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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May 19. 2022

<4> 드디어 첫 수확

     

이제나 저제나... 오매불망 기다리던 순간이 드디어 찾아왔다.

아직 작고 여리긴 하지만 첫 수확의 때가 된 것이다.     


산성시장에서 6개 천 원씩에 데려온 상추 모종 3종(분명 서로 다른 이름이 있는데 생각이 안 난다. 이름을 불러주지 못해 미안하다ㅠ). 그리고 3천 알에 3천 원을 주고 산 루꼴라 씨앗. 정확히 27일 만에 얻은 반갑고 귀한 결실이다.     


식집사 선배가 신신당부했다. 손으로 잡아 뜯지 말고 꼭 가위를 사용하라고. ‘뭐~ 그거나 그거나 아니겠어? 조심해서 따면 되지...’ 역시 난 무식하고 용감하다. 분명 조심조심했는데 어떤 것은 목이 부러지고 어떤 것은 목표물이 아닌 옆의 더 어린잎을 뭉개버렸다. 내 손은 진짜 곰손이다.     


그제야 부랴부랴 가위를 가져왔다. 눈만 흘겨도 찢어질 것 같은 여리디 여린 상추와 아직 특유의 뾰족뾰족한 모양을 갖추지도 못한 루꼴라 잎을 수확했다. 우리가 아는, 그리고 원하는 정도로 키워서 먹으려면 어린잎이나 잘 자라지 못하는 잎들을 적. 당. 히. 속아줘야 한다. 뭐든 ‘적당히’가 제일 어려운 법인데...     

예쁘다. 참 예쁘다. 먹으려고 키웠지만 먹기 아까울 정도로 예쁘다.      



기쁨의 첫 수확물!!




눈 뜨자마자 수확한 잎들이 너무 여려서 저녁 식사 때까지 두면 시들어버릴 것 같았다. 이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인데 시들어버리게 둘 수는 없다. 그래, 결정했어! 오늘 아침 메뉴는 샐러드다!!      


갓난아기 목욕시키듯 조심스럽게 살살 씻어서 물기를 빼고 리코타 치즈를 덜었다. 견과류도 잘게 잘라 올렸다. 엄마가 주신 매실청과 식초, 소금 한 꼬집, 후추를 갈아 넣어 소스를 만들고 올리브유를 휘릭 둘렀다. 좋아하는 들기름을 넣을까 잠깐 고민했지만 첫 수확물의 향이 궁금해서 올리브유를 넣었다.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사진은 찍어놨어?”


베란다 실험실에 기울이는 관심과 정성을 아는 남편은 식탁에 올라온 샐러드를 보고 신기해했다. 진짜 먹어도 되는지(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약간의 난감함과 함께.      






잘 먹었다. 맛있게 먹었다. 신기해하면서 먹었다. 나는 이 조금을 얻기 위해 애를 쓰는데 농사를 직업으로 하는 분들은 얼마나 힘이 들고 애가 닳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베란다를 실험실로 만들고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것들을 배운다. 실학(?)을 배우기도 하고 인문학(!)을 배우기도 한다. 내년에도 실험실을 또 차릴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공부는 베란다에서 톡톡히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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