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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주일장춘몽 May 27. 2022

<10> 유용미생물(EM) 구하기

  

달걀 껍데기도 모아서 주고 양파 껍질도 모아서 주고 찻잎 찌꺼기며 커피 찌꺼기도 바짝 말려서 준다. 하지만 갑자기 날이 더워져서 그런지 아니면 내가 먹고 난 찌꺼기를 줘서 그런지 요 며칠 베란다 실험실 아이들의 성장이 눈에 띄게 시들하다.     


화학 비료를 사용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지만 그래도 거름이 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식집사 선배가 유용미생물, 일명 EM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집 앞 행정복지센터에 EM 받으러 갔다가 공급 요일이 정해져 있어서 허탕 치고 왔다고. 거기는 주변에 텃밭이 많아서 찾는 사람이 여기보다 훨씬 많을 테니 너도 두 번 걸음 하지 말고 미리 행정복지센터에 전화해보고 가라고.     


맞다. EM이 있었지. 예전에 환경 관련 프로그램을 만들 때 EM에 대한 내용이 있었기에 알고는 있었다. EM이란 유산균, 효모균, 광합성균 등 인간에게 유효한 균들을 배양해서 만든 친환경 미생물 발효액이다. 청소, 빨래 등 일상에도 유용하지만 식물 영양제로도 손색이 없다. 일산에는 동네마다 행정복지센터 마당에 커다란 EM 통이 설치되어 있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아 EM 배양액 보충하는 요일을 알아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니 여기도 당연히 있겠지... 쉽게 생각했다.     


행정복지센터에 전화를 거니 친절한 공무원이 공주 시내에서는 구할 수 없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안내하는 공무원은 EM이 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시청의 농업 무슨 과 담당자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오후 내내 그 번호로 몇 번을 전화했는데 받지를 않는다. 많이 바쁜가 보다.     


하는 수 없이 공주시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색하니 전문 농업인 증명이 있으면 공주 농업기술센터에서 40리터씩 무료로 나눠준단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유용한 EM의 효능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두었다. 나는 전문 농업인이 아닌데 어쩌나... 전문 농업인만 준다면서 일상에서 사용하는 방법은 왜 안내했을까?     


답답한 마음에 직접 전화해서 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홈페이지에 안내된 번호로 전화를 거니 없는 번호란다. 뭐지? 분명 시청 홈페이지 공지에 전화번호와 담당자 이름까지 안내되어 있는데 없는 번호라고?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내가 먹는 것 같으면 그쯤에서 관뒀다. 나는 그거 말고도 다른  먹을 게 많으니까. 하지만 베란다 식물들은 먹을 것이 많지 않다.      


화를 가라앉히고 공지 내용을 찬찬히 훑어보니 본문에 또 하나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 번호로 전화를 거니 농업기술센터 직원이 꼭 농업종사자가 아니어도 EM을 받을 수 있다고 친절하게 알려준다. 수요일이나 금요일에 받아갈 용기를 가지고 오라고. 식집사 선배가 생수병에 받아온다는 말이 생각이 나서 생수병을 가지고 가면 되냐고 물었더니 된다고 했다.     


공주 농업기술센터는 우성면에 있다. 내가 사는 곳과 위치상으로는 많이 떨어져 있지 않지만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어서 찾아가기가 쉽지 않았다. 좁은 진입로를 몇 번 놓치고 겨우 도착하고 나서야 생각지도 못했던 큰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공주 농업기술센터에서는 EM 배양액 40리터가 기본 공급량이다. 40리터를 담으려면 등유나 약수를 받는 커다란 들통을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에 온 사람들은 굵고 기다란 호스를 이용해서 커다란 들통에 EM 배양액을 금방금방 채워 가져 갔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됐는데, EM을 나눠주는 기술센터 직원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여그 처음 와씨유?”

“네”

“워디다 담아 갈 거래유?”

“페트병 3개 가져왔는데, 3개가 안되면 2개만 주셔도 좋아요.”

“40 리트만 안 넘으면 상관 읎는디. 거그는 안돼유.”

“왜요? 전화로 확인하고 왔는데요?”

“거그는 주둥아리가 작아서 담지를 모대유”     


헐~ 이럴 수가. 생각도 못 했다. 지난 이틀을 이것 때문에 시간 버리고 산 넘고 물 건너 구비구비 찾아왔는데. 다른 것도 아니고 페트병 주둥이가 작아서 EM 배양액을 담을 수가 없다니... 이런 젠장.     


낙심하는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아니면 내가 짜증이라도 낼까 봐 미리 선수를 쳤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이 지긋한 센터 직원 한 분이 가지고 있던 커다란 통에 EM 배양액을 담아주겠다고 했다. 내 손에 들린 생수병과는 비교도 안 되는 크기다. 자그마치 10리터 용기. 당황한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감사합니다! 근데 제발 반만 담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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