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통이라 하기엔 우는 날이 많아서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도 먹히지 않는 날
발 밑이 낭떠러지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내딛으면 그대로 추락할 것 같아 내 몸집보다 곱절로 커져버린 일과 관계, 마음들을 이고지고 서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는데, 모두들 나만 쳐다보고있다. 나도,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방향을 묻고 싶은데... 모두들 나만 쳐다본다.
힘들다고 소리 내 말하면, 정말 힘듦이 선명해질 것 같아서, 그 무게감에 압살당할것 같아 겨우 삼켜왔다. 누구하나 강요한 적 없지만, 강요당한 이상한 책임감이다.
혼자 이고삼켜왔던 마음들이 폭포수마냥 쏟아졌다. 주체할 수 없는 감정들이다. 일이 곧 나인 양, 그랬나보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겨우겨우 뱉고나니, 정말 힘들어서 주저앉고 싶다고 말하고 나니,
상황이 나를 집어삼켜버렸다.
근 몇 달간 일에 잠식돼 살았다. 처음엔 일에 익숙해지려고 팀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찾아내고 구조화하려고 덤벼들었다.
팀은 불안정했고, 그 구멍을 메꿔나가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밀려있는 일들을 쳐내면서도 새로운 조직 안에서 배울 게 있다고 생각했다.
조직의 특수성은, 생각보다 많은 구조적 문제점을 불러왔다. 현장 기반의 일들이 으레 그렇듯 많은 변수들이 생겨났지만 보수적인 조직 안에 융통성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았다.
맨땅에 헤딩하며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다. 이것이 왜 필요한지, 왜 지금 단계에서 이 정도만 가능한지, 왜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는지, 때론 나도 이해 안 되는 것들을 스스로에게 세뇌시켜가며 어른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 설득이란 게 참으로 처참하여 때때로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나, 눈물짓게 했다.
살아온 경험치와 세월의 노련함, 대비책을 염두에 두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전부는 아닌데. 이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실험으로 작동하는 기재가 돼가는 과정을 온전히 이해하고 납득시키는 건 정말 버거웠다.
일을 일답게 하고싶은데, 번번이 결재과정에서 막히다 보니 팀 모두 주눅이 들었고 보스는 망연자실해했다.
수긍하는 나에게 반기를 들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처참한 기분마저 들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하는 동안 어디에 있었냐고.. 이걸 온전히 감당하고 해결하는 게 내몫인거냐고.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는 날이 많아졌다. 누군가의 위로도, 말도, 버겁디버거운 상황도, 쉬지 않는 벨소리도, 밀려있는 메일 답장들도, 어른들의 호출도, 결정해야 할 결재들도.
괜찮다는 주문이 더 이상 먹히지 않았다, 나는 정말 괜찮지 않다. 마음에 눈물이 가득 고여, 울고 싶단 마음보다 서너발자국 앞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는 건 스스로에게 지는 것 같다.
내 위치에서 내가 할 몫이라고 생각해 묵묵히 삼켜왔던 것들이 독이 됐다. 물꼬를 튼 일을, 일이 되게 하기 위해 했던 노력들이 과부하가 걸리자 사건이 되기도 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일에 쫓겨다녔다. 일을 제때 끝내야 한다는 강박과 책임감으로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잘 가고 있는지, 속도감에 어디 하나 다친 곳은 없는지 찬찬히 살필 겨를이 없었다. 생채기는 나뿐 아니라 모두에게. 의도치 않았지만 서로를 할퀴기도, 뾰족함을 무뎌지기도 했다.
해가 뜨고, 해가 지는 것에 무던해지는 일상은 가엽다. 바짝 말린 햇빛을 쐬는 점심 무렵 산책과 퇴근길 선명한 밤하늘의 말간 달이 겨우겨우 위로다.
일이 곧 내가 되는 삶은 참 고되고 버겁다. 독이 되는 순간순간들이 휘몰아쳐오자, 끝끝내 벼랑으로 내몰려 위태롭게 흩날리게 된다. 열심히 한 것밖엔 없는데, 늘 죄송하단 말을 하게 된다. 기다리게 해서, 마음을 더 살피지 못해서, 함께 고민을 나누지 못해서... 이 사람 저 사람,이일저일 다 품에 안으라는데, 어디 작은 모퉁이에조차 버거운 내 마음은 누일 곳이 없다.
참다 보니 쓰디쓴 응어리가 됐다. 허망하다. 돌아온 건 결국, 잘못된 책임감이라고 하니. 이걸 단순히 성장통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걸 꼭 견뎌내야 하는 걸까.
막다른 골목에 서 있다. 주저 앉는것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