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여름의수박 May 18. 2018

나의 작은 숲은 어디지?

[영화] 리틀포레스트 후기

비단 직장일이 아니더라도, 나는 가끔 동굴을 파고 숨고싶은 순간들이 종종 있다.

더이상 어려서, 잘 몰라서 그랬다는 말로 어설프게 퉁칠 수 없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나는 나이가 되었고,

무서워서, 회피하고 싶어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들을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꼭 붙잡아둬야 하는 순간들을 마주할때가 온다.  그럴때의 선택은 늘 곤혹스럽다.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데, 그렇다고 요란법석 떨 수 없는 일들이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고, 나는 기어이 그 작은 파동을 시작으로 온 몸과 마음으로 나를 괴롭힌다.

가장 괴로운 건, 정답이 없는 선택지를 받아들고 어떤 것이든 선택을 해야 할 때.

무엇을 선택하든지 간에 괴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인 걸 충분히 알면서도 결과는 어쨌든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므로 나를 탓해야 할 때.


그럴 때. 몹시 괴롭다.

살던 터전을 떠나 제주에서 살아보고자 이주했을 때.

크고 작은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그럴싸하게 포장했을 뿐,

제주의 자연과 낯섦이 위안과 위로가 되어줄 순 있어도 그것이 모든 걸 해소해줄 순 없는 것이므로.

일상이 여행일 순 없다. 이곳에서의 삶이 생활이 된 후에는 여전히 바쁘게 이겨내고 있으며, 예기치 못한 선택의 순간들이 곤혹스럽게 찾아오는 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의 삶이 만족스러운 건 '작은 숲' 같은 거겠지. 


영화에서 류준열이 그랬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팍팍한 현실에 치여 고향에 잠시 내려와 몸을 바삐 움직이는 김태리를 보며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이 돼?".. 당황한 김태리가 과수원을 떠나며 보여준 표정을 잊지 못한다. 정곡을 찔린 사람처럼 굴던. 


현실도피가 왜 나쁜가.
문제는 꼭 해결해야만 하나.
그것이 문제라고 누가 말했나.


그랬다.  그렇게 나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영화라서 그랬겠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질문을 받고 싶지 않다. 시간이나 상황에 쫓겨, 누군가의 말에 의해 하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싶은데. 모든 걸 아는 것처럼 구는 것 또한 싫다. 

모든 현실이 늘 언제나 극복해야 하는 상황은 아닌 거라고, 이렇게든 저렇게든 흐르는 시간이므로 너무 답답하면 내버려 두는 것도 살아가는 방식이 아닌걸까.


내가 그렇다. 매일 아침 '부러 애쓰지 말자'고 두번세번 다짐하고 일어나지만,

나는 또 언제나 기를 쓰고, 나를 갉아먹으며 상황을 해결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내고 싶은데, 할 수 없어도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산다.

그러며 마음을 다치고, 관계를 버거워하고, 일에 치여, 일상이 망가진다. 

일과 일상을 분리하는 훈련을 수년째 하고 있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회사업무와 감정까지도 함께 회사에 두고 퇴근하려고 꾸역꾸역 노력 중인데, 쉽진 않다. 


최근 sns에서 읽은 글 중에서...어떤 상황에서 가장 좋은 선택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을 선택하는 거라고 했다. 

나를 혹사하지 않으며 사는 삶, 그것이 이상일지라도 말이다. 


다시 영화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렇다면 나의 작은 숲은 어딘가?

정답 없는 질문에 나는 또 묻는다.

작은 숲이 뭐 별건가. 내 마음에 내가 쉼표 하나씩 찍어줄 수 있으면.

 





작가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지 않아 행복한 여행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