한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현대인의 병으로 오르내리는 사회불안증은 결국 사람과 사람 그리고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상태가 아닐까 한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


나는 조금 더 건강하게 살고자 관계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나는 모든 관계에 얽매여 있었다.  그 사람이 내뿜는 부정적/긍정적 에너지를 구분할 지 몰랐으며, 대화인지/일방적 감정 소비인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가며 모든 관계를 부여잡으려 했고, 그 안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부던히 노력했다.


관계 정리하기

오랜 벗이었던 친구A가 다른 지역으로 이직을 했다. 사사건건 친구를 못 마땅해하던 A의 사수는 교묘하게 A를 괴롭혔다. 누가 먼저 그만두는지 지켜보자고 했고, 왜 버티는지 궁금하다고 면전에 대고 마음을 할퀴었다. 하루에도 수십번 주저앉으며 마음이 엉망진창이 됐던 A를 위로하는 게 퇴근길 내 몫이였다. 처음엔 사수를 함께 욕했고, 출근하는 게 죽기보다 싫다고  털어놓는 친구에게 그 정도의 심리상태라면 일을 그만두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매일매일. 퇴근 후 1시간씩, 2시간씩 때때로 근무 중에도 30분씩. 친구는 감정이 요동칠 때마다 나를 찾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속됐고, 나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심각한 감정의 전이를 겪고 있었다.  감정기복이 심해진 탓에 일상에 지장이 생기자 친구의 전화를 받지 않기 시작했다. 그게 5년전 이야기고, 결론부터 말하면 친구는 여전히 그 회사를 다니고 있다.  그 친구는 회사를 절대 그만둘 생각이 없으며, 도톨이표처럼 같은 이야기를 몇 시간씩 나를 붙잡고 해대는 이유는 누군가에게 감정을 배설할 창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렇다.

그 사건을 계기로 관계에 대한 회의가 들었고, 좀 더 건강한 만남을 선호하게 되었다.

매번 만날때마다 기운을 빼앗기는 사이, 만나는 내내 부정적 언사들만 쏟아내는 사람, 안될거라는 전제 하에 모든 것을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세상의 중심에 오로지 본인만 있는 사람, 본인이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사람, 매번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람, 말 옮기기 좋아하는 사람 등등.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공적으로 얽힌 관계라면 거리감을 두는 연습을 했으며, 필요이상의 감정 소비를 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말(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감정상태)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다.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니! 정작 내 마음은 뭉드러지는데 모두에게 좋은 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사적인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하자 변화의 폭이 커졌다. 혼자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됐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러진 않았을까. 가깝다는 이유만으로도 모든 것을 이해해줘야 된다고 생각하진 않았는가.  낯설고 어려운 사람에게는 예의를 차리면서, 정작 가까운 이들에게 더 많은 이해를 요구하는 행위에 대해 고민이 들었다.  


사적으로 들인 가장 큰 노력은 엄마와의 관계였다. 가장 긴밀했고, 감정의 전이가 가장 큰 상대였다.  마음 속 엄마의 포지션은 언제나 피해자(아빠와의 잦은 다툼, 엄마의 일방적 희생 등)였기에 매번 엄마와의 통화나 만남은 가장 큰 에너지가 필요했다. 다행히 그 시점에 나는 집에서 독립을 하며 마음의 독립, 감정적 분리를 시도했다. 엄마의 가장 큰 의존상대였던 내가 독립을 하자, 엄마는 한동안 그 충격을 감당하느라 힘들어 보이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 스스로의 삶을 살아갔다. 사진 찍는 취미를 발견했고,  느즈막이 운전면허를 따면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의 폭을 넓혀갔으며, 작지만 크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일들을 경험했다.  적절한 시기에 우리 모녀는 서로 독립을 선언하고 행한 셈이다.


그 후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감정의 배설창구는 글로써 충분하였다. 앞뒤 맥락없이 쏟아내던 생각과 말들을 감당하는 것은  온전히 일기면 됐다. 마음의 요동이 스치고 간 후, 대화가 가능한 시점이 되어서야 누군가에게 나의 상황을 전하거나 고민을 토로하게 됐다. 지인들은 속내를 너무 드러내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나 그 관계를 설계하고 이어가는 것은 온전히 의지라고 생각한다. 한 번쯤은, 아니 주기적으로 나를 지탱해주는 관계들이 건강한 지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하다. 맹세코 그것은 내 삶을 조금 더 충만하게 해주는 길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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