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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수박 Mar 21. 2022

노력만으론 안된다는 무력감이 올라올 때

그때 있잖아, 네 카톡이 그렇게 와서 거기에 너무 큰 상심이 느껴져서 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친구는  종종 그날을 떠올리며 미안해했다.


그때란, 지난 2년 동안 밤잠 줄여가며 온 마음을 쏟았던 프로젝트가 또다시 실패했을 때다. 실패라는 말이 허공에 떠있다 사라질 것처럼 현실적이지 않아 마른 헛웃음이 나왔다.


누구보다 가장 크게 충격받았을 보스는 무덤덤을 가장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서 "아쉽게도 이번에도 우리는 안됐대."라고 말을 했다.


설마, 진짜요? 그날 아침 스정류장에서 전화를 받고 주저앉고 말았다. 또다시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재도전 기회가 생긴 지난 일 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한 국비 프로젝트였다.


먼저 출근해있던 동료가 나를 보자마자 결과 발표가 너무 떨려 한숨도 못 잤다고 말을 하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뭐라 말을 할 수 있을까.

 "설마, 우리 안됐어요? 아니죠?!"

 "이번엔 진짜 될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우린 아니라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각자 자리에 앉아 쏟아내고 싶은 만큼 울었다.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해도 안 되는 거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우린 또다시 좌절했고, 실패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상처는 쓰라렸고 마음은 끝없이 가라앉았다.



'나 있지, 진짜 열심히 했거든. 작년에 실패했을 때 아 내가 조금 부족했나 그런 아쉬움이 남길래 올해는 진짜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진짜 성과 만들면서 최선을 다했거든.'


'근데. 세상엔 노력만으로도 안 되는 일들이 있나 봐. 해도 해도 안된다는 사실에, 무력감이 너무 느껴져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


실패했단 사실보다 더 괴로웠던 건,

세상엔 노력만으론 안 되는 일들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는 거였다. 무력감에 어쩔 줄 몰라했다.



다시 돌아간대도, 그 시절의 나만큼 나는 해낼  자신이 없다.


뼈아픈 두 번의 실패다. 결국 다른 지역과 다른 독자노선을 선택했지만 우리에겐 실패의 얼굴이 덧씌워졌다.  결과야 신의 영역이니 재단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승패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었다.


더 이상의 도전이 불과했기에 우리는, 실패자들로 남아야 했다. 


사무실은 한동안 어수선했다.  참담한 성적표를 펼쳐두고 떨어진 이유를 찾아 설명해야 했고, 울고 싶은 건 우린데 사무실을 찾아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해야 했다. 그 와중에 함께 일했던 동료 몇은 계약기간 만료로 일을 그만뒀다.


동료의 마지막 근무일에도, 나는 정신없이 수습 중에 있었다. 누구 하난 정신 차리고 뭐라도 해야 했다. 밖으로 나갈 메시지를 준비해야 했고, 내부에 보고할 향후 대책의 근거를 찾아내느라 슬픔보단 고단했다.


노력해도 안 되는 거면, 더 이상 뭘 할 수 있어요?


그니까 제 말은. 최선보다 더한 최선이란 게 있을까요? 그니까 제 말은, 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 같아요.


나는 한동안 무력감 앞에 얼굴을 묻었다. 실패를 책망하는 사람들도, 뭐든 대책을 찾으라는 어른들의 강권도 진절머리가 났다.


생각보다 씩씩해서 다행이라는 사람들 앞에서, 사실은 너무 허망하다고 말했다. 다시 뭘  해보고 싶단 생각이 피어오를 때까진 시일이 걸릴듯했다.


몸에  독을 빼내듯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좋아하던 책도, 전시도, 산책도. 새로이 넣거나 비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내버려 두었다.


마음이 괜찮다고 신호를 줄 때까지, 나는 내 마음을 믿기로 했다. 몇 날 며칠 잠에 원수진 사람처럼 잤다. 허해진 마음을 겨우 잠으로 채우다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다가도, 드문드문 슬픔에도 눈물이 났다.


다시 뭘 잘하고 싶다는 마음은,

언제 다시 나에게 와줄까.


곧 봄일진대,

봄이 기어이 올 거라 다시 믿어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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